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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512% 올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투자 조언 "지금 가격에 주식 살 마음 없으면 주식 팔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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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40년 전 연구를 시작할 때 황무지 같았던 행동경제학 분야가 인정받았다는 점이 가장 기쁘다. 긴 여정이었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리처드 세일러(72)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9일(현지시간) 학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리처드 세일러 교수 외신 기자회견] #현실선 "합리적 인간형' 흔치 않아 #'넛지' 성공사례는 연금 자동 가입 #최근 도입한 영국 가입률 90% 넘어 #경제정책 만들 땐 인간 게으르다는 점 고려 #주가 계속 내려도 주식 쉽게 팔기 주저해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9일(현지시간) 학교 교정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날 오전 4시 스웨덴 노벨위원회로부터 선정 통보 전화를 받았다. 7시간 뒤인 11시 시카고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카고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리처드 세일러 미국 시카고대 교수가 9일(현지시간) 학교 교정에서 열린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이날 오전 4시 스웨덴 노벨위원회로부터 선정 통보 전화를 받았다. 7시간 뒤인 11시 시카고대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카고 로이터=연합뉴스]

1970년대 행동경제학은 주류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방인’이었다. 20세기 주류 경제학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가설을 기초로 했다. 가설이 잘못됐다고 근간을 흔드는 세일러 교수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다른 경제학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세일러 교수는 인간 행동의 비합리성을 주장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비합리적인 행동에 일정한 패턴이 있기 때문에 이를 예측하고 경제 모델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퇴직 후 생활이 어려워질 것을 빤히 알면서도 저축을 하지 않는다. 매입 시점보다 주가가 내려갔는데도 주식을 팔지 않는다. 계속 오르리라는 기대에 집값이 오르고 있을 때 집을 산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사람들이 비합리적, 비논리적으로 경제적 의사 결정을 한다는 것을 설명할 때 세일러 교수가 꼽는 사례다.

그는 약간의 인센티브, 즉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의 행동, 나아가 경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넛지(nudge)이론’을 제시했다. 이를 비롯해 경제에 심리학을 접목하는 시도로 행동경제학을 학문적으로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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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스웨덴 노벨위원회가 수상자를 발표한 직후 전화로 연결한 기자회견과 시카고대 기자회견, AP통신 인터뷰를 문답으로 정리했다.

-주류 경제학에서 행동경제학을 수용할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웃음) 경제학자들은 남의 의견을 잘 포용하지 않는다. 내가 누군가의 생각을 바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타인의 생각을 바꾸는 것 어렵다. 내 이론을 설파하기 위해 아직 머리가 굳지 않은 젊은층을 먼저 설득하는 전략을 썼다. 수많은 훌륭한 신진 경제학자들이 행동경제학을 받아들였다. 나를 따른 그들 덕분에 이 분야가 발전할 수 있었다.”

-시카고대가 주류 경제학의 전통이 있는 곳이라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 덕분에 (반대 생각을 가진) 동료들과 훌륭한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팽팽한 토론을 즐긴다. 학문적 입장은 정반대에 있는 유진 파마 교수(201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와 논쟁하는 걸 특히 즐긴다. 나의 절친한 골프 친구이기도 하다."

-상금(약 12억원)을 어떻게 쓸 계획인가.
“이 질문은 주류 경제학 이론의 관점에서는 멍청한 질문이다. 그들에게 돈은 그냥 돈이다. 목적에 따라 '이름표'가 붙지 않는다. 일단 은행 계좌로 들어오면 그 돈으로 무엇을 사든, 출처가 어디든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겐 흥미로운 질문이다. 내겐 돈이 다 같은 돈이 아니다. 사람들은 돈에 이름표를 붙여 놓는다. 집 살 돈, 여행 경비, 학비 등 각각의 주머니가 있다. 이를 ‘심리적 구좌(mental account)’로 명명했다. 앞으로 나는 즐거운 일에 돈을 쓸 때마다 '이건 노벨상 상금으로 쓰는 것'이라고 분류하겠다.”

-가장 성공적인 넛지 사례를 꼽는다면.
“일부 국가에서 도입한 자동 연금 가입 제도다. 누구나 연금에 가입하도록 한 뒤 원치 않는 사람은 탈퇴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했다. 연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장 실행하지 않는 ‘미루는 버릇(procrastination)’ 행동을 극복할 수 있다. 최근 영국이 국가 연금 제도를 도입했는데, 가입률이 90%를 넘는다. 영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 정부에 ‘넛지 팀’으로 불리는 행동경제학 연구 조직이 있다.”

-행동경제학을 정책에 반영할 때 유념할 점은.
“경제 정책을 설계할 때 인간은 바쁘고, 늘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고, 게으르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해야 한다.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게 하려면 최대한 접근하기 쉽게 만들어줘야 한다. 예를 들어 학자금 대출 서류가 복잡해 작성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정부가 보유한 정보를 활용해 부모의 경제적 여건 등을 자동 기입하도록 바꿨더니 학자금 대출 신청이 늘었다. 교육의 기회가 더 많은 사람에게 돌아가게 됐다.”

9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대가 마련한 노벨상 경제학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올해의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동료 교수와 학생, 직원수백 명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시카고 AFP=연합뉴스]

9일(현지시간) 미국 시카고대가 마련한 노벨상 경제학상 수상 기자회견에서 올해의 수상자인 리처드 세일러 교수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동료 교수와 학생, 직원수백 명이 강당을 가득 채웠다. [시카고 AFP=연합뉴스]

세일러 교수는 자신의 이론을 실제 투자에 접목해 좋은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1990년대 중반 자산운용사를 세워 심리적 특성을 접목한 투자 기법을 선보였다. 미국 CNBC방송에 따르면 세일러 교수가 주도하는 풀러&세일러 자산운용의 '언디스커버드 매니저스 비헤이비어럴 밸류 펀드'(UBVAX A주)는 2009년 3월 이후 512% 상승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뉴욕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77% 올랐다. 시장 수익률의 두배 가까운 성과다.

-일반인이 투자할 때 유념해야 할 점은.
“투자자들의 최대 실수는 과도한 자신감(overconfidence)이다. 실제 능력보다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개별 종목에 투자하는 것은 틀림없이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전문 펀드 매니저들도 벤치마크(종합주가지수 등)를 뛰어넘는 수익률을 내기 어렵다. 개인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할만한 근거는 약하다.”

-그 밖에 조언은.

“주식을 산 가격에 집착해 스스로 함정에 빠지지 마라. ‘지금 (가격에) 주식을 살 생각이 없다면, 주식을 팔아라’라고 조언한다. 특히, 주가가 떨어지면 사람들은 주식을 팔기를 주저한다. 자신이 실수를 저지른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가 경영대학원 건물 안 자신의 프로필을 담은 홍보물 앞에 섰다. 장제원 시카고중앙일보 기자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리처드 세일러 시카고대 교수가 경영대학원 건물 안 자신의 프로필을 담은 홍보물 앞에 섰다. 장제원 시카고중앙일보 기자

세일러 교수는 시장 가격의 '불공정함(unfairness)'이라는 화두를 새롭게 제시해 주류 경제학 이론과 거리를 뒀다. 비가 쏟아질 때 우산 장수가 우산 가격을 올리면 사람들은 이를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고 구입을 거부한다는 주장이다.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심리적 요인이 차라리 비를 맞더라도 우산 장수를 벌줘야 한다는 의사결정을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비가 쏟아지면 우산 수요가 증가해 상인이 가격을 올린다는 수요 공급 이론을 설명하는데 그친다.

-불공정한 가격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양방향으로 작용한다. 소비자는 가치 있게 생각하는 물건도 평소보다 가격이 올랐으면 그 하나의 이유로 구입을 거부할 수 있다. 이번 주말 시카고 컵스 야구 경기가 열린다. 평소보다 티켓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은 이를 불공정하다고 여기고 경기장에 가지 않는 선택을 할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공정함이라는 규칙을 어기는 기업에는 소비자가 분노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시카고 컵스의 열렬한 팬인데, 플레이오프 티켓 가격이 몇 곱절 뛰었어도 구매하겠는가.
"그냥 매우 합리적인 가격에 내일 경기 티켓을 샀다고만 해두자."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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