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진영 논리는 성(性) 무뢰한의 마지막 도피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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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고등학생 때 여중생을 “단지 섹스의 대상”으로 친구들과 “공유”했다고 책에 밝힌 탁현민 행정관 뉴스에는 어김없이 “그러면 홍준표는?”이라는 댓글이 등장한다. 홍준표 전 경남지사의 ‘돼지흥분제’가 다시 회자될 때마다 “그러면 탁현민은?”도 등장한다. 이렇듯 여성 멸시자들은 좌우 진영 안 가리고 서로 ‘물타기’하며 살아남는다.

홍 전 지사의 옹호자들은 그가 친구의 성폭행 미수를 방조했을 뿐이고 큰 잘못이었다고 쓰지 않았느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피해자에게 악몽이었을 사건을, 학창 시절 커닝하다 혼난 일화 쓰듯 명랑하게 쓴 다음 “장난삼아 한 일이지만” 큰 잘못이었다고 덧붙이면 될 줄 아는 게 심각한 문제다. 그런 면에서 탁 행정관의 글도 전혀 뒤지지 않는다. 미성년 여학생이 그런 식의 성관계에 빠지는 첫 시작은 대개 강압적 분위기에 의한 것이고, 배경에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학교폭력이 있기 마련이다. 그때는 몰랐더라도 성인이 돼서는, 특히 2004년 ‘밀양 사건’을 보고는, 그 점을 알고 여학생에 대해 걱정하고 후회했어야 한다, 책에 떠벌리는 대신에.

여성의 타자화를 공론화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 초판본.

여성의 타자화를 공론화한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 초판본.

‘페미니스트 대통령’에게 참 안 어울리는 탁 행정관은 그럼에도 진영 논리의 방패 뒤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제를 제기한 여당 여성의원들에게는 ‘반대 진영에 힘을 실어주느냐’는 전형적 진영논리 항의전화가 쇄도했다고 한다. 며칠 전 탁행정관 옹호 칼럼도 하나 나왔다. 야성적 마초 영감 ‘그리스인 조르바’가 “암컷” 운운하는 구절을 들어 작가 카잔차키스는 1945년 그리스 내각에서 장관도 했는데, 한국의 성 의식은 70년 전 그리스만도 못하다는 논지였다.

픽션과 논픽션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시대착오를 거꾸로 적용한 게 가장 놀라웠다. 당시는 보부아르의 『제2의 성』(1949)이 나오기도 전이다. 즉 그간 대부분 문학에서 여성이 남성 주체의 일방적 시선에 의한 객체로, 종종 사물화되어 다뤄졌음이 공론화되기도 전이었다. 게다가 카잔차키스의 장관직에 문제 제기하고 싶은 그리스 여성이 있었어도 참정권도 없던 시대에 무슨 재주로 하겠는가? (그리스 여성참정권은 52년 도입됐다.)

진짜 시대착오는 물건 취급 여성관을 거침없이 늘어놓는 게 풍류인 줄 착각하는 ‘꼰대’들, 꼰대의 유일한 미덕인 점잖음도 없는 나이 불문, 진영 불문 ‘진상 꼰대’들이, 진영을 방패로 살아남는 현실이다. “애국심은 무뢰한의 마지막 도피처”라던 새뮤얼 존슨의 말을 빌려 ‘진영 논리는 성(性) 무뢰한의 마지막 도피처’라고 해야겠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