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 책임회피·총선겨냥 포석|선거부정 시비…여야 속셈과 대응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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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의 전략>
선거 후유증을 하루 빨리 수습하고 국민 재통합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발빠른 행마로 국면 전환을 모색하고 있는 민정당은 야권이 선거결과에 불복, 선거 부정시비를 제기하고 있는데 대해 『그것은 시대착오적이며 어불성설』이라고 한마디로 일축하면서도 그런 사태의 지속이 새 정권에 큰 부담이 된다는 인식아래 다각적인 수습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여당 측은 우선 야권의 불복자세가 억지라고 강한 반박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원천적 부정선거라는 야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처음부터 선거참여를 거부하지 않았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러지도 않고 결과가 패배로 나타나자 새삼 부정선거라고 시비 삼는 것은 『자기만이 단일후보가 돼야하고, 또 승리해야만 천명이고 역사의 순리라고 생각하는 정신분열적 아집과 독선 이외 아무 것도 아니다』고 여당 측은 반박하고 있다.
그리고 야당 후보들이 선거에 참여,갖은 기책으로 국민간·지역간 갈등을 심화시켜놓고 이제 와서 졌다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불복한다면 『왜 처음부터 그들 말대로 「확실히 승리하는길」인 단일후보로 나서지 않았느냐』고 되묻고 있다.
그러나 민정당측은 물량공세와 선거전의 타락 양상에 대해서는 야당과 마찬가지로 개탄하고 반성하는 자세다. 한 고위 당직자는 『선거 초반 그런 면에서 여론의 거센 반발이 있어 매우 자제했으며 여야 상호간에 앞으로 선거에서는 이 점을 크게 개선해야할 것』이라고 동조했다.
둘째, 투·개표 부정·조작설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야당을 지지해준 유권자를 포함해 모든 국민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분개하는 자세다.
여당이 투·개표 부정을 했다면 야권후보들의 연고지에서 어떻게 압도적 몰표가 가능했겠느냐고 되받아친다. 그리고 수만명이 넘는 학생·재야인사들로 구성된 공명선거감시단이 투·개표장마다 사진기·망원경·비디오 촬영기까지 동원, 감시의 눈길을 늦추지 않은 상황에서 부정선거 운운은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라고 몰아친다.
세째, 2백만표라는 엄청난 표차가 어떻게 투·개표 부정으로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한다.
따라서 민정당은 두김씨가 단일화를 못해 「받아놓은 밥상을 스스로 차버린 행위」로 국민의 지탄이 쏠리자 자기 연명책으로 부정선거 시비 획책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리고 두 김씨가 다시 선거부정 시비를 격화시킬 경우 또다시 학생들을 부추기고 그들만희생시키게 되는게 아니냐고 보고 있다.
그러나 여당 측도 이같은 부정선거 시비양상의 장기화가 여당 측의 정국운영에 장애가 될뿐 아니라 내년 2월로 다가선 충선거에도 영향을 준다고 판단, 당분간 냉각기를 갖되 적극적인 대야 대화체제의 유도를 통해 선거 후유증 수습에 나설 방침이다.
그러는 한편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화합 추진본부 등을 조속한 시일내에 구성, 정책공약 및 광주사태 해결방안을 구체화하고 국회의원 선거법 협상체제를 구축하는 등 합리적인 정국 운영체제를 가동시킨다는 방침이다.<이수근기자>

<야의 전략>
개표가 채 끝나기 전부터 야권은 부겅선거 시비를 시작하다 패배가 확정되자 김영삼·김대중씨는 모두 선거무효화를 주장하고 한 쪽에선 정권타도 투쟁을, 다른 쪽에선 재야와 결속한 선거무효 투쟁을 들고 나왔다.
이 부정선거 시비는 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의 문제, 여권의 대응방법과 함수관계를 맺으면서 두 김씨의 향후 정치적 거취, 재야를 포함한 야권의 개편문제와도 깊이 관련돼 있고, 이 선거부정 투쟁과정에서도 제각기 주도권 장악을 위한 간단찮은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예상돼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띨 전망이다.
우선 민주당은 장외투쟁도 불사하는 「정권타도」까지를 내세우고 있어 표면상 가장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의 「2등」을 기반으로 대여 강경투쟁을 선도함으로써 패배의 허탈감에서 벗어나 당의 생동력을 복원, 「제1야당」의 위치를 굳히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이에 따라 정국의 추이, 재야·학생권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대규모 「범국민걱 궐기대회」까지도 계획하고 있으나 두 김씨의 단일화 실패 책임을 묻는 여론의 거센 역풍속에서 대회 자체가 가능할지부터가 의문시된다.
그러나 어쨌든 민주당은 선거무효투쟁에서 평민당이나 재야와 제휴하기보다 독자적인 방향으로 밀고가 앞으로 있을 국회의원 선거에 대비하자는 속셈이 크다.
『개표결과에 관계없이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평민당은 국민운동본부및 공명선거감시단과분주한 접촉을 가짐으로써 「일전」의 태세를 준비하고 있으나 구체적 방법에 대해선 『국민여론과 태도를 보아 결겅하겠다』는 「유보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민주당처럼 「정권타도」 등의 강경 구호는 아직 내놓지 않고 있으나 부정선거 투쟁에 관한한 민주당·재야까지를 연대시켜 주도하겠다는 태도다.
공화당은 좀 다르다. 선거부정 사례가 많다고 규탄하면서도 민정당에 당선 축하화환을 보내는 등 사실상 선거결과에 승복한 인상을 주고 있다.
그 반면 이번 선거의 전 과정을 통해 철저히 무력감을 맛보았던 재야 측도 이번 선거부정 투쟁을 통해 새로운 「통합」을 시도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백만표라는 엄청난 표차와 단일화를 못이룬 것이 패배의 참원인이라는 지적 앞에 이같은 야권의 선거부정 시비는 한계를 지닌것 같다.
각 야당이 비록 수많은 부정사례를 갖고 있다지만 2백만표라는 현실적 표차앞에 설득력이 있기 어렴고, 두 김씨가 받은 표를 합하면 과반수가 돼 단일화를 못해 진 것이 분명하지 않느냐 하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투쟁의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부정선거 투쟁이라는 것이 두 김씨가 선거 패배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기네들의 위치를 유지하려는 속셈이 아니냐는 시각이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야당으로서는 우선 코 앞에 닥치고 있는 국회의원 선거 때문에 여당의 부정을 크게 떠들고 나서기는 하겠지만 그것이 전술적인 차원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들도 여론의 화살이 어디로 쑬리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도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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