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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또 프랜차이즈 갑질 논란… 가맹사업자 파산·직원들 길거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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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오후 4시 대전시 동구 낭월동 ㈜굿모닝F&D 건물. 출입을 차단하는 철제레일이 가로로 굳게 놓여 있었다. 지난해 12월 31일 문을 닫은 이 건물은 6개월 넘게 방치돼 폐허로 변했다. 건물 외벽 곳곳은 페인트가 벗겨졌고 물건을 보관하던 냉장고도 녹이 슬어 당장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운영하다 계약해지로 파산한 금영락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대전시 낭월동의 회사 건물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다. 신진호 기자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운영하다 계약해지로 파산한 금영락씨가 자신이 운영하던 대전시 낭월동의 회사 건물에서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다. 신진호 기자

이날 기자와 만난 금영락(52)씨는 건물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회사 대표로 이 건물에서 직원들과 동고동락하던 그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횡포로 투자한 돈 60억원이 사라졌고 직원 25명도 뿔뿔이 흩어졌다”며 “직원들을 보내던 날 평생 쏟을 눈물을 다 흘렸다”고 말했다.

'미소야' 지역본부 운영 사업자, "본사의 일방적 계약해지로 파산" 주장 #사업권 강탈·직원 25명 밥줄 끊은 갑질행태라며 공정위에 신고서 제출 #프랜차이즈 본사 "사업자의 일방적 주장, 적법 절차로 문제없다" 반박 #공정위, 분쟁조정협의회 조정 지시… 부당거래 등 확인되면 형사처벌

금씨는 지난달 ‘프랜차이즈 업체의 부당한 거래 거절로 회사가 부도났다’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서를 제출했다.

금씨가 공정위에 낸 신고서에 따르면 회사가 부도가 난 사연은 이렇다. 굿모닝유통이라는 수산물·식자재 납품회사를 차리고 호텔과 백화점·대형마트 등에 식자재를 납품하던 그는 2002년 말 ‘미소야’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는 ㈜보우앤파트너스(보우)와 인연이 닿는다. 보우 직원으로부터 “생선초밥에 사용하는 수산물을 공급해달라”는 부탁을 받고서다.

보우는 생선초밥과 돈가스·우동을 판매하는 ‘미소야’의 프랜차이즈 본사다. 현재 전국에 240여 개 가맹점을 운영 중이다. 금씨가 납품을 시작할 때만 해도 가맹점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20여 개가 전부였다고 한다. 2003년 말 금씨는 “(현재 시스템으로는)물류공급이 어려워 수도권을 제외하고 지방에서는 가맹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우 관계자의 말을 듣고 대전·충청지역에서 가맹사업을 시작했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운영하다 계약해지로 파산한 금영락씨 회사 건물에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신진호 기자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운영하다 계약해지로 파산한 금영락씨 회사 건물에 출입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신진호 기자

금씨는 2004년부터 중부지역본부를 운영하면서 2년여 만에 대전·충청지역에서 40여 개의 가맹점을 모집했고 2006년부터는 대구본부도 운영했다. 당시 전국에 여러 개의 지역본부가 생기면서 회사는 1브랜드 다수의 가맹본부 체제가 됐다. 지역본부가 독자적으로 가맹점을 모집하고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식자재 공급 등 물류 권한도 가졌다. 보우는 부산·경남본부와 광주·호남본부가 경영난을 호소하자 금씨에게 인수를 제안한다. 금씨가 두 지역 본부를 인수하면서 미소야는 ‘1브랜드 2가맹본부’ 체제로 영업구조로 재편됐다.

그는 충청과 영·호남지역에서 90여 개의 가맹점을 모집하면서 직접 계약서를 쓰고 식자재도 공급했다. 보우와의 약속을 믿고 수십억원을 들여 대전·대구에 공장과 물류센터도 만들었다. 보우 고위 관계자가 준공식에 참석해 축하도 했다. 독자적으로 직원을 새로 채용하고 배달용 차량도 구입했다.

사업은 보우가 금씨의 가맹점 관리·물류납품권 회수를 요구하면서 뒤틀어졌다. 금씨가 수도권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맹점망을 구축하자 2015년 3월 보우는 금씨에게 ‘물류 일원화 계획’을 명목으로 물류를 본사에서 직접 공급하겠다고 통보한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업이익의 50%를 내라는 조건도 내걸었다.

금씨가 조건을 거절하면서 협상을 요청했지만 보우는 곧바로 ‘계약종료 및 갱신거절’을 통보했다. 가맹본부 계약을 종료하고 식자재 공급도 중단하라는 내용이었다. 보우는 전국의 가맹점에도 ‘금씨와 계약은 무효다. 본사와 거래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운영하다 계약해지로 파산한 금영락씨 회사 내 냉장고가 녹이 슨채 방치돼 있다. 신진호 기자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운영하다 계약해지로 파산한 금영락씨 회사 내 냉장고가 녹이 슨채 방치돼 있다. 신진호 기자

결국 금씨는 파산 직전에 내몰리게 되고 보우는 2015년 6월 새로운 합의서 작성을 요구한다. 일부 가맹점에 물품을 공급하는 단순한 지역본부 유지가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지난해 12월 31일을 끝으로 계약이 종료되면서 회사는 문을 닫았다.

금씨는 “청춘을 다 바친 사업을 통째로 빼앗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냐”며 “다만 이 사건으로 전국의 가맹점들이 피해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공정위에 신고하면서 금씨는 마음을 비웠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돈을 긁어모아 변호사 비용을 마련했다. 비슷한 피해를 입은 옛 지역본부들도 금씨를 거들고 있다. 진술서를 써주고 필요하면 공정위에 나가 진술하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신고서를 접수한 공정위는 당사자간 합의·조정이 필요하다며 한국공정거래조정원(조정위)에 사건을 넘겼다. 지난 11일 조정·협상을 위해 금씨와 보우 양측이 만났지만 기존 입장만 확인한 채 돌아섰다. 조정원은 이달 말 공정거래분쟁조정협의회를 열고 조정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협상이 결렬되면 신고 내용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부터 조사할 방침”이라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사업활동을 방해하고 부당한 거래를 강요했다면 관련 법에 따라 검찰에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운영하다 계약해지로 파산한 금영락씨(왼쪽)가 폐허가 된 자신의 회사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그동안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를 운영하다 계약해지로 파산한 금영락씨(왼쪽)가 폐허가 된 자신의 회사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그동안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신진호 기자

이와 관련, 보우 측은 금씨와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계약서를 작성했고 법적인 문제도 없다는 입장이다. 신고서의 내용이 사실과 다른 금씨의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2003년 금씨와 가맹본부 계약을 체결하면서 ‘3년+매년 연장’이라는 조건이었고 지난해 말 이뤄진 계약종료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독자적인 가맹점 모집과 물품 공급도 충청지역에 한해 권한을 부여한 것이고 다른 지역본부 인수나 공장·물류센터 건립 등도 금씨가 스스로 결정한 일이라고 했다.

보우 관계자는 “(금씨가)자신이 원하는 것을 다 취한 상태에서 해당 합의가 문제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며 “조정절차가 진행 중이고 경우에 따라 공정위원회 조사가 진행될 수 도 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최선을 다해 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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