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하고 나누면 좋은 한·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53호 31면

외국인의 눈

평일 오후 1시 반쯤 사무실 옆 화장실에 가면 같은 층에서 일하는 다른 회사의 젊은 여성들로 붐빈다. 양치질하는 사람들로 혼잡한 것은 놀라울 일도 아니다. ‘개인 방’에 들어가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이 큰소리로 수다 떠는 모습은 서울 생활에 익숙한 나에게도 여전히 외국이라는 느낌을 준다.

한국에 온지 얼마 안 됐을 때 매우 불편했던 것은 화장실 내에 물소리 스위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요즘 일본 화장실에는 공공시설을 비롯해 거의 다 설치되어 있다. 버튼을 누르면 소리가 밖으로 안 나가고, 어쩐지 창피함이 희미해지는 기능을 한다. 일본 여성들은 이 버튼을 다 쓴다. 이 버튼이 없는 구식의 경우 물을 흘리며 용변을 볼 정도로 소리에 민감하다. 왜 한국에는 거의 없는 것일까.

아파트 창문도 마찬가지다. 택시를 타고 지나가는 아파트를 바라보면 빨래부터 시작해서 집안이 다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한 일본 전문 대학교수는 “일본인은 커튼으로 창문을 꼭 닫으면서도 옆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래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한국인은 뭐 잘못된 일도 없는데 굳이 감춰야 하는 일이라도 있나 해서 별로 신경 안 쓴다”고 말한다.

비밀주의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본, 개방적인 한국. 한마디로 이렇게 분석하기는 쉽다. 하지만 서울에서 오래 살다 보니, 주변 눈치를 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향은 한국이 훨씬 강하다는 것도 느낀다.

이를 상징하는 것이 ‘아직~’이라는 표현이다. 최근 한 버스에 ‘아직 아파트에 살고 있나요’라는 광고가 그려진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에 살고 있는 것은 시대에 안 맞고 다른 새로운 멋진 집에 사는 것을 권한다는 취지다. ‘아직’이라는 단어에는 하나의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불안감을 부추기는 효과가 있다.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빌라든 본인이 마음에 드는 것이 최고라는 감각이 여기에서는 안 보인다.

한국에 화장실이나 아파트의 ‘개방성’과 일본의 이상인 ‘집단주의’가 양립하는 것이 너무 흥미롭다. 더하고 반으로 나누면 딱 좋다는 한·일의 특성은 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오누키 도모코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