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해결은 결국 청년들의 몫"…박능후 복지장관 후보자 발언 살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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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어카에 폐지와 폐품 등을 가득 싣고 힘겹게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 박능후 후보자는 심각한 소득 양극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포토]

리어카에 폐지와 폐품 등을 가득 싣고 힘겹게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 박능후 후보자는 심각한 소득 양극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중앙포토]

 박능후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지난 3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향후 복지 정책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통 사회복지학자인 박 후보자는 빈곤과 기초생활보장 분야의 전문가다. 그는 평소 "빈곤 해소에 사회보장제도가 기여해야 한다"는 지론을 밝혀왔다.

박 후보자 "빈곤에 사회보장제도 기여해야" 지론 #'심천회' 출신, 현 정부 정책 기조와 상당부분 일치 #"부양의무자 제도 폐지,소득 양극화는 적극 해결해야" #반면 저출산 문제에는 위기감과 거리 먼 발언도 #"비정규직은 청년만의 문제 아냐, 기성세대 개입은 오류" #5개년 기본계획 방향과 '저출산 해소' 공약에도 배치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싱크탱크 '심천회(心天會)' 출신인 그는 현 정부의 국정 철학과 거의 일치하는 입장이다. 지난해 말 보건사회연구원 주최로 열린 전문가 좌담회에선 '부양의무자' 제도의 폐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부양의무자 조건을 많이 완화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부양의무자 범위를 단계적·지속적으로 축소해 규정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는 점진적으로 부양의무자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문 대통령의 공약과 맞닿아 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연합뉴스]

 소득 양극화를 심각하게 보고 해결해야 한다고 밝힌 점도 마찬가지다. 그는 2014년 보사연 보고서를 통해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려면 사회보험·공공부조의 사각지대를 대폭 축소해서 재분배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기초생활급여 수준을 현실화하고 빈곤층에게 중산층 재진입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대통령 공약과 연결된다. 박 후보자는 3일 낸 지명 소감문에서도 "모든 국민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포용적 복지국가를 구축하는 데 진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책적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게 저출산 문제다. 박 후보자는 지명 소감으로 "저출산을 국가 존립의 위협으로 상정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통합적 계획과 실천 방안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출생아가 사상 최초로 30만명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등 '인구 절벽'이 가까워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면서 결혼율과 출산율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올해는 연간 출생아가 사상 최초로 30만명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중앙포토]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면서 결혼율과 출산율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올해는 연간 출생아가 사상 최초로 30만명대로 떨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중앙포토]

 그러나 지난해 보사연 좌담회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당시 '국가적 위기'와는 거리가 먼 발언을 여럿 내놨다. 그는 저출산 원인이 복합적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청년들이 너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게 중요한 원인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성세대의 잘못도 크지만 껍질을 깨고 나가야 하는 건 결국 청년들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비정규직 비중이 가장 높은 건 노령층"이라면서 "청년들은 20대만 비정규직 비율이 높기 때문에 비정규직 문제가 청년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오류"라고 선을 그었다.

복지 정책은 어디로...

 박 후보자는 정부가 저출산 해소에 적극 뛰어드는 것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청년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저렇게 하자고 하는 게 옳지 않다. 앞선 세대들이 개입하는 건 오류이며, 청년들이 문제를 좀 더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인프라만 깔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은 취업 지원·주택 공급 확대 등 정부에서 실시중인 5년 단위의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 방향과 상반된다. '좋은 청년 일자리'를 집중적으로 늘리는 등 저출산의 사회경제적 원인을 총체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대통령 공약과도 배치되는 것이다.

청년수당 지급으로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지난해 6월 서울시가 대형 현수막을 내건 모습. [중앙포토]

청년수당 지급으로 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지난해 6월 서울시가 대형 현수막을 내건 모습. [중앙포토]

 중앙정부·지자체의 복지 정책을 조정하는 사회보장위원회의 역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그는 좌담회에서 "사소한 문제를 주로 다루고 큰 틀에 대한 논의가 부족했다. 몇몇 건은 정치적 시각으로 처리돼 바람직하지 못 한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예로 서울시 등과 갈등을 일으킨 '청년수당' 문제를 들며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의견을 냈다.

 또 박 후보자는 복지 분야와 비교해 보건의료에 대한 연구 경험은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발언도 많지 않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노인 인구 증가에 따른 건강보험 재정 압박 등 보건의료 현안이 많은데 이를 잘 다룰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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