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미 대선 때 러시아가 10만 달러 정치 광고"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TASS/AP=연합뉴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TASS/AP=연합뉴스]

페이스북이 지난해 미국 대선에 러시아가 개입한 증거를 확인했다고 6일(현지시간) 밝혔다. 페이스북 보안책임자 알렉스 스타모스는 러시아가 수백개의 가짜 계정을 만들어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 광고비로 10만 달러(약 1억원) 이상 지출했다는 성명을 냈다.

크레믈린궁 선전했던 러시아 SNS 여론 조작 회사 연루 #인종, 총기, 동성애, 이민 등 메시지로 사회분열 조장

약 3000개의 광고 중 대부분은 특정 후보자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동성애자 권리, 총기 규제, 이민, 인종과 같은 사회분열적 문제를 제기하는 데 중점을 뒀다는 것이다. 2015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게재된 이들 광고는 지금은 폐쇄된 470개의 가짜 계정이나 페이지와 연결돼 있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들 가짜 계정이 소셜 미디어나 뉴스 사이트에 댓글을 남기는 '트롤' 계정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라는 러시아 회사가 생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페이스북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페이스북은 지난해 대선 광고 중 이 회사에 일부 계좌가 연결돼 있다는 증거가 있지만, 페이스북이 독자적으로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는 2013년 러시아 전역에서 600명을 고용해 여론 조작 활동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회사의 전직 직원이 가짜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러시아 크레믈린궁의 선전물을 유통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2015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이 회사와 연결된 소셜 미디어 계좌가 미국의 SNS에서 미디어 캠페인을 시작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광고 중 약 4분의 1은 지역 타겟팅이 돼 있었다. 페이스북 광고에는 특정 지역 거주자를 대상으로 광고를 하는 기능이 있다. 또 2016년 보다는 2015년에 더 많이 집행됐다.

러시아의 온라인 영향력 캠페인을 연구한 전직 FBI 요원 클린트 와츠는 러시아의 2015년 광고는 이와 같은 사회 분열적 메시지에 취약한 사용자를 식별하는 용도로 쓰였고, 이들을 대상으로 2016년 선거 관련 광고를 집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NYT에 말했다.

현재 외교정책연구소 수석 연구원으로 근무중인 와츠는 "우리는 이런 의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누가 계좌를 구매했는지는 결코 볼 수 없었다"면서 "페이스북이 용감하다. 그들은 올바른 일을 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IP를 사용하지만 러시아어로 설정된 계정에서 집행하는 광고는 반드시 미국의 정책이나 법률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페이스북은 이러한 계정을 광범위하게 검토한 결과 약 2200개의 정치 관련 광고에서 5만 달러가 집행됐다는 것도 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지난해 대선 트럼프에 패한 힐러리 클린턴. 트럼프의 당선에 러시아의 은밀한 도움이 있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대선 트럼프에 패한 힐러리 클린턴. 트럼프의 당선에 러시아의 은밀한 도움이 있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AP=연합뉴스]

페이스북이 선거 캠페인 당시 가짜 정보가 확산되는 플랫폼으로 사용됐다는 비판이 일자 지난해 11월 마크 주커버그는 이 문제를 조사하겠다고 약속하면서도 99%는 진짜고 '아주 적은 금액'만 가짜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12월 사실 확인 기관의 도움을 받아 허위나 위조로 간주된 기사를 신고하도록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페이스북은 사이트의 무결성을 보호하고, 사기 계정을 추적하는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470개 가짜 계정 중 아직도 활동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폐쇄했다고 발혔다. 최근엔 가짜 뉴스를 공유하는 패턴이 확인될 경우 페이스북 페이지 광고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 지난 몇 개월간 프랑스와 독일 선거에 간섭하는 가짜 계정을 차단하는 조치도 취했다고 한다.

페이스북이 이날 공개한 내용은 러시아가 지난 대선 캠페인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한 광범위한 여론전을 펼쳤음을 시사하고 있다.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내통설로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선정돼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허리케인으로 한동안 잠잠해진 여론에 다시 기름을 끼얹은 셈이다. 페이스북은 이 같은 자체 조사 결과를 미국 수사 당국과 공유했으며, 필요하다면 조사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관련기사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