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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공정위가 만든 ‘17일’ 시한부 수사에 검찰 '부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세조사부(부장 구상엽)가 ‘초치기’ 수사로 비상이 걸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고발한 국제 담합 사건의 공소시효가 5일(31일 기준)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데드라인이 얼마 안 남아 잘못하다간 제대로 기소하지 못할 수도 있게 됐다. 진행 중이던 수사들을 멈추고 이 사건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연합뉴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사달은 공정위가 지난 18일 ‘해상운송업체 국제 담합 사건’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공정위는 수출용 차량을 운송하는 국제 해운 회사들이 해상 노선을 나눠 갖고 운송비용을 담합했다며 일본 5개, 노르웨이 2개, 칠레 1개, 이스라엘 1개, 한국 1개 등 5개 나라의 10개 해상운송사업자를 조사했다.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430억원을 부과하고, 이 가운데 8개 업체를 검찰에 고발했다.

해상운송업체 국제 담합 사건으로 촉발 # 18일 고발, 9월 5일 자정이 데드라인 # 검찰 “17일간 수사는 미션 임파서블” # 공정위 “조사에 어려움 있었다”

문제는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9월 5일 자정’이라는 데 있다. 수사 가능 시간이 공정위로부터 사건을 접수(18일 오후 4시)한 때부터 총 ‘17일+8시간’밖에 없었다. 그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선적을 위해 대기 중인 자동차들. [연합뉴스]

선적을 위해 대기 중인 자동차들. [연합뉴스]

검찰 관계자는 “공정위가 무슨 생각으로 시효가 2주 남은 사건을 고발했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로서는 기소를 안 하면 덮어주는 꼴이 되고, 기소했다가 무죄가 나면 실력 없는 게 된다”고 말했다.
검찰은 공정위가 불러 진술을 들은 사람이 50명이 넘고, 자료가 방대하고, 국제 카르텔 사건은 해외에 나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 소환 조사에도 시간이 걸린다고 토로한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는 이번 사건을 2012년부터 5년간 조사했다. 그걸 검찰에게 17일 만에 수사하고 기소 여부까지 결정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한마디로 미션 임파서블(불가능한 임무)이다“고 말했다.

공정위도 검찰의 난감한 상황에 대해선 인정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건을 보내면서 우리도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담합사건에 대한 공정위 행정처분(과징금 부과 등)은 공소시효가 최대 12년인데 검찰이 따르는 형법 기준으로는 5년이다. 공정위 측은 이번 국제 담합 사건은 전세계 해상 노선을 조사하고, 관련된 여러 나라가 자체 조사도 진행했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설명하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연합뉴스]

법조계 일각에는 공정위가 검찰 고발을 하지 않으려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갑자기 방침을 바꾸는 바람에 시효 17일을 남겨 놓고 고발한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정위가 김상조 위원장 취임 후 더욱 힘을 받는 모습이다. 공정위의 무리한 고발에 검찰이 반발하기도 어려운 상황일 것으로 짐작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백혜련 의원실에 따르면 공정위의 고발 건수는 2015년 51건, 2016년 49건이었지만 올해는 8월 말 현재 59건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취임한 지난 6월 14일부터 8월 30일까지 약 2개월간의 고발 건수는 21건으로 크게 늘었다.

공정위 측은 “안 보내려던 사건을 뒤늦게 고발한 건 절대로 아니다. 처리할 사건이 많아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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