“대통령 당당하지 못하고 청와대는 비겁” “공론화위, 권한도 없이 원전 축소 권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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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중단됐던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을 재개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공론화위의 공사 재개 권고 이틀 만이었다. 이날 서면으로 발표된 1800자 분량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에 대한 대통령 입장’에는 ‘사과’나 ‘유감’과 같은 표현은 없었다. 대신 “민주주의는 토론할 권리를 가지고 결과에 승복할 때 완성된다” “공사 중단이라는 저의 (대선) 공약을 지지해 주신 국민들께서도 공론화위의 권고를 존중하고 대승적으로 수용해 주시길 부탁드린다”는 입장만 담겼다.

야당, 문 대통령 입장발표 비판

적법한 절차로 진행되던 공사가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중단됐고 이후 89일 동안 활동한 공론화위에 투입된 예산(46억원) 외에도 건설 중단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한 협력사에 줘야 할 돈이 약 1000억원(한국수력원자력 추산)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에선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해 왔다.

문 대통령은 대신 “숙의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여줬다”거나 “통합과 상생의 정신을 보여줬다”며 공론화위의 활동과 결과에 대한 높은 평가를 강조했다. 이런 청와대의 기조는 20일 공론화위 발표 직후에도 드러났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6월 항쟁과 촛불에 빗대 “내 나라 대한민국과 그 위대한 국민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은 날”이라고 말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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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의 반응은 싸늘하다. “정직한 사과가 도리”(전희경 자유한국당 대변인), “사과 한마디 없이 무책임하다”(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 “대통령은 당당하지 못했고 청와대는 여전히 비겁하다”(박정하 바른정당 대변인)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 대변인은 “공론화위로 (1000억원대)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갈등을 유발시켜 놓고, 그것을 숙의 민주주의라는 궤변으로 덮으려 하는 건 참으로 실망스러운 입장 발표”라고 말했다. 손 수석대변인은 “법적 근거조차 없던 공론화위는 감동적이고, 이로 인한 국민의 고통은 외면해도 되는 것이냐”, 박 대변인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체계 배치 때와 같이 또 한 장짜리 서면”이라고 꼬집었다.

공론화위가 권한 없이 ‘원전 축소’를 권고하고 문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공식화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원전 축소에 대해선) 애초에 정부 의뢰에는 없던 항목인데 공론화위원회 재량으로 급조된 문항”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탈원전이라는) 이 정부의 기본 철학과 가치를 갖고 대선을 치렀고 선택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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