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몰면 차값 4분의 1 토막 … 전기차 보급 걸림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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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르노삼성자동차가 2014년 출시한 전기차 ‘SM3 Z.E.’ [사진 르노삼성]

르노삼성자동차가 2014년 출시한 전기차 ‘SM3 Z.E.’ [사진 르노삼성]

73% 대 43%.

신차값 4300만원인 2014년형 SM3 #최근 중고 거래가는 1200만원 미만 #차값 하락폭 지나쳐 구매 기피 요인 #배터리 교체, 충전기 이전비도 부담

차급이 같은 전기차와 가솔린차의 출시 3년 뒤 가격 감가율이다.

전기차의 중고차 가격이 가솔린차나 디젤차에 비해 낮아 전기차 소유자나 구매를 고려하는 소비자들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다. 전기차 보급률을 높이기 위해선 판매 보조 정책뿐 아니라 중고차 가격 폭락에 대한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고차 거래 사이트 SK엔카닷컴에 따르면 최근 등록된 매물 중 르노삼성의 2014년식 전기차 ‘SM3 Z.E. RE’의 가격대는 1148만~1190만원이다. 해당 모델 신차가격은 4300만원, 감가율은 73%다. 반면 동급 가솔린 모델인 2014년식 ‘SM3 네오 RE’ 차량은 신차가격이 1995만원으로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중고차 평균시세는 1154만원으로 전기차와 거의 비슷했다. 감가율은 43%였다. 연식·모델이 같은 차량인데 전기차는 4분의 1까지 가격이 내려갔지만, 가솔린차는 거의 3분의 2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다른 차종도 비슷하다. 신차가 4500만원인 기아자동차의 전기차 레이 EV 중고 가격은 850만~1150만원이고, 신차가 1510만원인 가솔린차 레이 프레스티지의 중고 평균 시세는 931만원으로 감가율은 각각 74%, 38%였다. SK엔카 관계자는 “전기차 구매 시 받는 보조금을 빼면 실제 감가율은 더 낮겠지만, 이를 고려하고 보더라도 전기차 중고 시세가 내연기관차보다 매우 낮은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가장 큰 이유는 전기차 핵심 부품인 배터리의 성능저하다. 배터리는 많이 쓸수록 1회 충전 시 주행가능 거리가 줄어든다. 현재로썬 2~3년 타면 약 30%가량 주행거리가 줄 정도로 성능 저하가 빠르다. 중고차 구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최근 배터리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면서 신형 전기차 배터리는 몇년전 출시된 차 배터리보다 성능이 2배 넘게 좋아졌다. 이런 신형 전기차가 본격 출시되면 ‘1세대 전기차’의 중고가는 더 크게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가솔린차와 비슷한 값에 중고차를 팔더라도, 전기차 판매자는 사실상 300만원을 덜 받게 된다. 새로 차를 구입할 때는 개인용 충전기 설치 비용 300만원을 지원 받지만 중고차는 지원금이 없어 중고차 판매자가 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차 소유자나 구입을 구민하는 소비자들은 고민이 클수밖에 없다. 특히 제주도에선 2015년 대량 보급되기 시작한 전기차들의 의무 보유 기간 2년이 차례로 끝나가면서 매물로 내놓을 수 있는 중고 전기차들이 많아졌지만 가격은 턱없이 낮게 책정돼 소유자들의 불만이 높다.이에 좌남수 제주도의원은 지난 2월 제주도 경제통상산업국 소관 업무보고에서 “4000만원이 넘는 전기차가 2년 타고난 뒤엔 가격이 700만~800만원밖에 안된다. 보급에만 혈안이 될 게 아니라 사후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기차 보급률이 높은 국가도 상황이 비슷하다. 대체로 전기차 중고 가격이 내연기관차보다 낮다. 또 전기차가 등장한지 얼마되지 않아 이에 대한 뚜렷한 해법을 내놓은 건 아니다. 다만 중고차 구입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배터리 보증 기간을 늘린다던지, 객관적인 중고차 가치 판단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등의 다양한 대책을 서둘러 고민하고 있다.

한국전기자동차협회장인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중고차 가격은 소비자들이 크게 신경쓰는 부분이므로 정부와 자동차업체, 중고차 업체 등이 힘을 모아야 한다. 전기차에 적용할 수 있는 별도의 중고 가격 기준 마련, 배터리 무상 교체 지원이나 보증 연장, 충전기 이전 비용 지원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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