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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빠진 의원들만의 국회 특위 … “개헌 논의에 시민 참여시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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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운 기자 중앙일보 기자

내 삶을 바꾸는 개헌 ③ 중앙권력, 왜 지방으로 나눠야 하나 

미생(未生)에서 완생(完生)으로.

아일랜드 개헌 땐 시민 참여 높아 #생활밀착 이슈, 바뀐 헌법에 반영

1987년 헌법은 ‘미완’이다. 그해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 선언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의 물꼬가 터지면서 12월 대선 전까지 개헌안을 내놓아야 했기 때문에 논의 시간은 빠듯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시급한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위해 만들어진 여야 ‘8인 정치회담’(당시 민정당의 권익현·윤길중·이한동·최영철 의원, 통일민주당의 김동영·박용만·이용희·이중재 의원)은 3개월 남짓 가동됐다. 당시 국회 개헌특위 회의록을 보면 “개헌작업이 공청회 한 번 개최하지 않은 데다 각계각층의 의견도 수렴하지 않은 채 8명이 밀실에서 만든 불행한 헌법”(한석봉 신한민주당 의원)이라고 지적하는 대목이 나온다.

현재 국회에서 가동 중인 개헌특위는 10월 말까지 원탁토론 및 대국민 보고대회를 하고, 12월까지 헌법조문을 작성한 뒤 내년 2월까지 개헌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특위의 개헌 로드맵에는 국민 참여 통로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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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황에서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 개헌안을 만들 경우 ‘정치인만의 개헌’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앙일보가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4명 중 3명이 개헌에 국민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개헌안을 마련하는 방식은 어떤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74.9%가 ‘국민 참여기구가 개헌안을 만들어 국회나 정부에 제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국회의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의원 299명의 전수조사(241명 응답)를 한 결과에서 5명 중 4명(82.2)이 ‘국회 개헌특위에서 마련하는 방식’에 찬성했다.

야권의 한 의원은 “대한민국이 고대 아테네도 아니고 헌법을 고치는 데 5000만 국민의 민의를 반영하다가는 1세기가 걸려도 시간이 모자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에 국민의 참여를 확보하지 못하면 또다시 선거용 개헌으로 전락해 정통성과 민주성에 대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지문 연세대 연구교수는 “인구 규모(501만 명)가 우리보다 적어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국민 참여 형태로 개헌한 아일랜드 헌법의회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아일랜드 헌법의회는 의장 1명, 의원 33명, 시민 66명 등 100인으로 구성된 헌법 논의기구다. 의회와 시민의 비율을 1대 2로 구성했다.

시민 66명은 선거인 명부를 기반으로 선출하되 대표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여론조사 회사가 선발작업을 전담토록 했다.

아일랜드 헌법의회는 2012년 12월부터 1년4개월 동안 10건의 개헌사안을 검토했다. 이 중 대통령 출마 자격을 35세에서 21세로 낮추는 안과 동성끼리의 결혼을 허용하는 안 등 2건을 최종 선정해 국민투표에 부쳤다. 그 결과 대통령 출마 연령을 낮추는 안은 국민투표에서 부결됐으나 동성혼 문제는 채택됐다. ‘리셋코리아’(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개헌특별분과는 일곱 차례의 회의를 통해 “개헌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절차 역시 중요하며 어떤 방식으로건 국민이 참여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미래에 대한 공동의 합의를 만드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결론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