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보]"끔찍한 위안소 기억 잊고 이젠 편히 쉬세요"…일본군 위안부 참상 세계에 알린 김군자 할머니 영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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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서 엄수된 김군자 할머니 노제. 김민욱 기자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서 엄수된 김군자 할머니 노제. 김민욱 기자

“할머니 이제 편히 쉬세요.”
일본 제국주의의 위안부 참상을 세계에 알렸던 고(故) 김군자 할머니(향년 91세)의 노제가 25일 오전 9시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에서 엄수됐다. 노제는 상여가 장지로 가는 도중 고인의 추억이 담긴 곳에서 지내는 제사다.

25일 고인의 삶 흔적 담긴 나눔의집서 노제 #김 할머니 사랑하는 이들 추모사 울려퍼져 #"편히 쉬시라" 영면 기원하고 명예회복 약속도 #서울추모공원 화장 뒤 나눔의집 법당에 안치 #

김 할머니는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의 끔찍했던 참상을 생생히 증언한 인물이다. 이를 계기로 미 하원은 위안부가 20세기 최대 인신매매 중 하나라는 내용이 담긴 ‘위안부 결의문’을 채택하게 된다.

김군자 할머니 영정사진이 영좌로 향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김군자 할머니 영정사진이 영좌로 향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나눔의집은 김 할머니가 강원도 정선 집을 떠나 1988년부터 생활했던 곳이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장소다.

노제에는 더불어민주당 소병훈·임종성 의원을 비롯해 강득구 경기도 연정부지사, 박종문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유족, 지인, 학생 등 10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노제는 고인의 간단한 약력 소개에 이어 김 할머니를 기억하는 이들의 추모사 낭독, 헌화 및 묵념, 고인의 방안에 영정을 잠시 안치하는 등의 순서로 거행됐다.

김군자 할머니 노제 바라보는 고(故) 김순덕 할머니(1921~2004) 흉상. 김민욱 기자

김군자 할머니 노제 바라보는 고(故) 김순덕 할머니(1921~2004) 흉상. 김민욱 기자

추모사가 이어지는 동안 고인과 각별한 사이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0) 할머니는 연신 눈물을 닦았다. 또 다른 위안부 피해자 박옥선(94) 할머니는 갑작스러운 별세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조용히 흐느꼈다.

나눔의집 원장인 원행 스님은 “오늘 마음이 너무도 뼈저리게 아픈 것은 (김군자 할머니가) 역사의 한을 풀지 못하고 가시는 것과 갑자기 가시는 걸 막지 못해서다”며 “항상 웃음 띠고, 순박한 소녀처럼 반겨주시던 당신이기에 더욱 그렇다”고 고인을 향한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헌화 후 합장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원행 스님, 박옥선 할머니(사진 왼쪽부터). 김민욱 기자

헌화 후 합장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원행 스님, 박옥선 할머니(사진 왼쪽부터). 김민욱 기자

이어 “생전 한 맺힌 눈물을 흘리시며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 해야 한다'던 평소 그 말씀 우리가 모두 가슴에 새기며 반드시 당신의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원행 스님은  “올바른 역사와 인권을 알리기 위해 당당하고 용감하게 증언을 한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여성인권 활동가로 기억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군자 씨, 우리가 왜 이렇게 당하고 울어야 합니까”라며 “너무 억울하고 분하지만 이제 편안하게 웃으면서 잘 가세요”라고 울먹였다. 박옥선 할머니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용수·박옥선 할머니는 영정 앞에 헌화하는 것으로 인사했다.

영정 사진이 고인의 생전 생활공간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김민욱 기자

영정 사진이 고인의 생전 생활공간 곳곳을 둘러보고 있다. 김민욱 기자

이어 고인의 영정과 위패를 앞세운 노제 행렬은 나눔의집 생활관·광장 등 고인의 숨결이 어린 곳을 돌았다. 김 할머니의 시신은 서울 양재동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다. 유골은 나눔의집 법당에 안치된다.

1926년 4월 18일(음력)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42년 꽃 같은 16살의 나이 때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琿春) 위안소로 강제동원됐다.

김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생존자는 37명으로 줄었다.

경기도 광주=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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