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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쓸신세]왕과 2번 결혼한 미모의 왕비와 아들 7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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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⑪사우디 왕실의 권력다툼 <2>

이븐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초대 국왕이 22명의 부인에게서 아들 45명을 얻은 건 지난 [알고보면 쓸모있는 신기한 세계뉴스] 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열 번째 부인 수다이리 왕비의 일곱 아들, ‘수다이리 세븐’의 세력이 강했다는 것도요.
이번 ‘알쓸신세’에선 수다이리 7형제의 권력과 그들을 견제하려는 시도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국왕 둘, 왕세제 둘…막강 ‘수다이리 7형제’

형제 세습은 형제들이 나이 순서대로 왕위를 물려받는 걸 원칙으로 합니다.
아무리 국왕의 총애를 받았다 해도 열 번째 부인인 수다이리 왕비의 아들들에게 왕위가 돌아올 때까지는 적지 않은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들이 권력에 처음 다가간 건 칼리드 국왕(1975년~1982년 재임) 시절입니다. ‘수다이리 세븐’의 장남인 파드가 왕세제에 오르고 나머지 형제들도 요직을 차지하면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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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드 국왕이 즉위 6년 만에 사망한 뒤 1982년 파드가 5대 국왕에 즉위합니다. 이미 60세가 넘은 나이였지만 그는 2005년까지 무려 23년을 집권하면서 수다이리 권력의 철옹성을 쌓습니다. 형제들은 국방·내무장관 등 요직을 맡으며 권력의 핵심을 차지합니다.

뒤이은 6대 국왕 압둘라는 수다이리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즉위한 뒤 외신엔 “수다이리의 힘이 빠졌다”는 보도가 이어지기도 했죠. 왕국에서 왕의 자리를 내어줬으니 이런 보도가 나올 만도 했던 거죠. 하지만 이미 탄탄하게 다져진 수다이리파의 권력은 기가 꺾이지 않았습니다.
압둘라를 이을 승계 순위 1위가 또다시 수다이리의 아들이었으니까요. 술탄 왕세제입니다. 그는 2011년 국왕보다 먼저 사망하면서 왕위에 오르지는 못합니다.

술탄을 이어 왕세제가 된 이도 수다이리의 아들 나예프였습니다. 그는 수다이리의 넷째 아들입니다. 셋째 아들인 압둘 라흐만이 있지만, 그는 후계자 인선을 담당하는 ‘충성위원회’ 구성에 홀로 반대했다가 미운털이 박혀 승계 서열에서 제외됐습니다.
 형을 제치고 왕세제가 된 나예프도 책봉 이듬해 사망합니다. 국왕인 형이 사망한 뒤에야 왕권을 물려받을 수 있는데, 압둘라 국왕이 예상보다 오래 사는 바람에 왕이 되지 못한 거죠. 이처럼 형보다 먼저 사망해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세제는 사우디에 여럿입니다.
나예프가 사망한 뒤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 다섯 째 투르키를 건너 뛰고, 수다이리의 여섯 째 살만이 왕세제가 됩니다. 현 국왕이 살만입니다.
아들 7명 중 국왕이 된 자가 둘, 왕세제였던 자가 둘. ‘수다이리 세븐’의 위력이 짐작되고 남습니다.

1945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이븐 사우드 사우디 초대 국왕.[AP=연합뉴스]

1945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이븐 사우드 사우디 초대 국왕.[AP=연합뉴스]

1980년 사우디를 방문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칼리드국왕과 회당 중이다. [중앙포토]

1980년 사우디를 방문한 최규하 전 대통령이 칼리드국왕과 회당 중이다. [중앙포토]

예상 깨고 장수한 압둘라…수다이리 핏줄 견제   

수다이리의 소생이 아니었던 6대 압둘라 국왕은 원래 세력이 미미했습니다. 즉위할 때 이미 나이가 여든을 넘었고요. 아마 수다이리파는 압둘라 국왕을 잠시 거쳐가는 과도기로 여겼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상 외로 압둘라 국왕은 10년을 재위합니다. 그 새 수다이리 세븐의 두 왕세제가 먼저 사망한 거고요.

압둘라 국왕은 왕위를 지키는 동안 수다이리파를 견제할만큼 힘을 키웁니다. 말년엔 자신의 아들들을 권력 전면에 내세우기도 하고요. 살만 왕세제를 축출하기 위한 시도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2015년 서거 직전엔 이복동생인 무크린 왕자를 부왕세제에 지명했습니다. 지명을 번복할 수 없다는 칙령까지 선포합니다.
압둘라가 이렇게까지 부왕세제를 못박은 건 왕세제인 살만이 아닌 무크린에게 왕권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당시 사우디엔 살만이 치매를 앓고 있으며 얼마 살지 못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습니다. 이런 살만을 제치고 무크린을 왕좌에 앉혀 ‘수다이리파’를 뿌리뽑고 싶었던 거죠.

그러데 말입니다. 2015년 7대 국왕에 오른 살만은 멀쩡했습니다. 즉위 초엔 치매설, 궁정 쿠데타설이 돌면서 왕권을 흔들려는 움직임이 이어졌지만, 살만은 굳건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뒤를 잇기로 정해진 무크린을 퇴위시킵니다. 대신 조카인 빈나예프를 왕세자로 책봉합니다. ‘수다이리 세븐’ 중 넷째로, 앞서 왕세제 신분으로 세상을 뜬 나예프 왕자의 아들입니다. 지난 6월 물러난 바로 그 빈나예프이기도 합니다.

당시 결정은 ‘수다이리의 핏줄’이 다시 권력을 잡았다는 의미입니다. 또 마침내 아들에서 손자 세대로, 사우디 왕실이 세대 교체를 선언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지난 4월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리에서 촬영된 대형 입간판. 당시 왕세자였던 빈나예프 왕자(왼쪽), 살만 국왕(가운데), 새로 왕세자에 책봉된 빈살만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수다이리 왕비의 핏줄이다.[AP=연합뉴스]

지난 4월 사우디아라비아의 거리에서 촬영된 대형 입간판. 당시 왕세자였던 빈나예프 왕자(왼쪽), 살만 국왕(가운데), 새로 왕세자에 책봉된 빈살만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이들은 모두 수다이리 왕비의 핏줄이다.[AP=연합뉴스]

부자 세습으로 전환…권력 장악한 수다이리파

이후 살만 국왕은 자신이 오랫동안 그려온 구상을 실천에 옮깁니다. 빈나예프를 폐위하고 자신의 아들 빈살만에 책봉한 겁니다. 형제 세습에서 부자 세습으로 일대 전환을 이룬 거지요.

사우디 국왕의 재위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습니다. 나이 순서에 따라 형제가 왕위를 물려받다 보니 한참 나이 들어서야 왕에 올랐기 때문입니다. 5대 국왕인 파드 국왕이 이레적으로 23년 간 재위했지만, 2·3·4·6대 국왕의 재위 기간은 10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사우디 왕실의 세대 교체는 이런 점도 고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고 싶은 살만 국왕의 ‘사심’이 물론 컸겠지만, 젊고 안정적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왕에 대한 필요성도 느꼈겠죠.

왕세자 교체 직후인 지난 7월 로이터 통신은 “살만 국왕이 생전에 아들에게 왕권을 이양할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미 양위 선언문을 녹음해뒀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실제 국왕의 퇴위가 이뤄질지 여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쇄신하겠다며 세대 교체를 선언한 사우디가 앞으로 달라질 수 있을지, 또 그 변화가 중동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 전 세계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국왕과 2번 결혼한 수다이리 왕비

하사 빈트 아메드 알 수다이리는 이븐 사우드 국왕의 열 번째 부인이자 가장 사랑받은 아내입니다.
미모가 출중하고, 현명하며 강인했던 그는 가장 많은 자녀까지 낳아 사랑을 독차지했죠. ‘수다이리 세븐’으로 불리는 일곱 아들 뿐 아니라 딸도 넷을 뒀습니다.
수다이리는 아라비아 반도 나즈드 지방의 토호, 수다이리 가문 출신입니다. 사우디 건국 사상의 토대인 와하비즘의 발원지가 수다이리의 고향이죠. 주요 지역의 유력 집안 출신이라는 수다이리의 배경은 훗날 ‘수다이리 세븐’이 나머지 왕자들과의 세력 다툼에서 승리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터입니다.

지난 6월 사우디의 새 왕세자에 책봉된 살만 국왕의 아들 빈살만(가운데)이 수백 명을 넘는 사우디 왕자들로부터 충성 맹세를 받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 현재 사우디는 수아디리 왕비의 아들인 살만 국왕, 손자인 빈살만 왕세자가 권력을 다 쥐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6월 사우디의 새 왕세자에 책봉된 살만 국왕의 아들 빈살만(가운데)이 수백 명을 넘는 사우디 왕자들로부터 충성 맹세를 받는 행사에 참석한 모습. 현재 사우디는 수아디리 왕비의 아들인 살만 국왕, 손자인 빈살만 왕세자가 권력을 다 쥐고 있다. [EPA=연합뉴스]

수다이리는 13세일 때 38세인 국왕의 8번째 부인이 됩니다. 국왕과의 첫 결혼이었습니다. 이 결혼은 이내 깨지고, 수다이리는 국왕의 이복 형제와 재혼을 합니다. 아들도 한 명 낳았고요. 하지만 수다이리를 잊지 못했던 왕은 이복동생을 이혼시키고 수다이리와 재혼 합니다. 10번째 부인으로 다시 맞은 겁니다.
1969년 수다이리는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사후에도 그가 낳은 아들들은 사우디의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현재는 아들인 살만이 국왕, 손자인 빈살만은 왕세자입니다. 수다이리의 핏줄이 마침내 권력을 독점하게 된 거죠.
‘사우디는 죽은 왕비 수다이리의 나라’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겠죠.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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