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체스터 테러 보고 '텀블러 폭탄' 제조 결심"

중앙일보

입력

경찰에 체포된 연세대 '텀블러 폭탄' 피의자가 맨체스터 테러를 보고 폭탄 제조를 결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김 교수 특정해 노린 사건, 테러 아냐"

13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공학관에서 일어난 사제 폭탄 사건 피의자인 기계공학과 대학원생 김모(25)씨가 같은 날 오후 8시 20분쯤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5월 말 뉴스에 나온 테러 사건을 보고 폭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진술했다.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발생한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자살 폭탄테러를 참고했다는 이야기다. 김씨는 지난달 말 폭탄 제조를 시작해 지난 10일 텀블러 폭탄을 완성했다. 김씨는 폭탄을 만들기 위해 공학도로서 가진 지식을 활용했을 뿐, 인터넷에 있는 제조법을 참고한 일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22일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이 발생한 영국 북부 맨체스터 실외경기장 '맨체스터 아레나'에 경찰이 출동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2일 테러로 추정되는 폭발이 발생한 영국 북부 맨체스터 실외경기장 '맨체스터 아레나'에 경찰이 출동해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이 사건을 같은 '테러'로 보기는 어렵다. 김씨가 같은 과 김모(47)교수를 노렸다고 시인함에 따라 이 사건에서 '테러' 딱지는 떨어졌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걸 테러라고 하는데, 피의자가 다른 사람이 열어볼 것이라 생각한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3일 오전 서울 신촌 연세대 1공학관 김모 교수 연구실에서 터진 '테러의심' 폭발물. 2017.6.13 [독자제공=연합뉴스]

3일 오전 서울 신촌 연세대 1공학관 김모 교수 연구실에서 터진 '테러의심' 폭발물. 2017.6.13 [독자제공=연합뉴스]

경찰이 확인한 폐쇄회로(CC)TV에는 김씨가 사건 당일 새벽 2시 37분 하숙집에서 나와 학교로 향하는 모습이 잡혔다. 밤새 학교에서 범행을 고민하던 김씨는 7시 41분 배낭을 메고 김 교수 방으로 가 포장한 텀블러 폭탄을 문 앞에 내려놓았다. 밤새 연구를 하느라 학교에 나타났던 것으로 알리바이를 꾸미기 위해 연구실에 있는 3D 프린터를 작동시킨 채 집으로 돌아갔다.

폭탄 제조와 관련한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다. 경찰은 김씨가 폭탄용기로 쓴 텀블러는 김씨 개인 물건이 아니라 연구실에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텀블러에 미국 명문대 교표가 그려져 있어 해당 학교 졸업생이 범인일 수 있다는 의혹이 있었다. 또 폭탄은 상자를 열기 위해 테이프를 뜯으면 점화되게 만들어졌다.

경찰은 "학점을 주지 않아서 앙심을 품었다" "영어 점수를 따기 위해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등 학생들 사이에 퍼진 소문은 김씨 진술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14일 오후 피해자인 김 교수를 상대로 조사를 벌여 김씨의 범행동기 등을 확인할 계획이다.

이현·김나한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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