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역사 가르치는 일본 중학교에 '협박성 항의' 쇄도

중앙일보

입력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룬 ‘양심 교과서’를 채택한 중학교에 항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9일 마이니치 신문 등 현지 언론들이 보도했다. 이 학교의 교장은 항의를 받은 경위에 대해 인터넷에 상세히 소개했다.

고베시 나다중학교, 반년간 200통 넘게 항의 엽서 받아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한 고노담화 소개한 교과서 채택 이유 #"어느 나라 교과서냐""공산당 선전이냐" "기부 않겠다" 등 #교장 "정치적 압력 느꼈다" #

항의 대상이 된 교과서는 ‘마나비샤(学び舎) 출판사가 발행한 ‘함께 배우는 인간의 역사’라는 교과서다. 산케이 신문은 지난해 3월 “중학교 역사 교과서 가운데 유일하게 위안부에 관한 기술을 하고 있다”면서 고베시(神戸市) 사립 나다(灘)중학교 등의 이름을 공개했다.

이 교과서는 위안부의 관리와 위안소 설치 등에 일본군의 관여와 강제성을 인정한 1993년‘고노담화’를 소개하고 있다. 교과서는 “일본 정부는 강제연행을 직접 지시한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견해를 표명하고 있다”며 정부의 입장도 함께 기술했다.

마나비샤 출판사의 '함께 배우는 인간의 역사' 교과서 [출처=아마존]

마나비샤 출판사의 '함께 배우는 인간의 역사' 교과서 [출처=아마존]

나다 중학교 와다 마고히로(和田孫博) 교장 [사진=나다중학교 홈페이지]

나다 중학교 와다 마고히로(和田孫博) 교장 [사진=나다중학교 홈페이지]

그러나 나다중학교가 이 교과서를 채택하자 곳곳에서 항의가 쏟아졌다. 이 학교 와다 마고히로(和田孫博) 교장이 최근 인터넷에 투고한 ‘이유없는 압력 속에서-어떤 교과서 선정에 대해’라는 글에 따르면, 교사들과 교과서 채택을 결정하자마자 2015년 12월 효고현의 자민당 의원으로부터 “왜 그 교과서를 채택했느냐”고 추궁이 들이닥쳤다. 이듬해에는 졸업생 출신의 자민당 중의원도 전화를 걸어왔다. 와다 교장은 “검정교과서 중에서 선택한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문부과학성에 이야기 하라”고 답해 일단락이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중순부터는 졸업생과 부모를 자처하는 익명의 항의엽서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이 엽서는 대부분 중국에서 일본군을 환영하거나 일본군으로부터 의료, 식료품을 받고 있는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엽서는 “어느 나라의 교과서냐”, “공산당의 선전이냐”는 등의 항의성 내용을 담고 있는가 하면, 졸업생이라고 자처한 사람은 “이런 모교에는 일절 기부하지 않겠다”는 등의 협박성 문구도 서슴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가 기술된 교과서를 채택해 항의를 받은 고베시 나다(灘)중학교 [사진=나다중학교 홈페이지]

위안부 문제가 기술된 교과서를 채택해 항의를 받은 고베시 나다(灘)중학교 [사진=나다중학교 홈페이지]

와다 교장은 “보내는 사람의 주소, 이름은 적혀있는데, 문구가 모두 똑같았다. 아마도 어떤 기관이 인쇄해서 찬동자들에게 배포한 것 아닌가 싶은 엽서가 전국 각지에서 날아왔다”고 말했다.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의 이름으로 날아온 엽서도 있었다. 이런 항의 엽서는 반년동안 200통을 넘었다. 와다 교장은 마이니치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인데 정치가의 이름으로 엽서를 보내거나, 학교 이름을 거론하며 문제시하는 신문보도가 나오는 등, 정치적 압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마나비샤 출판사의 이 교과서는 와다중학교 외에 전국 국립, 사립 38개 중학교에서 채택하고 있다. 마이니치에 따르면 나다 중학교 외에도 10개 학교가 비슷한 시기에 항의를 받았으나, 이로 인해 교과서 채택을 취소한 곳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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