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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들에서 외친 인간화와 평화의 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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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호 32면

“당신은 정치가요? / 아니요. / 당신은 사회 운동가요? / 아니요. /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 나는 빈 들에서 외치는 소리요.”

『여해 강원용 목사 평전』 #저자: 박근원 #출판사: 한길사 #가격: 2만8000원

종교 지도자이자 평화 운동가였던 여해(如海) 강원용(姜元龍) 목사(1917~2006)가 자신의 사명을 이야기하며 즐겨 쓰던 문장이다. 광야에서 복음을 외친 세례자 요한을 생의 모델로 삼았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박근원 한신대 명예교수는 “강원용 목사는 정치가이자 사회운동가이며 목사이자 신학자였다”고 말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려 정치에 참여했고, 사회 개혁을 위한 실천에 적극 나섰다. 한편으로는 교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정적인 설교를 한 목회자에, 그리스도교 윤리에 천착한 학자이기도 했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강원용 목사의 삶과 사상을 깊이있게 다룬 평전이다. 1917년 함경도 산골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강 목사는 15세에 기독교에 입문했고 한신대, 미국 유니언 신학교 등에서 공부했다. 김재준 목사와 함께 경동교회를 설립해 28년간 담임목사를 지냈고, 세계교회협의회(WCC) 운동에도 적극 참여해 세계 교회와 한국 교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또한 ‘인간화’와 ‘평화’를 화두로 삼아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설립, 종교와 세대를 넘어서는 교육·대화 운동을 펼친 인물이기도 하다.

평전은 강 목사가 기독교를 처음 만난 소년기에서 시작해, 해방 공간에서의 경험, 전쟁과 분단 등의 역사를 거치며 종교적 신념과 철학을 정리해 가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살핀다. 특히 경동교회에서 했던 강단 설교를 분석해 그의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파헤쳤다. 강 목사가 50년대 처음 경동교회에서 한 설교는 신약성서 누가복음 15장의 ‘돌아온 탕자 이야기’였다. 그는 환경에 잘 순응해 산 맏아들보다 순응을 거부하고 집을 뛰쳐나간 둘째 아들, 즉 탕자를 옹호하며 “먼저 순응을 거부하자”고 했다.

강 목사는 세상을 선하다고 보지 않았다. 세상을 ‘이리’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세상을 정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러 가는 것이라 역설했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정의’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랑과 정의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입니다. 정의가 내재되지 않는 사랑은 허구고,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은 정의는 불의의기 때문입니다.”

평전이 그의 목회 현장을 주로 다뤘다면 함께 출간된 『강원용 인간화의 길 평화의 길』(박명림·장훈각 지음) 『강원용과 한국 방송』(이경자·강대인·정윤식·홍기선 지음)은 그의 사회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펼쳤던 종교간 대화 운동과 ‘중간집단교육 프로그램’은 사회 갈등의 조정과 통합을 위한 사회운동으로 지금까지도 높이 평가받는다. 그는 또 방송윤리위원회 위원장(1962~67), 방송위원회 위원장(1988~91) 등을 맡아 방송 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다. 언론학자인 이경자 전 경희대 부총장은 “성직자가 세속적인 방송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가란 질문에 대해 생전 강 목사는 ‘내게는 성(聖)과 속(俗)이 따로 없다. 기준이 있다면 이 일이 인간화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다’라고 했다”고 회고한다.

이번 평전은 강 목사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출간됐다. 특히 ‘중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Between and Beyond)’와 ‘제3지대’를 주창했던 강 목사의 사상은 ‘협치’와 ‘소통’이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한국사회에 울림이 크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박근원 교수는 “평전을 마무리하는 동안 광화문에서는 촛불 시위와 태극기 시위가 동시에 열리고 있었다. 강 목사가 살아 있다면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자주 생각했다”고 했다. 강 목사는 극심한 한일회담 반대 시위의 와중에 계엄령이 선포된 1964년 6월, 이런 설교를 했다. “기독교가 보는 가장 무서운 파괴력은 자신의 주장의 의(義)를 절대화하는 것이다. 자신이 최고의 심판자로 군림하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악마다. (…) 자유에의 길을 걷는 오늘 이 민족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도 바로 이 자기 절대화다.”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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