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업계와 인천공항 ‘밀당’ , 롯데 사업권 포기 카드 제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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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점업계가 중국 경제 보복의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1위 사업자인 롯데면세점이 ‘인천공항 면세점 철수’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롯데면세점이 사업권을 포기하면 신라와 신세계 등의 연쇄 이탈도 가능하다.

롯데면세점 인천공항 임대료 "감당 못해" #사드 보복 지연...조정 없으면 철수 검토 #업계 "인천 철수 검토 사업자 속출할 수도"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4일 “인천공항공사 측에 임대료 인하를 지속해서 요청하고 있지만, 협상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며 “임대료 인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인천공항 사업권을 포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사드 (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태 이후 주 고객층이었던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면세점 영업 환경이 급변했다. 3기 면세사업자 선정 당시인 2015년엔 면세점업이 연 30%씩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롯데는 이에 맞춰 5년간 임대료로 약 4조원을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으로 사업권을 따냈다. 하지만 전망은 빗나갔고 롯데면세점은 지난 2분기 사상 첫 적자(298억원)를 기록했다.

사드 사태 이후 적자 폭이 큰 공항 면세점 철수설은 계속 제기됐다. 앞서 한화갤러리아는 제주공항 면세점 철수를 선언했다. 당초 지난달 말까지만 영업하기로 돼 있었지만, 제주공항의 요청으로 연말(12월 31일)까지 남기로 했다. 대신 임대료를 영업 요율로 조정했다. 한화 갤러리아 관계자는 “사드 이후 월 매출은 15억~17억원 수준인데 임대료는 21억원 상당이라 버틸 수가 없었다”며 “매장을 비워두느니 할인해 주는 것으로 결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항 면세점은 임대료가 높아 관광객이 많을 때도 수익이 많지 않았다. 면세점 사업자들은 국가 관문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적자가 나더라도 공항 면세점 사업을 해 온 것이다. 공항에서 손해를 봐도 시내 면세점에서 나는 수익으로 메꾸는 식으로 운영됐다.
 롯데는 5년 가운데 3∼5년차(2017년 9월∼2020년 8월)에 전체 임대료의 75%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계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업 면적이 가장 넓어 임대료 부담도 신라(1조5000억원대)나 신세계(4000억원대)에 비해 훨씬 크다. 뒤로 갈수록 임대료가 오르는 구조라 2019년과 2020년엔 연간 1조원씩 내야 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무리한 사업을 단행한 롯데의 자업자득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사드 보복 ^시내 면세점 사업자 확대 ^특허 수수료 인상 등은 입찰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한 외부 요인이라는 게 롯데 측 설명이다.

게다가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영업이익 1조3000억원을 달성했고, 영업이익률은 59.5%에 이른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지난 20년간 한 번도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한 적이 없고 롯데 면세점이 인천공항의 발전에 기여해온 측면이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사업자를 외면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롯데ㆍ신라ㆍ신세계 등 인천공항 입점 면세점 업체 대표들은 지난달 30일 정일영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을 만났지만 성과는 없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무작정 손실을 보면서 영업을 할 수는 없다”면서 “롯데가 사업권을 포기하면 연쇄적으로 인천공항에서 철수하는 사업자가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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