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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거친 문장에 담겨진 통렬한 비판 “획일화 된 예술에 미래가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문학이 있는 주말

더 나쁜 쪽으로
김사과 지음
문학동네

욕설이나 비속어 사용은 예사다. 처음 만나 만취한 남녀는 당연한 수순처럼 몸을 섞는다. 마약, 소아성애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여기까지가 작가의 익숙한 세계라면 전체 분량의 절반 정도가 영어로 쓰인 단편(‘지도와 인간’)도 있다. 한 작품 안에 한국어와 외국어 문장을 동시에 구사한 한국소설이 또 있었나. 외국어 문장 역시 작가가 직접 작문한 것들이다. 김사과(33)의 새 소설집 『더 나쁜 쪽으로』는 이처럼 다양한 표정을 품고 있다.

평균치나 무난함과는 한껏 거리를 둔 모습인데 그렇다고 화끈한 이야기 전개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독자를 뒤흔드는 매끈한 서사는 찾아볼 수 없다. 꿈과 현실이 혼란스럽게 뒤섞이고, 슬그머니 서술자가 뒤바뀐 경우도 있다. 줄거리를 종잡기 어려울 지경인데, 그래서 색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 소설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보다 소설 안의 보물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거다. 소설에서 뭔가 교훈을 얻겠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독법도 없지만, 집중력 있게 읽다 보면 우리가 속해 있는 현실과 예술에 대한 통렬한 비판들을 만나게 된다.

가령 우리는 지나치게 획일적으로 산다. “같은 추억으로 얻어맞고 더럽혀진 우리는 물론 같은 거리에 속해 있다. 같은 술에 취해 같은 거리를 걷는다. 같은 시간 같은 유머에 웃고 같은 불면에 시달린다.”(‘더 나쁜 쪽으로’) 그런가 하면 “글로벌화하는 한국문학에서는 다운타운 호텔 바닥에 깔린 카펫 냄새가 난다.”(‘세계의 개’)

이런 상황을 못 견디겠다는 듯 김사과는 지난해 초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스카이프로 국제전화를 걸었더니 “필사적으로 열심히 써야 하는 상황이다. 가능한 한 절약하며 산다”고 했다.

실험적인 작품이 많은 것 같다.
“불완전하고 거칠더라도 하고 싶은 거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썼다.”
영어가 절반인 작품도 있다.
“대부분 단순한 문장들이다. 영어로 써야 제대로 의미가 살아나는 문장을 쓰는 게 재미있다.”
언제까지 있나.
“3년짜리 예술가 비자가 끝나는 2019년 초까지 머물 예정이다.”

김사과는 주어진 환경이나 현실, 심지어 모국어의 그늘에서도 자유로운, ‘때묻지 않은’ 글쓰기를 추구하는 것 같았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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