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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저주' 신드롬 의식한 IOC의 고육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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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호 25면

2024년 파리, 2028년 LA … 올림픽 개최지 동시선정 유력

토마스 바흐(가운데) IOC 위원장이 스위스 로잔에서 안 이달고(오른쪽) 파리 시장과 에릭 가세티 LA 시장의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토마스 바흐(가운데) IOC 위원장이 스위스 로잔에서 안 이달고(오른쪽) 파리 시장과 에릭 가세티 LA 시장의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파리와 미국 로스앤젤레스(LA)가 2024년과 2028년 하계올림픽 개최권을 나눠 가질 전망이다. 1924년에 올림픽을 개최한 파리가 100주년을 기념해 2024년 대회를 개최하고, LA가 2028년 개최도시 타이틀을 확보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20년간 올림픽 연 도시들 적자 #개최하려는 곳 구하기 어려워 #9월 페루서 개최지 동시 결정 #‘올림픽 섬’서 영구 개최 대안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12일 스위스 로잔에서 임시 집행위원회를 열고 2024년과 2028년 올림픽 개최지를 오는 9월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총회에서 함께 선정하기로 만장일치 합의했다. 후보 도시로는 파리와 LA만 참여하며, 총회 회원국들이 2024년 올림픽 개최지를 결정하면 나머지 한 도시가 2028년 개최권을 갖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와 관련해 토마스 바흐(64·독일) IOC 위원장은 “향후 11년간 올림픽 개최 계획을 일찌감치 마무리짓기로 한 건 대회 개최의 안정성 확보 차원에서 놀라운 결정”이라면서 “올림픽 개최를 희망하는 파리와 LA의 프레젠테이션은 공히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이번 결정은 두 도시 뿐만 아니라 IOC까지 함께 웃을 수 있는 ‘윈-윈-윈(win-win-win)’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파리는 또 유치 실패하고 싶지 않아”

이날 파리의 올림픽 유치 프레젠테이션 진행자로 직접 나선 에마뉘엘 마크롱(40) 프랑스 대통령은 “파리는 올림픽 개최와 관련해 이미 세 번의 기회를 놓쳤다”면서 “네 번째 도전에서도 실패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2024년 대회 유치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 파리는 지난 1992년과 2008년, 2012년 올림픽 유치에 도전했지만 모두 고배를 든 바 있다.

표면적으로는 ‘아름다운 분배’로 보이는 이번 결정에 대해 해외 언론과 전문가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갈수록 올림픽 개최도시를 구하는 데 애를 먹는 IOC가 고민을 덜기 위해 ‘두 대회 개최지 동시 결정’이라는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자료: 포브스, BBC, 파이낸셜타임즈

자료: 포브스, BBC, 파이낸셜타임즈

IOC가 2024년 올림픽 개최권을 놓고 경쟁하던 두 도시의 손을 모두 들어준 건 ‘승자의 저주’ 신드롬과 무관치 않다. ‘승자의 저주’는 올림픽을 치르는 비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탓에 개최도시들이 대회 종료 후 심각한 적자 후유증에 시달리는 현상을 뜻한다. 지난 1948년 런던올림픽 당시 3000만 달러(351억원) 안팎이던 개최 비용은 지난해 리우올림픽에는 190억 달러(21조7000억원)까지 치솟았다. 그중 150억 달러(17조원)가 고스란히 빚으로 남았다. 러시아 소치는 2014년 동계올림픽을 준비하며 510억 달러(59조6000억원)를 쏟아부었다가 재정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 소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은 일본은 20억 달러(2조3300억원)의 예산을 책정한 2020년 올림픽 주경기장 신축 계획을 백지화했다.

하계올림픽의 경우 대회 수익 중 개최도시가 가져가는 금액은 40억 달러(4조6000억원) 안팎이다. TV 중계권료 중 일부와 대회 스폰서십, 입장권 판매 수익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개최 비용을 150억 달러 수준까지 낮춘다 해도 100억 달러(11조4000억원) 이상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고용 창출, 인프라 보강, 스포츠 산업 활성화 등 무형의 경제적 효과로 적자를 상쇄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최근에는 설득력을 잃어가는 분위기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대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1992년 이후 20년간 올림픽을 개최한 도시마다 적자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예외 없이 ‘올림픽 후 경기침체(Post-Olympic Economy Depression)’ 현상을 겪었다”고 밝혔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 또한 지난해 “리우 올림픽 시설 투자와 관광객 증가로 인한 브라질 국내총생산(GDP) 상승 효과는 0.05%에 불과했다. 오히려 기대 심리 과다로 인한 인플레이션으로 리우 지역 기업의 채무유예신청이 5% 증가하고 소상공인 파산 신청이 12% 늘었다”고 발표했다.

“리우, 올림픽 통한 이미지 개선에 실패”

국가 및 도시 이미지 개선 효과 또한 허구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높다. 앤드류 짐발리스트 미국 스미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올림픽을 치르기 전 리우는 아름다운 자연과 예수상, 낙천적인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면서 “이제는 부패와 범죄, 교통지옥, 환경오염, 지카 바이러스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도시가 됐다. 올림픽을 통해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려던 리우의 노력은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24년 올림픽 개최권 경쟁 열기도 급격히 식었다. 유치전에 뛰어든 로마(이탈리아), 함부르크(독일), 부다페스트(헝가리), 보스턴(미국) 등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줄줄이 기권했다. 이와 관련해 빅터 맨더슨 미국 홀리크로스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포츠 열기가 뜨거운 보스턴이 올림픽 개최 노력을 중단한 건 시사한 바 크다”면서 “대회 기간을 전후해 발생할 교통 체증과 각종 공사 스트레스, 막대한 혈세 지출에서 오는 공포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 보스턴시가 올림픽 유치를 포기했을 때 시민들의 반응은 안도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올림픽에 대한 스포츠팬들의 관심이 점점 줄어드는 것 또한 개최지 선정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다. 전 세계적으로 올림픽 TV 시청률은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마찬가지다. 2008년 베이징 대회 당시 TV 시청률은 32%를 기록했지만 2012년 런던 대회에서는 23.1%로 줄었다. 2016년 리우 대회(20.1%) 시청률도 엇비슷했다. IOC가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스케이트 보드, 스포츠 클라이밍, 3대3 농구, BMX 프리스타일 등 새로운 종목을 포함시키고 남녀 혼성 종목을 대폭 늘린 건 젊은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아 올림픽 흥행의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한 결정이다.

이와 관련해 존 레니 메릴랜드대 교수는 지난해 8월 색다른 제안을 했다. 그는 “올림픽 개최지 선정의 어려움이 갈수록 가중될 것”이라면서 “그리스 연안에 ‘올림픽섬’이라는 바티칸형 독립국가를 만들어 이곳에서 올림픽을 영구 개최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레니 교수의 주장을 전하며 “동·하계 올림픽을 모두 치를 수 있고 재정 안정성과 문화적 다양성이 남다른 밴쿠버(캐나다)도 올림픽 영구 고정 개최지로 고려할 만하다”고 보도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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