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북한 위협에도 대화에 나서야 하는 7가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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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손기웅 통일연구원 원장

손기웅 통일연구원 원장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고도화되면서 국제 제재 강화와 함께 군사적 대응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가장 강력하다는 대북제재 결의 2371호가 유엔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음에도 미·중 힘겨루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들의 대북 직접 거래도 거론된다. 북핵의 완전한 폐기가 아니라 동결이 목표가 될 개연성도 있다.

국제 재재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한반도 평화·통일은 우리의 국익 #대북 지렛대와 영향력 확보하면서 #북한 주민의 변화 노력 유도해야

정부의 베를린 구상에 기초한 남북대화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는 형국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금은 대화할 국면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힘에 의한 대북 우위의 실현을 논의했다고 한다. 북핵과 한반도 문제에서 우리의 역할을 강조했던 대통령의 고뇌가 느껴진다. 8·15 경축사의 핵심도 한반도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관계 개선 의지였다.

북핵 문제 해결과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억제하기 위한 국제적 제재는 당연히 지속돼야 할 뿐 아니라 강화돼야 한다. 그러나 국제 제재의 주목적이 한반도의 평화 번영이나 통일은 아니다.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를 전제로 전개되는 국제사회의 제재와, 남북의 평화 번영과 통일을 함께 지향해야 하는 우리의 국가 이익은 차이가 있다. 국제 제재와 더불어 남북대화가 필요한 근본 이유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의 동참이 절실히 요구되었고, 이를 위해 우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이 경주되었다. 그러나 중국이 함께하는 국제 제재가 강화될수록 중국의 대북 영향력이 커지는 반면, 우리의 입지와 대북 영향력은 줄어들 수 있다. 제재와 더불어 우리의 지렛대와 영향력 확보를 위해 남북 대화가 필요하다.

국제 제재를 통해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수도 있고 체제 변화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단절되고 악화된 남북 상황에서 국제 제재를 통해 변화된 북한과 북한 주민들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우리와 함께하기를 표출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망하다. 국제 제재와 더불어 북한 주민에게 함께하고자 하는 우리를 보여줄 수 있는 남북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1993년 북핵 문제가 처음으로 불거진 이후 지난 24년간 외교적 노력과 군사적 압박이 진행되었다. 외교적·군사적 노력이 지속되겠지만 이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이 과연 핵무기를 폐기할 것인가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다. 외교적 압박과 국제 제재와 더불어 북한 당국에 핵무기가 없이도 평화 공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북한 주민들에게 핵과 미사일 개발이 그들에게 행복이 아니라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임을 인지시켜야 한다. 북한 당국과 북한 주민의 변화를 위한 노력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남북대화가 필요하다.

남북 경협은 우리의 국가 성장에 필수적인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자원·시장 나아가 교통로를 확보할 수 있는 방편이다. 정치·군사적으로 안정적인 상황이 전제돼야 하겠지만 경협을 통한 우리의 경제적 이익은 북한이 가져가는 것보다 훨씬 크다. 개성공단이 대표적 사례였다. 북핵 고도화로 인해 악화된 현재의 상황에서 대규모 현금이 북한에 이전되는 형태의 경협이 국민 정서상 용납되기 어렵고, 국제 제재란 틀 내에서 가능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래 방법을 달리하는, 즉 대규모 현금이 이전되지 않는 형태로의 경협은 가능할 수 있고, 이를 위한 남북대화가 필요하다.

남북은 통일을 염원하고 있고 서로를 확인하고 간격을 좁히기 위해 하나로서의 감성을 일으키기 위해 만나야 한다. 쌍방이 합의할 수 있는 체육·문화·예술·종교 등의 분야, 큰돈이 이전되지 않는 형태의 접촉과 교류 협력은 이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남북대화는 필수적이다.

우리가 통일을 염원하는 이유는 통일 그 자체가 아니라 통일을 통해 한반도 전역에 자유와 민주·인권·복지를 실현하기 위해서다. 남북이 각자 인류 보편적 가치를 제고하기 위해 건전한 경쟁을 하고, 그 과정에서 남북 주민이 평화적 합의를 통해 통일을 이루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서로를 알아가려는 노력은 필수적이며 남북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강력한 국제 제재가 요구되는 엄중한 이 현실에서도 남북대화는 국가 성장과 통일을 기필코 실현해야 할 대한민국의 국민과 지도자에겐 소명이다. 그럼에도 대화의 힘을 잃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핵 개발 완수를 위해, 정권의 공고화를 위해 도발을 지속하는 김정은의 노림수에 다시 빠질 수 있다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한반도의 평화 번영,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의 실현을 위한 대화 노력은 흔들림 없이 지속돼야 한다. 국제사회와 손잡고 강력한 대북제재를 지속하는 동시에 상대가 잡든 말든 항상 다른 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 엄중한 현실에서도 찬연히 빛나는 우리의 진정성이자 힘이다.

손기웅 통일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