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기 왕위전] 집념의 두드림에 돌부처도 흔들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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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제37기 왕위전 도전5번기 제2국
[제9보 (164~204)]
白.도전자 曺薰鉉 9단 | 黑.왕위 李昌鎬 9단

형세가 유리하여 굳히기에 들어간 이창호9단의 모습은 커다란 방패를 앞세운 채 빈틈없이 늘어선 영화속의 로마군을 연상시킨다.

바늘 하나 꽂을 틈이 없다고 말하지만 李9단의 수비야말로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다.

曺9단은 구슬땀을 흘리며 그 방패를 끝없이 두드리고 있다. 164에 이어 170, 172 등으로 차이를 좁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흑과 백의 차이는 반면 10집 언저리. 참 먼 거리다.

그러나 曺9단은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물쓰듯 하며 집념어린 추격전을 전개하고 있다.

대국장을 에워싸고 있던 경찰이 검토실에 나타나 하소연한다. 언제쯤 시합이 끝나는지 궁금한 데다 시위가 열리는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사정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바둑이 언제 끝날지 누가 알겠는가.

처음엔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오늘 대국은 다른 때보다 좀 빨리 끝날 것이고 그렇다면 부안의 해변에서 제때 저녁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관계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예상은 철저히 빗나갔다. 曺9단이나 李9단은 역시 철저한 승부사였고 주위의 분위기에 손톱만큼도 영향 받지 않은 채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曺9단의 지극한 투혼에 감응을 받은 것일까. 돌부처 같던 李9단이 조금씩 흔들리는 기상천외의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179의 패때림이 그것이다. 曺9단은 얼른 180으로 두 점을 따냈는데 이것은 무려 선수 3집. 179는 '참고도' 흑1, 3의 패를 노린 것이지만 A의 큰 곳이 남아 있는 데다 B의 팻감이 있어 흑은 어차피 결행할 수 없다.

183도 비슷하다. C의 패를 노린 것이지만 백이야 어차피 진 바둑 패를 겁낼 것인가.

그 사이 백은 184, 194 등으로 바짝 고삐를 조이기 시작했다.(182.185.192.195.198.201.204는 패때림)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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