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그리거 리뷰] 졌지만 명분-실리 다 챙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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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TV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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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네바다주의 라스베이거스 T-모바일 아레나는 아일랜드인들의 함성으로 들끓었다. 아일랜드 스포츠 선수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코너 맥그리거(29·아일랜드)를 응원하는 팬들이 2만 개의 관중석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1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맥그리거가 '복싱의 전설' 플로이드 메이웨더(40·미국)를 몰아붙이는 모습에 아일랜드 팬들은 뜨거운 함성을 토해냈다. 맥그리거가 (메이웨더의 커버링 위라도) 큰 펀치를 날릴 때마다 T-모바일 아레나에는 천둥이 치는 것 같았다. 4라운드 이수 맥그리거가 밀릴 때도 응원은 멈추지 않았다. 맥그리거의 체력이 바닥난 8라운드부터는 아일랜드 축구 응원가가 더욱 커졌다.

맥그리거는 초반부터 적극적으로 밀고 나갔다. 종합격투기 UFC에서는 카운터 펀치를 주로 사용했지만 메이웨더가 수세적으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강공을 펼쳤다. 복싱 역사상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는 메이웨더를 상대로 맥그리거는 위축되지 않았다. 1,2 라운드에는 제법 위력적인 라이트 훅과 어퍼컷을 적중하기도 했다. 그러나 초반에 승부를 끝내지 못한 부담감은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더욱 커졌다.

경기 중반부터는 메이웨더의 페이스였다. 맥그리거의 풋워크가 눈에 띄게 느려졌고, 얼굴에 펀치를 맞기 시작했다. 맥그리거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체력이 떨어진 탓에 가드가 내려간 상태에서도 강력한 역습을 시도했다. 또한 종합격투기식 클린치에 이어 반칙성 후두부 공격을 펼쳐 메이웨더의 신경을 건드렸다. 메이웨더는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9라운드에는 메이웨더의 에너지가 급격히 빠졌다. 라운드별 3분씩을 치렀으니 27분을 싸운 셈이었다. 종합격투기 경기시간은 5분씩 5라운드다. 맥그리거는 복싱 데뷔전이 장기전으로 흐르자 대책이 없었다. 10라운드 시작과 함께 메이웨더의 연속 공격을 허용하자 주심이 경기를 중단했다. 스탠딩 다운을 선언해 다시 싸움을 붙일 수도 있었지만 심판은 그대로 메이웨더의 TKO승을 선언했다. 처음으로 복싱 경기를 치르는 맥그리거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맥그리거는 졌지만 쓰러지지 않았다. 맥그리거는 이기지 못했지만 승리 못지 않은 명분과 실리를 얻었다. 메이웨더를 제법 괴롭힐 만큼 복싱에서도 괜찮은 기량을 보였다. 향후 복싱과 UFC를 오가며 더 많은 빅 이벤트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맥그리거는 "심판이 경기를 일찍 중단한 게 아쉽다. 펀치 대결에서는 밀리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맥그리거는 UFC 최고 스타다. 그가 종합격투기를 하며 받았던 파이트머니 최고액은 300만 달러(34억5000만원)이었다. 그러나 메이웨더와의 복싱 경기에서 맥그리거는 파이트머니 3000만 달러(약 345억원)를 받게 됐다. 여기에 입장권과 PPV 수익을 더하면 맥그리거는 1억 달러(1150억원)를 벌 것으로 영국 가디언은 예상했다. UFC에서 10년을 뛰어도 벌기 어려운 돈을 복싱 한 판으로 번 것이다.

라스베이거스=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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