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커 "北, 수소폭탄에 필요한 삼중수소 생산능력 확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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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핵 과학자이자 북핵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교수가 27일 “북한은 수소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삼중수소 생산 능력을 이미 갖췄다”고 말했다.

한국학술연구원 주최 학술회의 계기 기자간담회 #칼린 "문 대통령 2단계 북핵접근 좋은 아이디어"

헤커 교수는 이날 한국학술연구원(이사장 박상은) 주최로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제14차 코리아포럼-북핵 문제 국제학술회의’ 참석을 계기로 기자간담회를 갖고 “증거가 꽤 확실하다(quite clear)”며 이처럼 말했다. 스탠퍼드대 연구교수 겸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 선임 연구원인 헤커 교수는 2010년 북한 평안북도 영변의 핵무기 연구단지를 방문해 우라늄 농축에 쓰이는 원심분리기를 직접 목격했다.

헤커 교수는 “북한은 동위원소 리튬-6와 원자로 중 하나를 이용해 삼중수소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지난해 리튬-6를 판매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리튬-6를 원자로에 넣으면 폭발 과정에서 삼중수소와 헬륨-4로 쪼개진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도 지난해 북한이 리튬-6 판매 광고를 낸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또 “영변 핵 연구단지를 찍은 상업 위성 사진을 잘 들여다보면 많은 시설이 계속 새로 지어지고 있는데, 그 중 한 곳이 삼중수소를 추출할 수 있는 시설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헤커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 “영변 핵시설 내에 삼중수소를 추출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시설이 두 곳 있다. 한 곳은 IRT-2000 원자로 근처의 동위원소 생산 시설 인근에, 또 한 곳은 연료가공 시설이 있는 남동부 지점에서 새로 건설중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나 헤커 교수는 “하지만 북한은 무기로 쓰일 수 있는 수준의 수소폭탄을 만드는 기술수준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수소폭탄 실험이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서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수소폭탄은 원자폭탄의 수백배에 이르는 위력을 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헤커 박사는 모든 북핵 관련 협상에 앞서 북한을 포함한 당사국들이 ‘어떤 경우에도 북핵이 사용돼선 안 된다’는 의미의 ‘No Use’를 약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 등으로 그가 핵의 컨트롤을 잃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럴 경우 위험은 상상 이상이며, 한반도를 넘어 미국에게도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일단 No Use’를 약속하고 난 뒤 북한과 직접 대화하며 핵·미사일 도발 중단(halt)-5메가와트 원자로 해체(roll back)-핵무기 제거(eliminate)의 단계를 밟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함께 간담회에 참여한 북한 전문가 로버트 칼린 스탠퍼드대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의 핵 동결-핵 폐기 2단계 북핵 접근법에 대해 “좋은 아이디어”라고 평했다. 그는 “북한이 미사일을 계속 쏴대는 상황에서 대화를 할 수는 없다. 대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스타팅 포인트”라고 말했다.

칼린 교수는 또 “제재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북한의 핵개발을 막는 효과가 있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며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2010년 이후 처음으로 방문한 것이었는데, 단순히 차량만 늘어난 게 아니라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움직이는 것들이 모두 달라졌다. 표면적으로는 보다 번화한 듯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진행된 학술회의 토론에서는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이지만, 단기적 목표는 수정해야 한다. 북한과 마주 앉아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거기서 공동의 목표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협상 초기 단계부터 이행 전문가가 참여해 이행을 담보하도록 합의를 구성해야 한다. 간단하고 단순한 것부터 이행을 하는 식으로 시작해야 차차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사회를 맡은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는 “그 간 우리가 도출한 9·19 공동성명 등을 되돌아보면 그에 뒤따르는 후속조치 규정이 없었다. ‘대화를 위한 대화’가 된 데는 북한의 책임만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책임이 없는지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접근해야 북핵 문제에 새로운 지평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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