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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생리대 '독과점'에 가격 오르는데, 정부는 미적미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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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가 진열된 서울의 한 대형마트 매장 사이로 여성 소비자가 지나가고 있다. [중앙포토]

생리대가 진열된 서울의 한 대형마트 매장 사이로 여성 소비자가 지나가고 있다. [중앙포토]

깔창 생리대, 유해성 화합물 등의 생리대 파동에 이어 가격 거품 논란이 불거졌다. 사실상 독과점 시장 상태에서 가격이 계속 오르는데도 관련 정보 공개는 깜깜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승희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은 11일 '생리대 시장 구조 및 가격 현황' 자료를 분석해 이러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 자료는 지난해 9월부터 정부서 진행 중인 생리대 업체 조사 내용 일부를 담았다.

'유해성 화합물' 이슈 등에 가격 거품 논란 지속 #김승희 의원, 생리대 가격·시장 조사 자료 공개 #상위 3개 기업 시장 점유율 꾸준히 75% 넘어 #공식 지정 없었지만 '시장 지배적 사업자' 확인 #정부는 "가격 높다고 규제 어렵다" "조사 진행중" #제품가 꾸준히 올라, 유통 경로별 인상률 '제각각' #업계 "국내선 고가 제품 선호, 해외와 비교 어려워" #김 의원 "생리대 조사 결과와 상세 자료 발표해야"

  김승희 의원에 따르면 4850억원(2014년) 규모의 생리대 시장은 독과점이 장기간 지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판매액 상위 3개 기업의 시장 점유율이 2010년 이후 꾸준히 75%를 넘어섰다. 2010년은 85.4%, 지난해 상반기는 77%로 집계됐다.

주요 4개 기업의 생리대 시장 점유율. 이 중 상위 3곳의 점유율을 합치면 최근 몇년째 75%를 계속 넘고 있다. [자료 김승희 의원실]

주요 4개 기업의 생리대 시장 점유율. 이 중 상위 3곳의 점유율을 합치면 최근 몇년째 75%를 계속 넘고 있다. [자료 김승희 의원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1위 사업자의 점유율이 50% 이상이거나 3개 이하 사업자의 점유율 합계가 75% 이상이면 '시장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한다고 명시돼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생리대 업체에 대해선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공식 지정한 적 없지만 이미 내부적으로는 독과점을 확인한 셈이다.

  기업들이 시장 지배적 지위에 있다면 공정위는 경쟁을 촉진하고 지위 남용을 막는 권한이 있다. 하지만 아직 공정위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한 적이 없다. 원가 변동에 따른 가격 변화만 지위 남용 규제 대상으로 규정돼있어 가격이 높다는 것만으로 규제하긴 어렵다. 공정위 관계자는 "생리대 업체에 대한 가격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자료를 발표하기 어렵다. 어떤 업체, 어떤 항목을 조사하고 있는지는 비공개이며 아직 지위 남용이나 담합으로 결론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는 사이 제품 가격은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주요 업체 중 하나인 A사는 2010~2015년 일부 제품가를 최대 17.1%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한 제품은 개당 가격이 2010년 210원에서 2015년 246원으로 올랐다. 또다른 제품은 458원에서 510원으로 11.4% 인상됐다.

한 생리대 업체의 유통 경로별 가격 차이가 상당하다. 특히 소매점의 가격 인상폭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자료 김승희 의원실]

한 생리대 업체의 유통 경로별 가격 차이가 상당하다. 특히 소매점의 가격 인상폭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자료 김승희 의원실]

  생리대 업체가 유통 경로 별로 제품을 공급하는 가격과 그 인상률도 차이가 컸다. A사는 2015년 온라인 몰에 개당 192원씩 공급했지만 편의점 공급가는 254원이었다. 특히 소매점 공급 가격이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2010~2015년 기간 온라인 몰(5.5%), 기업형 수퍼마켓(8.1%)에 비해 대리점(21.1%)과 편의점(18.7%)의 인상률이 높았다.

한 대형마트에서 나란히 진열된 생리대와 기저귀 제품. 비슷한 원료를 쓰지만 기저귀보다 생리대의 가격 인상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중앙포토]

한 대형마트에서 나란히 진열된 생리대와 기저귀 제품. 비슷한 원료를 쓰지만 기저귀보다 생리대의 가격 인상폭이 상대적으로 컸다. [중앙포토]

  하지만 이러한 가격 인상의 근거는 작은 편이다. 정부는 여성들이 수십년간 써야 하는 생리대를 생활필수품으로 분류한다. 2004년부터 부가가치세(10%)를 면제해주고 있다. 생리대의 주원료인 펄프·부직포 가격도 마냥 오르지 않았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에 따르면 2015년 펄프와 부직포 가격은 2010년보다 각각 30%, 8% 떨어졌다. 같은 기간 생리대 가격은 평균 26% 오른 반면 비슷한 원료를 쓰는 화장지는 6%, 기저귀는 9% 인상에 그쳤다. 통계청 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2010~2017년 전체 소비자 물가(7월 기준)는 13.2% 상승했지만 생리대 물가는 그 두 배인 26.3% 뛰었다.

  또한 국내 생리대 가격은 해외 주요국보다 비싼 편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최근 한국 생리대의 개당 평균 가격이 331원(지난해 기준)이라고 공개했다. 반면 프랑스는 218원, 일본·미국 181원으로 우리보다 낮았다. 미국(80.6%), 일본(82%), 프랑스(75.8%)도 한국처럼 상위 3개 기업의 독과점 구조지만 가격은 저렴한 것이다.

  생리대 업계는 국내 제품 가격이 무조건 높은 건 아니라고 해명한다. 지속적인 가격 인상은 인건비 상승, 신기술 개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또한 제조업체뿐 아니라 유통업체의 '마진'도 소비자 가격 결정에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생리대가 개당 100원 수준의 저렴한 제품부터 훨씬 비싼 것까지 다양하게 공급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고품질의 프리미엄 제품을 선호해서 가격이 비싸보이는 측면이 있다"면서 "해외는 일정하게 저가로 판매하지만 우리는 '1+1'이나 '50% 세일' 등 변화가 심해서 가격을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온라인과 소매점 등 유통 채널에 따라서도 가격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생리대 가격 논란은 지난해 업계 1위 유한킴벌리가 일부 제품가격을 올리겠다고 밝히면서 본격화됐다. 저소득 여성 청소년들이 고가의 생리대 대신 신발 깔창이나 휴지, 수건을 쓴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여론이 악화됐고, 공정위가 직접 업계 조사에 착수했다. 올 들어선 VOCS(휘발성 유기화합물) 유해성 논란이 터져나오면서 가격 불만을 부채질했다.

  하지만 지금껏 정부의 중간 조사 발표나 가격 공개 등은 나오지 않았다. 공정위는 조사가 마무리되고 담합 근거 등이 충분히 확보돼야 후속 조치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김승희 의원은 "공정위는 높은 생리대 가격에 대한 조사 결과와 상세 자료를 조속히 발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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