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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당·민중당도 구분 못했던 워킹맘이 독배 마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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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10면

취임 한 달 맞은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바쁜 정치인 중 한 명이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전국을 종횡무진한다. 대표 취임 다음 날 무려 29개의 일정을 소화한 게 입소문을 타고 오르내린다. 집에서 눈곱만 떼고 나오는 날도 부지기수다. 몸이 부서져라 강행군을 하지만 당 지지율은 아직 한 자릿수.

지금의 한국당과 합당 어려운데 #보수 진영 돌 맞을 사람이 바로 나 #첫술에 배부를 생각 안 해 #가랑비에 옷 젖듯 신뢰 쌓일 것 #시부모·아이 부양하며 직장생활 #가슴에 주홍글씨 새기고 사는 것 #‘뭐 이런 세상 있나’ 싶어 정치 결심 #시간 지나면 박 전 대통령도 면회

그래도 그는 ‘꿈’을 꾼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가랑비에 옷 젖듯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신뢰로 돌아오지 않겠나.” 엘리트 여성 경제학자 출신인 이 대표가 자유한국당과 ‘보수 적자 경쟁’을 벌이는 바른정당을 어떻게 탈바꿈시켜 놓을까. 중앙SUNDAY와의 인터뷰는 마침 취임 한 달을 맞은 지난 26일 이뤄졌다. “김무성·유승민 의원 등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남는 사람이 없었다. 누군가는 독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며 대표직을 ‘독배’에 비유하는 등 거침없는 대답을 듣다 보니 훌쩍 1시간30분이 지나갔다.


대표 취임 한 달, 소회는 어떤가.
“한 달이란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정신없이 지나간 것 같다. 당 대표라고 더 주는 월급은 1원 한 푼 없다는 점에서 ‘박봉’이란 생각도 든다(웃음).”
대표 출마는 어떻게 결심하게 됐나.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나. 이번 당 대표는 독배를 마시는 거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유한국당과 합쳐야 한다는 아우성이 얼마나 거세겠나. 한국당이 지금과 같은 식이라면 합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을 때 보수진영에서 돌 맞을 사람이 바른정당 대표 아니겠나. 내가 굳이 왜 그 일을 해야 하나란 생각, 솔직히 했다. 그랬더니 ‘당신이 탈당하자고 해서 정치생명 다 버리고 왔고 이렇게 죽을 고생하는데 당신 혼자 살겠다고 대표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더라. 양심에 가책이 들어 고난의 길이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정기 산행날 등산복 입고 셋째 출산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오른쪽)가 한국개발연구원에 근무하던 2002년 연세대 교정에서 성환·진환·진호(왼쪽부터) 세 아들과 벚꽃 구경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이혜훈 의원실]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오른쪽)가 한국개발연구원에 근무하던 2002년 연세대 교정에서 성환·진환·진호(왼쪽부터) 세 아들과 벚꽃 구경을 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이혜훈 의원실]

정치하려고 결심한 계기는 뭔가. 시아버지(김태호 전 내무부 장관)가 권유했나.
“시아버님이 직접 권유한 건 아니다. 당신의 동료들, 지구당 당직자들한테 ‘큰애가 정치하면 잘할 거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국회의원 임기 중 타계하시면서 보궐선거가 열렸는데, 지구당 당직자들이 저한테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전까지 신문의 정치면도 읽지 않았다. 민정당·민자당·민중당 중 두 개가 한편이고 나머지가 다른 편이라는데 뭐가 뭔지도 몰랐다. 그런데도 출마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나’ 하는 생각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시부모님 모시고 아이들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한다는 것 자체가 가슴에 주홍글씨를 새기고 사는 거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결정적인 에피소드가 있나.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셋째를 출산할 무렵이었다. 그땐 직장 다니며 출산하는 게 민폐란 인식이 팽배해 셋째 임신 소식을 당당히 알릴 수 없었다. 매달 정기 산행을 하는데 정상에서 단체사진을 찍어야 출석으로 인정됐다. 그러던 어느 날 등산하러 가는 길에 주차장에서 진통이 왔다. 임신부가 등산복에 등산가방을 멘 채로 병원에 실려 왔으니 간호사들이 정신 나간 사람으로 봤을 거다. 그렇게 출산을 하고 회사에 전화를 했다. ‘그동안 임신한 거였냐. 너무 힘들었겠다’ 할 줄 알았는데 짜증을 내면서 ‘뭐야? 출산휴가 써?’ 이러더라. 정말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출산휴가 2개월 쓰는 내내 팩스로 일을 시켰다. 이런 사회에서 더 이상 못살겠다,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출산휴가 끝나고 처음 출근하는 날 여성단체를 찾아갔다. 이후 5개월 동안 법안 만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데 국회의원 한 번 만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해 10월 보궐선거(울산) 출마 권유를 받았을 때 ‘아 이거구나’ 싶었다. 공천 신청을 하려면 입당을 해야 한다고 해서 사표를 냈다. 그런데 입당원서 내고 사나흘 만에 서류심사에서 탈락해 실업자가 됐다. 시아버님 지역구인 울산에는 출마도 못 해본 건데 지역구를 물려받은 줄 아는 사람이 많더라. 초선 배지는 2004년 서울 서초갑에서 달았다. 당시 한나라당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과 차떼기 문제로 완전히 지지율이 바닥일 때였다.”
대표직을 예상보다 잘 수행한다는 평이 많다. 자신에게 몇 점을 주고 싶나.
“과락만 면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여성은 지연·학연 대신 원칙 중시

여성 당 대표 3명이 참석한 청와대 오찬회동 사진의 임팩트가 강했다. 여성 대표의 강점은 뭐라고 보나.
“문재인 대통령도 마초 이미지는 아니다 보니 사진이 괜찮았나 보다. 강점은 여성들은 연고가 많이 없다는 것이다. 조직이나 지연·학연 등에 얽매이지 않으니 원칙적으로 일처리 하기가 쉽다. 과거에 2등 최고위원이 당 대표를 흔들어 넘어뜨리고 본인이 그 자리에 올라가려 하는 걸 많이 봤다. 남성들은 본능적으로 승부욕이 강한 데 비해 여성들은 누구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잘 안 한다. 죄송한 말이지만 애들 키우는 느낌이랄까. 한 사람 한 사람 다 품어서 시너지를 내면 좋다는 생각이지 누구를 제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 하태경 최고위원과 제가 잘 안 맞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는데 제가 친동생처럼 지원해주고 띄워주니 오히려 더 가까워졌다. 요새는 사람들이 ‘혜태라인’ ‘혜태커플’이라고 부른다(웃음).”
여성 대표로서의 어려움은 뭔가.
“정치를 하다 보면 ‘언더 더 테이블’이란 게 있는 건데 저는 원칙적으로 가르마 타버리고 언론에 속내를 다 드러내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협상할 때 뒤통수 맞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추미애(더불어민주당)·이정미(정의당) 대표와는 사이가 어떤가.
“이 대표는 굉장히 서글서글하고 친한 동생 같다. 이 대표의 노선을 존중한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얘기하는 게 좋아 보인다. 추 대표는 정치권 왕언니 아닌가. 여성 후배들이 롤모델로 삼아야 될 중진 중의 중진이다. 셋의 호흡도 괜찮은 편이다.”
봉하마을도 가고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도 찾았다.
“대표가 되자마자 한 시간 안에 전직 대통령들과 영부인께 다 연락을 했다. 이희호 여사만 못 뵀는데 지금 건강이 안 좋아서 누굴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시란다. 조만간 만나기로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면회할 계획도 있나.
“그분 입장에선 지금 누구도 보고 싶지 않을 거고 본인과 관계가 원만치 않았던 사람은 더더욱 그럴 거다. 시간이 지나 언젠가 상처가 되지 않을 땐 뵈러 가고 싶다.”
전국을 돌고 있는데 현장 반응이 어떤가.
“격려와 응원이 제일 많다. 바른정당에 대해 참 많은 국민이 기대하고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특히 대구·경북에서 수많은 유림을 만났는데 ‘사약을 받아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하는 게 유림의 정신이니 정치도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보수진영에서도 단순히 한국당과 합치라, 들어가라고 하기보다는 끌어안으라고 하신다. 대선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앞으로 당을 어떻게 이끌 건가.
“지방선거는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상당한 방점을 둘 것이다. 젊은 시민들을 많이 영입하고 공천을 가급적 빨리 해서 우리 후보가 국민들께 인식될 수 있는 기반을 최대한 확보할 거다. 국회 개혁 등 개혁 어젠다도 많이 준비하고 있다. 가칭 ‘총액임금제’도 그 일환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업에 너무 부담이 되니 기업이 임금 총액을 정한 다음 고위직은 동결하거나 깎자는 거다. 공공부문에서도 국회의원·장관부터 솔선하자고 어젠다를 던졌다. 이런 식으로 책임지는 보수, 희생하는 보수의 모습을 행동으로 보이겠다. 첫술에 배부를 생각 안 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신뢰로 돌아올 거라 믿는다.”
‘정치인 이혜훈’의 꿈은 뭔가.
“제가 낡은 보수에 굉장히 분노하는 이유가 힘·돈·권력 있는 사람들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대변해 줄 목소리가 얼마든지 있는 그들을 대변하는 건 국회의원의 책무가 아니다. 그런 낡은 보수는 보수의 탈을 쓴 보수의 적일 뿐이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런 정치는 안 한다. 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해주고 그들의 손발이 돼주는 게 국회의원의 일이고 소임이라 생각한다. 저 한 사람이 다 바꿀 순 없겠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조금이라도 달라진다면 그게 진정한 보람 아니겠나.”

박신홍·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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