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헌재 재판관, 정치권 기웃거린 인물은 부적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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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어제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의 정치 편향성 논란과 관련해 “사회적 약자와 여성 인권 정책을 실현해 줄 정치인을 응원하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2002년 노무현 대선후보, 2004년 민주노동당, 2011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2012년 문재인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 선언을 두고 한 말이다. 그러면서 “주도하지는 않았고, 선후배 법조인이 참여해 달라고 해 같이했다”고 했다. 지난 3월 더불어민주당 인재 영입 대상이 된 배경에 대해선 “여성단체로부터 제 이름을 줘도 되겠느냐고 연락이 와서 동의했다”는 것이다. 자신의 적극적 의지와 상관없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참여에 불과하다는 변명이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보면 선의라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이 후보자는 박 시장 후보를 지지한 이듬해인 2012년부터 올해까지 50여 건의 서울시 소송을 수임했다. 특정 변호사가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인이 수장으로 있는 자치단체에서 대거 사건을 따낸 것에 특혜 의혹도 나올 법하다. 이 후보자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후원금도 기부했다. 이 정도면 “현실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는 이 후보자의 말은 궤변에 가깝다. 도덕적으로 개운치 않다. 주식 투자, 허위 재산신고, 위장전입, 해외 계좌 신고 누락 등 의혹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특히 법관인 배우자는 주식 투자로 1년 새 3.8배가 뛰어 12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정상적인 절차를 밟은 것인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한 대목이다.

헌법재판관의 중요성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서 잘 보여 줬다. 정치사건뿐 아니라 간통죄 위헌 결정과 같이 시대적 흐름을 바꾸는 사람이 재판관이다. 기울어진 균형감각에서 나온 헌법적 판단은 끊임없이 의심받고 분란만 일으킬 것이다. 헌법과 법률을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엄중한 자리에 자의든 타의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인물은 부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