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북한의 ‘미사일 마이웨이’ 대응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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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장광일 동양대 국방과학기술대학장

장광일 동양대 국방과학기술대학장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무시하면서 연거푸 미사일을 쏘며 마이웨이식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북한이 이번 기회를 잘 이용하면 군사분계선상의 긴장 해소를 명분으로 그토록 원하는 심리전 방송 중단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미사일 발사는 더욱 대담해지고 있다. 고각 발사를 통한 시험발사가 아니라 무기급 미사일을 정상 각도로 발사하는 것은 위협을 노골화하는 신호다. 문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안중에 없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시그널도 보낸다.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 #원래 일정표대로 실행하는 것 #대화 노력이 허무해지는 환경 #동맹 간 한목소리만이 대응책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정도는 참고 지낼 만한 내성이 생겼는지 자체 일정표에 따라 하나씩 쏴 올리고 있다는 판단이 든다. 어떠한 난관이 오더라도 핵과 미사일만큼은 조기에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핵 능력을 고도화하고 미사일 완성도를 높여야 핵보유국의 지위를 인정받고 판을 키울 수 있다. 대화와 협상을 하더라도 그때 가서 하는 것이 단연 유리하다고 보고 서두는 것 같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자체 입수한 미 국방정보국(DIA) 보고서를 토대로 ‘북한이 핵탄두 소형화에 성공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7월 말 현재 최대 60여 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난 8일 자로 보도했다. 핵무기 소형화에 든 기간은 핵실험을 한 뒤 2~7년 정도 걸리는데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갈수록 소형화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북한의 경우 첫 핵실험을 한 지 11년이 지났고, 지난해 9월 제5차 핵실험 직후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핵탄두를 마음먹은 대로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북한 발표를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다고 해도 핵 고도화에 광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여러 정황, 그리고 기폭실험 후 나타나는 원형 흔적이 점점 작아지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북한 핵무기 소형화 능력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다’는 정도의 정부 보수적 평가 수준을 이미 훨씬 넘었다고 봐야 한다.

이제 핵탄두를 탑재한 미사일을 선보일 시간이 시시각각 다가오는데 우리 정부는 희망적 사고 중심으로 상황을 낙관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문재인 정부는 2020년이면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 합의 도출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북핵 레드라인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하고 그것에 핵탄두를 탑재해 무기화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 말의 뉘앙스는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그때까지는 북한이 다시 도발을 할 수 있다는 빌미를 줄 수 있다.

정작 우리에게 직접 위협이 되는 것은 ICBM이 아니라 스커드나 노동미사일로, 이미 작전 배치까지 완료된 상태다. 레드라인은 우리 안보에 대한 최후의 경고선이자 북한이 넘어서는 안 될 금지선이다. “핵무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김정은에게 우리 정부의 평화적 해결방법이 통할지 의문이다.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도 분명치 않다.

문 대통령은 앞서 8·15 경축사에서 “한반도 군사행동은 대한민국만이 결정할 수 있고, 누구도 대한민국의 동의 없이 군사행동을 결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전쟁의 참화를 막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려는 대통령의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맹국인 미국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이 발언은 불필요한 오해를 자초하지 않기 위해 좀 더 유연했어야 했다. 우리는 미국과 유일하게 군사동맹을 맺고 유사시에는 연합작전을 하게 된다. 한·미 연합작전의 의사 결정은 북한 위협에 대한 공동 인식을 기반으로 양국의 국가 및 군사통수기구의 협의를 통해 주요 군사행동을 결정한다.

국가 자위권 차원에서 우리 군 전력만을 운용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에 대응하려면 미국의 전략자산 지원이 필수적이다. 레드라인의 선택지에서 한쪽에 족쇄를 채워버리면 회심의 미소를 지을 사람은 김정은이다.

동맹 간에는 자국의 국익 못지않게 상호 간 신뢰가 동맹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동맹은 위협에 대한 공동인식, 가치의 공유, 흔들림 없는 신뢰가 바탕이다. 급변하는 국제 환경에도 우리가 주도 역할을 하겠다는 자세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운전석 옆 동반자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동맹 간 가치 공유와 확고한 신뢰가 필수적이다. 이에 기반해 한 방향으로 운전하려는 노력이 전쟁을 방지하고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전제조건이다.

장광일 동양대 국방과학기술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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