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온돌방] "가족과 명절 못 보냈지만…응급실 떠날 수 없죠"

중앙일보

입력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한 의료진의 모습. 이곳처럼 황금연휴에도 전국 응급실의 불은 24시간 내내 꺼지지 않았다. [사진 강샛별씨]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한 의료진의 모습. 이곳처럼 황금연휴에도 전국 응급실의 불은 24시간 내내 꺼지지 않았다. [사진 강샛별씨]

최장 10일의 추석 연휴가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공항을 거쳐 외국으로 나간 여행객도, 자동차·기차를 이용해 고향의 가족들을 만나러 간 귀성객도 대부분 집으로 돌아왔다. 귀성·귀경 후에 국내 관광지로 향한 나들이 행렬도 막바지다.

'황금 연휴'에도 응급의료기관엔 환자 더 몰려 #응급실 근무 17년차 간호사, 4년차 레지던트 #몰리는 환자에 밥 못 먹고 '의료 최전선' 지켜 #이영란씨 "퇴원 환자가 '고맙다' 해주면 뭉클" #강샛별씨 "심정지 환자 매일 나와, 항상 긴장" #이번 연휴도 가족보다 환자..."그래도 응급실"

  하지만 언제 올지 모르는 환자를 받아야 하는 응급의료기관은 '황금연휴'의 여유와는 거리가 멀다. 연휴 기간 국내 535곳의 응급실은 24시간 내내 문을 열고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의사·간호사 등 의료진은 평소보다 더 몰리는 환자들을 받느라 눈코 뜰 새 없는 하루를 보냈다. 일부러 근무 인력을 늘렸지만, 밥 먹는 시간도 없어 굶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 병·의원이나 약국이 대부분 문을 닫으면서 응급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실은 연휴 동안 하루 평균 350명이 찾으면서 평상시(250명)의 1.4배에 달했다. 한림대성심병원 역시 350명 가량이 찾아오면서 평소 환자 수(200~240명)를 훌쩍 뛰어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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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응급실의 의료진은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의료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 일이 아무리 고되더라도 환자 보호자가 찾아와서 "살려줘서 고맙다"고 하는 순간 모든 피로가 사라진다고 한다.

  지난 6일 휴일을 반납하고 환자들과 함께한 한림대성심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간호사 이영란(39)씨,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강샛별(31)씨의 추석 연휴 이야기를 전화로 들었다. 여성 간호사·의사인 이들은 소중한 가족과 제대로 보내지 못한 명절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응급실에서 근무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들이 왜 안 놀러 가냐고…" 응급실 간호사 이영란

동료 간호사와 함께 응급실에 입원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한림대성심병원 이영란 간호사(왼쪽). 이번 추석 연휴에 귀성 대신 응급실 근무를 이어갔다. [사진 한림대성심병원]

동료 간호사와 함께 응급실에 입원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한림대성심병원 이영란 간호사(왼쪽). 이번 추석 연휴에 귀성 대신 응급실 근무를 이어갔다. [사진 한림대성심병원]

이번 연휴에 얼마나 근무하나.
연휴 10일 중에 근무는 총 6일이다. 오늘(6일)도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응급실 근무한 지 오래됐나.
간호사가 된 지 17년인데 중간에 주사실 2년 근무한 거 빼고는 다 응급실에서 일했다. 응급실 간호사는 연휴에 어디 간다는 걸 생각도 할 수 없다. 환자가 몰려오는 주말이나 연휴에 근무를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 명절은 거의 다 못 쇠었다고 보면 된다. 이번에도 가족 친지를 보러 가지 못 했다.
환자들과 많이 마주치다 보면 힘들 때도 있겠다.
명절에는 응급실에 들어오는 환자가 평소의 2~3배까지 늘어난다. 의료진이 생각하는 응급은 의학적으로 판단해서 당장 환자에게 조치가 필요한 걸 의미한다. 하지만 환자는 대체로 접수번호 순으로 진료해야 한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심할 때는 폭언, 욕설이나 폭행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밤 시간에도 술 드신 분들이 많아서 지칠 때가 종종 있다.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이영란 간호사(가운데)가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환자 수액 등을 점검하고 있다. 응급실은 명절 연휴처럼 다른 의료기관이 문을 닫을 때 환자가 더 많아진다. [사진 한림대성심병원]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이영란 간호사(가운데)가 동료 간호사들과 함께 환자 수액 등을 점검하고 있다. 응급실은 명절 연휴처럼 다른 의료기관이 문을 닫을 때 환자가 더 많아진다. [사진 한림대성심병원]

그래도 응급실 못 떠나는 이유가 있나.
응급실에 들어올 때는 말도 못 하던 분이 건강하게 퇴원하면서 '고맙다'고 해주면 가슴이 뭉클해지곤 한다. 우리 의료진이 빨리 대처해서 조치한 환자들이 회복되면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어떤 환자는 ’이렇게 살려준 심장 잘 쓰겠다‘고 말해서 기억에 오래 남는다. 하지만 치료를 해도 돌아오지 못 하는 분들이 많다. 특히 아이들이 사고를 당했는데 살리지 못 하면 간호사들도 남몰래 많이 운다. 응급실에 있다보면 살아나는 환자도 많은 반면 끝내 돌아가시는 환자도 많이 보게 된다. 우리 일의 보람이자 아픔이다.
제일 처음 간호사가 될 때로 돌아가도 응급실에서 일할건가.
응급실을 사랑한다. 힘들지만 그만큼 애착도 강하다. 다시 간호사의 길을 선택한다고 해도 응급실을 지원할 것이고,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고 싶다.
가족들은 명절 근무에 적응했나.
초등학교 6학년과 4학년, 그리고 7살인 아이 셋을 키우고 있다. 아이들이 커가니까 ’엄마는 왜 주말에만 나가‘ 이런 불만을 이야기한다. 이번 명절에도 ’다른 애들은 어디 놀러간다는데 우리는 왜 집에만 있냐‘고 말하더라. 애들도 엄마가 바쁜데 익숙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 한다. 그래도 아이들이 엄마가 일하는 응급실까지 몇 번 마중나와보니 '이런데서 일하는구나'라면서 뿌듯해하는 모습도 있다.

"설·추석에 집에 가본 적 없어" 응급실 의사 강샛별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인 강샛별 씨는 의사가 된 뒤 명절에 고향 부산에 내려가본 적이 없다. 응급실 환자가 많다보니 귀성 날짜를 잡기도 어렵다. [사진 강샛별씨]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레지던트인 강샛별 씨는 의사가 된 뒤 명절에 고향 부산에 내려가본 적이 없다. 응급실 환자가 많다보니 귀성 날짜를 잡기도 어렵다. [사진 강샛별씨]

이번 연휴에 얼마나 근무했나.
평소보다 휴가가 좀 길게 배정되어서 그나마 10일 중 4일만 근무하게 됐다. 하지만 밤 근무와 낮 근무를 오가야 해서 고향인 부산에 가는 건 꿈도 못 꾼다. 동료 중 많이 근무하는 사람은 최대 8일까지 일하기도 한다.
명절에는 환자가 많아서 더 바쁘겠다.
이번에도 부모님이 다 올라오셔서 다행히 얼굴이라도 뵈었다. 집밥을 차려주셔서 그나마 명절 같은 명절을 처음 보냈다. 올해로 레지던트 생활 4년차인데 설·추석에 집에 가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부모님이 응급실 근처에 오시면 얼굴만 잠시 볼 정도다. 평소보다 환자가 더 몰리기 때문에 근무 중 끼니라도 때우면 다행이다. 이 시기엔 근무자가 추가되지만 평소보다 훨씬 분주하다. 병원이 있는 경기도뿐 아니라 충청, 강원도에서도 환자가 많이 올라온다.
명절에 오는 환자는 상태가 어떤가.
아무래도 경증 환자가 많은 편이다. 추석 연휴 전에는 고향에 내려가기 싫어서 ’팔이 아프니 요리를 못 하니까 진단서 써달라‘는 경우도 있다. 연휴 초반에는 음식 준비하다가 손목이 나가는 경우가 많고 뒤로 갈수록 가족과 만나서 스트레스를 받아 호흡곤란이나 흉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늘어난다.
황금연휴에도 환자 진료를 위해 출근한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의료진. 이곳 응급실은 인근 경기도 외에 충청, 강원 지역에서도 응급 환자가 몰리면서 명절엔 더 붐빈다. [사진 강샛별 씨]

황금연휴에도 환자 진료를 위해 출근한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의료진. 이곳 응급실은 인근 경기도 외에 충청, 강원 지역에서도 응급 환자가 몰리면서 명절엔 더 붐빈다. [사진 강샛별 씨]

그래도 응급실에 있으면 항상 긴장할텐데.
경증 환자도 많이 오지만 심정지가 오는 환자도 하루에 1~2명씩 항상 발생한다. 산부인과 환자 중에 출산 후 출혈이 나타나면서 실려올 때도 매우 급박하다. 항상 긴장을 하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응급실 의사 생활을 택한 이유가 있나.
환자를 처음에 딱 보고 어떤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내린 뒤 초기 처치를 하는 게 보람이 크다. 환자가 어떻게 치료를 받을 지, 그 방향을 결정하는 최전선의 역할이다. 의사를 다시 하라고 해도 응급의학과로 가겠다.
항상 바쁘지만 보람을 느낄 때도 많겠다.
심장이 멈춘 환자에게 심폐소생을 해서 멀쩡하게 다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다. 수많은 환자들이 몰려오지만 그 사람들이 살아서 나가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만큼 회복되는 모습은 기억이 생생하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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