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디스플레이 중국 진출 막으면?…국내 중소기업, 당장 4조 수익 기회 상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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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드(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회로기판를 만드는 장비(습식 식각장비)를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하는 한 중견기업. 4분기에 접어들었지만 이 회사는 내년도 사업 계획의 윤곽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광저우 설비 투자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게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 회사가 LG디스플레이에 납품하기로 한 광저우 공장 생산 장비만 700억원어치로 전체 매출액의 6분의 1이 넘는다.
이 회사의 영업부장 김갑수(48·가명)씨는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공장 설립이 무산되면 수백억대의 매출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 130여 명의 추가 인력 충원 계획도 접어야 한다"고 토로했다.

초기 투자 5조 중 4조가 국내 중소 협력업체 몫 #중국 공장 설립 후에도 매년 1조 유지·보수 수익 얻어 #LGD "중국 못가면 갈 곳 없어…투자도 접고 매출 기회도 상실" #전문가들 "정부, 엄격한 기술유출 심사 필요하나 신속히 결정해야"

산업부가 최근 LG디스플레이의 중국 광저우 공장 설립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자 LG디스플레이는 물론 중소 협력업체의 시름이 깊어가고 있다. 만에 하나 LG디스플레이의 중국 진출이 무산될 경우 국내 중소 협력업체들은 최소 4조원 이상의 수익 기회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가 내년부터 2020년까지 광저우 공장 설립에 필요한 설비와 부품 조달에 투입하는 비용만 5조원. 이 중 국내 협력사가 가져가게 되는 몫은 4조원 정도다. 또 2020년 공장 완공 이후에는 매년 1조원 안팎의 시설 유지관리 수익이 생기지만, 중국 진출 무산으로 LG디스플레이가 신규 투자를 접을 경우 이 같은 수익 기회는 사라질 수 있다.

디스플레이 장비업계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 생산 장비의 70% 이상을 국내 중소기업들이 공급한다"며 "대기업의 중국 공장 설립으로 국내 중소기업도 낙수 효과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산업부가 LG디스플레이에 중국 공장 설립을 제고하라고 언급한 표면적 이유는 '기술 유출' 우려 탓이다. 반도체·OLED 등 국가 핵심기술 관련 해외 생산시설을 지을 때는 산업부 장관에게 신고하거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산업부가 LG디스플레이 중국 진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이유다. 산업부는 LG디스플레이가 설립하게 되는 광저우 공장은 광저우 지방정부와 합작 투자로 진행되기 때문에 LG디스플레이의 OLED 기술이 중국에 유출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이민호 산업부 사무관은 "LG디스플레이 중국 진출 건을 심도 있게 검토하자는 차원에서 처음으로 디스플레이 전문가만 모아 별도의 소위원회를 꾸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이 같은 정부 주장을 곧이곧대로 듣진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기술 유출 심사는 산업부 산하 전기·전자전문위원회가 승인 신청 후 45일 안에 심사 결과를 통보해 왔다"며 "지난 7월 말 신청한 건을 이제서야 소위를 꾸려 심사하겠다는 것은 대기업의 해외 진출에 부정적인 현 정부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새 정부가 일자리 창출을 제1 국정 과제로 내세우다 보니 일자리가 줄어드는 기업의 활동은 무조건 제한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LG디스플레이가 광저우 지방정부와 합작으로 중국 공장을 설립한다고 해도 기술 유출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명목상 합작 투자여도 광저우 지방정부 지분은 30%에 불과하고 중국인 경영 참여도 이뤄지지 않는 구조란 것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경우 오래 전부터 중국에서 메모리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지만 중국 반도체 업체들의 기술력은 한국 기업에 한참을 못 미친다"며 "중국 공장 설립을 곧바로 기술 유출과 연관짓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선 대형 TV용 OLED 디스플레이는 중국 공장을 신설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고 강조한다. 중국 공장 설립이 불허된다고 해서 국내 공장 설립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 관계자는 "한국 파주 공장에는 더는 시설을 확장할 부지가 없고 새 부지를 찾아 공장을 지으려면 5~10여년은 걸린다"며 "TV용 OLED 패널은 6개월~1년 가량 미리 주문해서 생산하는 구조라 시간이 늦어질수록 현재 확보한 고객마저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전·후방 산업 연관 효과가 큰 디스플레이 산업 특성 상 정부의 신속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창희 서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국가 핵심 기술인 OLED는 기술 유출을 엄격히 관리해야 하지만, 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심사 결과가 마냥 지연돼선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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