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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가족 산산조각 내는데 … 음주운전 가볍게 보는 청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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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달 16일 2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성남 BMW 차량 음주운전 사고 현장(위). 음주운전 도주차량에 치여 숨진 30대 경찰관의 지난해 영결식 . [중앙포토]

지난달 16일 2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도 성남 BMW 차량 음주운전 사고 현장(위). 음주운전 도주차량에 치여 숨진 30대 경찰관의 지난해 영결식 . [중앙포토]

“우리 사회는 음주운전을 살인과는 달리 그저 ‘단순 실수’ 정도로 여긴다. 너무 관대하다. 처벌 역시 마찬가지다. 살인사건 피해자나 음주운전 사망사고 피해자나 결국 무고하게 목숨을 희생당하기는 똑같은데 말이다.”

청각장애 미화원 음주차량에 사망 #아들은 공부 접고 생활 전선으로 #아내 크림빵 구하던 남편 숨지고 #가족 3대가 한 번에 목숨 잃기도 #‘미필적 고의 의한 살인’ 인식 없어 #청문회서도 어물쩍 넘기는 분위기

지난해 12월 광주광역시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사고로 청각장애인 환경미화원 동생을 잃은 안모(63)씨의 말이다. 사고로 남은 안씨 동생네 가족의 삶은 산산히 깨졌다. 27년간 일해 온 안씨 동생은 3년 전쯤 자신 명의의 아파트를 마련했다고 한다. 1년 뒤면 은행 빚을 모두 갚고 집이 완전한 자신 소유가 된다는 생각에 들뜬 무렵 사고를 당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토목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던 취업준비생 큰아들(26)은 생활비 등을 벌기 위해 결국 꿈을 접었다.

하지만 가해 운전자인 육군 모부대 소속 상근예비역 A씨 측의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은 없었다. 그는 면허취소 수치인 0.146% 상태에서 차를 몰아 인명사고를 냈지만 지난 5월 보통군사법원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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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 사고로 무너진 가족은 또 있다. 지난달 16일 경기도 성남에서 일어난 BMW 음주운전 사고는 친언니 장례식장에 갔다 돌아오는 70대 노인을 사망하게 했다. 같은 차에 동승했던 이 노인의 큰딸(50)은 심각한 안구 손상으로 실명 위기다. 이 사고의 또 다른 사망자인 택시기사(60)는 세 식구의 가장이었다.

음주뺑소니 사망사고는 더 악성이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구간 남해고속도로 장유톨게이트 인근 갓길에서 펑크 난 타이어 교체작업을 하던 유모(36)씨는 갑자기 덮친 음주 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음주운전 사실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다는 가해 운전자 박모(36)씨는 승용차를 버리고 도망갔고, 20시간여 만에 경찰에 자수했다. 도주치사죄(징역 5년)만 인정되고 음주 부분은 혐의조차 적용되지 않았다. 유씨 동생은 극심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지난해 3대(代)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청라 음주 교통사고, 충북 청주 ‘크림빵 뺑소니’ 사고, 음주단속 도주 차량에 치여 끝내 숨진 고(故) 정기화 경감 사고 모두 음주운전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음주운전은 이처럼 ‘미필적 고의’에 의한 명백한 살인행위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점차 큰 공분을 사고 있다. 피해자 가족은 물론 수사기관 관계자들도 “한 가정을 산산조각내는 끔찍한 범죄”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고로만 이어지지 않으면 음주운전에 대해 관대하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 들어 청문회에 나온 고위직 인사의 경우 음주운전 경력이 드러나도 어물쩍 넘기는 분위기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나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허위혼인신고 등 논란으로 사퇴)가 대표적이다.

물론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도 음주운전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는 마찬가지였다. 특히 음주운전을 단속해야 할 경찰의 총책임자인 이철성 현 경찰청장은 과거 음주 경력에도 버젓이 청문회를 통과했다. 음주사고에 특히 예민한 일선 경찰 조직 내에서조차 “허탈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처럼 음주운전을 가볍게 취급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음주 교통사고는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음주 교통사고 건수는 2014년 2만4043건, 2015년 2만4399건, 2016년 1만9769건이다. 이 기간 음주사고로 1656명이 사망하고, 무려 12만75명이 다쳤다. 지난해의 경우 음주 교통사고는 전체 교통사고(22만917건)의 8.94%를 차지했다.

문제는 상습 음주운전자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3회 이상 음주운전자 적발 비율은 2014년 17.8%에서 2015년 18.5%, 2016년 19.1%로 증가세를 보였다.

성남·광주광역시·김해=김민욱·김호·이은지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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