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는 손이 아니라 마음을 잡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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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호 30면

[꽃중년 프로젝트 사전] ‘잡다’

인간은 초등학교 3학년 무렵부터 사람 간의 거리가 갖는 의미를 학습하게 된다고 한다.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친밀한 거리는 신체 접촉부터 45㎝, 개인적 거리는 45㎝에서 1m 20㎝, 그리고 일반적 업무를 위한 사회적 거리는 1m 20㎝에서 3m 60㎝로 규정한다.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큰 라운지에서 비개인적인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의 가정이다. 실제로 경찰의 심문 가이드에 따르면, 용의자를 심문할 때 가급적 용의자와 가깝게 앉을 것을 권하고 있다. 용의자의 개인적 영역을 줄이는 것이 방어에 대한 기회를 주지 않아 심문자인 경찰관에게 심리적 우위를 준다는 이유에서다.

정치인들은 직업의 특성상 원하든 원치 않든 수많은 사람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리더(대통령)들은 그 대화의 거리 안에서 자신이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기술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19초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6초, 그리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악수 요청 거부 사례는 첫 만남의 악수가 기실 얼마나 만만치 않은 관문인지 느끼게 한다(사실 미디어 노출만으로는 누가 더 불편한지 또 심리적 우위를 차지했는지를 알기는 쉽지 않다).

서로 손을 잡을 수 있는 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사실 그 사람의 마음을 잡고 싶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을 잡으려는 것은 친밀함을 원하는 무언의 제스처일 수 있다. 물론 무례하지 않은 기본을 지킨다면 말이다.

글로벌 에티켓에 따르면, 악수는 3~4초 동안 상대의 손을 굳게 잡고, 눈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인사하는 행위다. 죽은 생선(Dead Fish)같이 힘없는 악수, 손이 으스러져라 꽉 잡고 압력을 가하는 악수, 그리고 땀이 축축한 손으로 하는 악수처럼 상대에게 불쾌감을 주는 결례만 피하면 된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듯 악수에 대한 매너도 조금씩 다른데, 독일은 아주 강하게 잡되 단번에 마무리하고, 프랑스는 부드럽고 가벼운 손의 압력으로 상대의 손을 잡는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 악수에는 숨겨진 심리적 룰이 있다. 악수 당사자 간의 유대의 정도, 혹 기대하는 유대의 강도는 악수하지 않는 손을 살핌으로써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첫 만남의 악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왼손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고 문 대통령은 왼손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손 팔목을 잡았던 광경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질문에 “나는 악수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하면 이렇게 말이 나오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말이 나와서 악수가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그런데 진심일까. 아니면 또 다른 그만의 기치(旗幟)를 드러낸 걸까.

문 대통령의 전언에 따르면, 보도를 통해 들었던 이미지와 다르게 트럼프 대통령은 악수나 접대에서 대단히 정중하고 친절했으며, 미리 말할 내용을 준비해서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만약 그가 그동안 보여준 독특한 악수법이 그가 만난 정상들과 더 강한 친밀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면, 그 악수는 성공한 것이다. 요즘 언론이나 대중이 인식하는 ‘악수도 제대로 못하는 대통령’의 모습으로만 볼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자신의 협상능력의 기술로서 그만의 습관이라는 것이 더 적당한 해석 같아 보인다. 꽃중년이여, 상대의 손이 아니라 마음을 잡아라.

허은아
(주)예라고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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