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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지 낀 두 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41호 29면

공감共感

친구 조너선이 멀리 대만에서부터 나를 만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대만 과자들을 잔뜩 들고서. 맛있게 먹은 보답으로 그의 어머니께 작은 선물로 무엇이 좋겠냐고 물으니 곧바로 ‘아카카파 비누’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번 내가 선물했던 제품을 어머니께서 무척 좋아하셨다는 것이다. 심지어 닳는 것이 아쉬워 비닐로 감싸서 욕실 벽에 매달아 놓고 손을 씻을 때만 가볍게 한 번 문질러 사용하신다고 했다.

오른손 엄지가 위쪽이면 '감정적' #심리 테스트에 발끈해 꾸준히 연습 #왼손 올라가 '이성적'이라 여겼는데 #"성격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게 감정적" #친구 말 듣고 '나는 감정적' 깨달아

이탈리아 브랜드인  아카카파는 천연 제품으로 유명하다. 가업으로 시작한 천연 향수 등이 3대째 내려오면서 유럽 황실과 귀족들에게도 오랜 사랑을 받아 왔다. 대만에는 정식 입점해 있지 않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는 우리 회사가 수입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니 그에게 해당 제품을 선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한데 대만에서는 많은 가정에서 비누를 이렇게 사용한다고 했다. 내가 태어난 홍콩과 현재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사용법이었다. 가만, 3년 전 제주도에 갔을 때 다원에서 산 녹차 비누도 얇은 비닐에 쌓여 있었다. 설마 한국에도 이런 생활습관이 있는 건가. 나는 그저 장식용으로만 여겼었는데.

대부분 여자들은 손 관리에 민감한 편이다. 더구나 나는 서예를 하고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손을 더 자주 씻어야 해 비누나 세정액을 고를 때 특별히 신경을 많이 쓴다. 가급적 피부에 자극이 없는 천연비누를 사용하고, 집안 구석구석마다 핸드크림을 비치해 놓고 수시로 보습에 힘쓴다.

우리 어머니 역시 일찍이 절대 손이 건조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새로 사귄 남자친구가 손을 잡고 깜짝 놀라기라도 하면 어쩌냐면서. 최악의 경우 시집을 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물론 과장이 섞인 말이지만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남편을 포함해서 나를 처음 만난 많은 사람들이 내 손을 칭찬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어렸을 때는 그다지 인식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가 생활습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학교 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도 그중 하나다. 버스 안이 너무 붐벼서 손잡이나 주위 좌석을 잡지 않으면 서 있기도 힘든 와중에 친구는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두 손을 포갰다. 그 이유는 말해 주지 않은 채. 호기심이 생긴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두 손을 포갰다.

그러자 친구는 내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스타일이라고 단언했다. 깍지를 꼈을 때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왼손 엄지손가락보다 위에 올라와 있다는 이유였다. 만약 그 반대라면 이성적이고 충동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똑똑하지 않다니! 결코 승복할 수 없었다. 이제는 지혜로운 사람도 충분히 감정적일 수 있음을 알지만 그때는 아직 어려서 이성적이란 단어와 지혜롭다는 단어를 동일시했던 모양이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심리 테스트를 해 보면 99%의 사람들이 해당 결과와 자신의 성격이 부합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1%에 해당했다. 내가 누군가.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니 어떻게 이런 심리테스트 따위에 굴복할 수 있겠는가. 고심 끝에 나는 스스로 성격을 바꾸기 위한 방법을 찾아냈다. 두 손을 모을 때마다 불편을 감수하고 왼손 엄지를 위로 가게 만든 것이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왼손이 위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느낀 성취감이란! 실로 형용하기 힘든 것이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나는 여러 사람이 모일 때면 이 심리테스트를 진행하곤 했다. 사람들이 두 손을 모을 때면 나는 조용히 의기양양한 미소를 보이며 우월감을 느꼈다. 스스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냔 말이다. 얼마 전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 위대한 이론을 발표했다. “의지만 있다면 사람의 성격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그 자리에 있던 대다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새 이론 정립을 확신했다.

한데 생각지도 못하게 친한 친구 한 명이 반대 의견을 내놓는 게 아닌가. “세상에 자기 성격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감정적인 사람들밖에 없을 거야.” 그녀는 과연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반평생을 이성적인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며 수도 없이 해 온 연습이야말로 가장 감정적인 행동임을 말이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천추샤(陳秋霞·진추하)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
onesummernight7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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