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열기 식고 맥주 열풍 … 수입맥주가 국산 추월 기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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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간 만남의 건배주가 전통주나 와인이 아닌 ‘서민 음료’ 맥주라는 것은 화제였지만, 이는 최근의 트렌드를 충실히 반영한 결과다.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와인 붐이 한풀 꺽인 자리는 수입맥주와 수제 맥주가 차지하고 있다.

해외여행 잦아지며 외국산 익숙 #20~30대가 수입맥주 주소비층 #다양해진 입맛에 수제맥주 인기 #지방색 살린 제품 실험도 한창

1일 주류 업계에 따르면 맥주 시장은 2000년대 중반 와인 열풍과 유사한 패턴으로 확산하고 있다. 2010년께 서울 청담동과 이태원 등지에서 유행한 수입맥주 전문점은 이젠 전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해외 여행에서 맛본 맥주를 다시 찾는 20~30대가 주요 소비층이다. 수입 맥주는 동네 편의점에서 어렵지 않게 살 수 있게 되면서 진입 장벽을 낮췄다. 2004년까지 주류 수입량은 전체의 1~2%인 8만462㎘였지만 2015년엔 3.4배인 26만9515㎘로 증가했다.

[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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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유통 업계 키워드인 ‘혼술’(혼자먹는 술), ‘홈술’(집에서 먹는 술)도 수입 맥주 붐을 견인하고 있다. 혼자 술을 마실 때는 도수가 높은 주종보다 맥주가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015년 이마트에서 팔린 주류 중 와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1.4%였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16.9%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수입맥주는 17.3%에서 25.4%로 뛰었다. 이는 국산맥주 판매 비중과 거의 같다.

한 대형 마트 관계자는 “와인에 비해 저렴하고 혼자서 한 병을 다 마셔야 하는 부담이 적으면서도 기분을 내기엔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전체 맥주 시장 규모는 연간 2조7000억원대(업계 추산)에 달한다. 또 올해는 처음으로 수입 맥주가 국산 맥주 점유율을 넘어설 전망이다. 특히 내년 1월부터 미국 맥주에 대한 관세가 사라지고 7월에는 유럽연합(EU)에서 수입하는 맥주에도 무관세가 적용된다. 국산 맥주와 가격차가 더욱 좁아지면서 국산 맥주의 점유율은 더욱 떨어질 수 있다.

하이트진로와 오비맥주·롯데주류 등 주류 ‘빅3’는 등은 가벼운 발포 맥주나 스테디셀러의 리뉴얼판을 선보이고 있지만, 수입 맥주의 공략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내 업체들은 신제품 출시보다는 맥주 수입 라인업을 강화하면서 대응책을 찾고 있다.

까다로워진 소비자 입맛에 맞추기 위한 수제 맥주 전문점도 인기다. 수제맥주란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하우스맥주, 지역 특색을 살린 맥주를 뜻한다. 수제맥주가 유행하면서 2001년 6개에 불과했던 맥주면허사업자는 지난해 60개로 늘어났다.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맥주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생활맥주’ ‘브롱스비어’ 와 같은 맥주 전문 프랜차이즈도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신세계·SPC 등 대기업과 YG엔터테인먼트 등이 맥주 전문점을 내면서 맥주 시장의 지형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방색을 살린 맥주 만들기 실험도 한창이다. 청와대 호프미팅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세븐브로이의 ‘강서맥주’ 와 ‘해운대 맥주’처럼 지역 이름을 딴 맥주는 유독 해당 지역에서 잘 팔린다는 설명이다.

신생 수제 맥주 업체인 제주맥주도 1일 ‘제주 위트 에일’로 출사표를 냈다. 뉴욕 판매 1위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자매 회사로 제주시 한림읍에 연간 2000만L 규모의 맥주 생산이 가능한 양조장을 설립했다. 제주맥주 측은 “세계적인 맥주 설비 컨설팅 회사인 비어베브가 설계를 맡는 등 최첨단 설비를 구축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제주맥주는 앞으로 제주 지역에서 나는 원료를 활용한 고품질 수제 맥주를 시리즈로 내놓을 예정이다. 제주의 주요 한식당, 향토 음식점 등을 중심으로 우선 공급해 제주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맥주로 마케팅할 예정이다. 제주맥주 문혁기 대표는 “국내에서도 세계적인 수준의 크래프트 맥주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지난 5년간 준비를 해왔다”며 “재미있는 맥주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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