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리온 평가한 준장 청탁받고, 지원자 면접점수 조작해 채용한 KAI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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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일 검찰에 긴급체포된 하성용(66)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전 대표는 분식회계 등의 혐의와 함께 KAI의 채용비리에 관여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하 전 대표의 ‘오른팔’로 불린 이모(62) KAI 경영지원본부장이 연루된 채용비리의 정점에 하 전 대표가 있다는 의혹이다.

하성용 측근 이모 본부장 영장 #자격 미달 15명 정규직 채용 의혹

검찰은 이 본부장이 육군본부 시험평가단장이었던 김모 준장(현재 전역)에게 평가 편의를 봐달라고 부탁한 뒤 취업 청탁을 들어준 혐의(뇌물공여) 등을 포착해 지난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본부장은 자격 미달자 15명의 서류를 조작해 정규직 사원에 채용한 혐의(업무방해)도 받고 있다.

김 전 준장은 같은 사건으로 이미 군 검찰에 제3자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의 부하였던 송모 대령도 2016년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이 본부장 수사 과정에서 이들이 연루된 KAI 채용비리가 다시 한번 드러났다.

◆‘면접 점수 미달’인데도 입사=공기업의 성격을 띠는 KAI는 연봉과 처우가 좋은 편이어서 구직자들의 취업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송 대령은 자기 아들과 아들 친구 전모씨를 KAI에 채용되도록 2013년 KAI 간부에게 이력서를 전달했다.

두 사람은 입사 자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취업했다. 송 대령의 아들은 고등학교 성적이 하위 35%로 지원 요건(상위 30%)에 미달했고, 전씨는 면접 점수 최저 합격선인 80점에 못 미치는 76점이었다. 하지만 면접 점수는 88점으로 수정됐다.

송 대령의 상관이었던 김 준장은 지인의 부탁을 받고 대졸자 김모씨의 KAI 취업을 청탁했다. 지방 사립대 통계학과를 졸업한 취업준비생 김씨는 토익 점수 640점에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이 유일해 30대 1의 경쟁률을 뚫기엔 ‘취업 스펙’이 빈약했다.

하지만 김 준장은 ‘봉침 시술’을 받으면서 알게 된 한 목사의 부인 함모씨로부터 “김씨의 KAI 취업을 잘 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입사를 성사시켰다.

당시 김 준장은 수리온 헬기의 수락시험비행평가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었다. 정부가 중점을 둔 국책사업이어서 수락시험비행평가는 KAI의 필수 과제였다. 김 준장과 KAI는 ‘갑을 관계’였던 셈이다.

김 준장은 송 대령에게 “이번에 입사되는 방향으로 해 달라”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지원서에 ‘대졸’ 기재하는 바람에=김 준장은 같은 시기 함씨로부터 “친구 아들이 수학을 전공했고 KAI 입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2명의 취업을 부탁했다. KAI의 한 간부에게 이력서를 전달했지만 지원 서류에 ‘4년제 졸업’이라고 적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입사는 좌절됐다. KAI 생산직군은 고졸 혹은 전문대 졸업자만 지원할 수 있었다.

검찰은 하 전 대표가 이 같은 채용비리 과정에서 불법 행위를 공모했는지 등을 따져본 뒤 21일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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