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비박 사라지고 ‘어대홍’ vs ‘반대홍’ 대결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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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내달 3일 전대, 전열 재정비 나선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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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당이 좀 무기력한 느낌이다.”

윤상현 “친박은 폐족” 홍준표 지지 #원유철 출마 뜻 “수도권 대표 필요” #바른정당 26일, 중진들 눈치 게임 #“보수의 비전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자유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들이 전한 대선 이후 당내 기류다. 단순히 막강한 집권여당에서 제1야당이 된 일종의 상실감 차원이 아니다. 당장 정당 지지율의 경우 지난 9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 결과 10%를 기록해 국민의당(8%)과 바른정당·정의당(각 7%)과 거의 차이가 없다. 존재감 측면에서도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에 오히려 밀릴 때가 많은 게 현실이다.

국민의 관심을 끌 만한 이벤트는 다음달 3일 실시되는 전당대회다. 단순히 당의 얼굴이 바뀌는 것을 넘어 출마자들의 면면과 이들이 내놓는 보수 재건의 청사진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문제는 대선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가 당 대표를 맡느냐 마느냐에만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관계자는 “친박계나 비박계란 말이 무의미해지고 이제는 ‘어대홍(어차피 대표는 홍준표)’과 ‘반대홍(홍 대표만은 반대)’ 세력으로 양분되는 양상”이라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대선 패배한 ‘홍준표 대표론’ 놓고 갑론을박  

홍 전 지사는 당 대표 후보 등록이 시작되는 17일께부터 순차적으로 전국 시·도당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당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차기 당 대표로서의 비전을 제시하는 자리다. 홍 전 지사는 미국에서 돌아온 다음 날인 지난 5일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패배에 대해 사죄드리고 앞으로 자유 대한민국의 가치를 지키는 데 함께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는 데 매진하겠다”며 당권의지를 내비쳤다.

일각에선 구친박계는 홍 대표 체제에 반대하고 비박계는 지지하는 구도라고 말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친박계 핵심이라고 불렸던 윤상현 의원은 10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이제 친박은 폐족이나 마찬가지”라며 “야당은 선명성과 투쟁성을 갖고 동력을 확보해 나가야 하는데 현재 거론되는 당 대표 후보 중 홍 전 지사만큼의 정치력과 위기관리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누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처럼 홍 전 지사를 지지하는 이들은 강한 야당 대표로서의 면모를 기대하고 있다. 대선 직전 바른정당을 탈당해 홍 전 지사의 특별지시로 한국당에 재입당한 의원들 사이에서도 전반적으로 이런 기류가 감지된다. 김성태 의원은 “최순실 국정 농단의 끈을 끊어 내고 보수 대혁신을 이뤄 내기 위해서는 결기와 단호함이 있는 대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 전 지사로선 6년 전 한나라당 대표에 이어 두 번째 당권 도전이다. 게다가 지난달 대선에 출마했다가 패배했다. 패장은 잠시 정치권과 거리를 두는 게 미덕으로 여겨져 왔음에도 당 안팎에서는 “홍 전 지사 외엔 대안이 없지 않느냐”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한 3선 의원은 “구친박계가 당권을 잡는 것보다는 홍 전 지사가 낫지 않겠느냐”며 “홍 전 지사가 당의 체질을 한 번 싹 바꿔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고 말했다.

홍 전 지사가 대선에 기여한 공로 때문에 오히려 당 대표가 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정진석 의원은 “며칠 전까지 새로운 보수의 교두보로서 홍준표를 외쳤는데 당장 패배했다고 ‘홍준표 지우기’에 들어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홍 전 지사가 원한다면 기회를 주는 게 마땅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대선후보도 못 낼 거라던 한국당이 24%를 득표하며 2위를 기록한 건 홍 전 지사의 개인기 덕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홍 전 지사가 일부 친박을 ‘바퀴벌레’라고 칭하는 등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 내면서 “가뜩이나 위기에 처한 당을 두 동강 내려 한다”는 우려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홍 전 지사가 지난 7일 “구체제 기득권을 고수하려고 몸부림치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 보수가 궤멸되는 줄도 모르고 자기 자신의 영달에만 매달리는 몰염치한 인사들은 이번 전대를 계기로 청산돼야 한다”고 강조한 데 대해서도 ‘친박 청산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대해 윤상현 의원은 “홍 전 지사 스스로 친박·비박은 없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며 “홍준표 대 친박의 구도를 만드는 건 하나의 프레임일 뿐 홍 전 지사는 단지 친박과 각을 세우려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바른정당, 이혜훈·김영우·하태경 출마 채비

홍 전 지사의 강점인 선명성이 외연 확장에는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권에 도전할 뜻을 내비친 5선의 원유철 의원은 통화에서 “홍 전 지사가 대선 때 나름 고군분투했지만 서울·경기도·인천에선 전부 3위를 했다”며 “이제 한국당의 정치 형태를 연령적으론 더 젊게, 지역적으로는 중부와 수도권까지 확대해야 미래가 있다”고 주장했다.

출마를 저울질 중인 4선의 홍문종·나경원 의원도 수도권을 지역 기반으로 하고 있다. 홍 의원은 “홍 전 지사가 당 대표가 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은 다 망한다는 위기의식이 퍼져 있다”며 “지역 당원·지지자들과 소통하며 출마 여부를 고심 중”이라고 말했다. 부산·경남(PK) 지역에선 홍 전 지사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 아래 4선의 유기준 의원과 김태호 전 최고위원의 이름도 오르내린다. 유 의원은 통화에서 “출마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고 했고, 김 전 최고위원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바른정당은 26일 새 대표와 최고위원들을 선출한다. 12일 후보 등록이 시작되는데 10일 현재까진 3선의 이혜훈 의원과 김영우 의원, 재선의 하태경 의원이 본지에 출마의사를 밝혔다. 황영철(3선)·정운천(초선) 의원정미경 전 의원 등도 출마를 고심하고 있다. 김세연(3선) 의원은 주변에 “좀 더 고심해 보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후보였던 유승민 의원과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김무성 의원은 일절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결국 두 사람의 의중이 변수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원내 20석의 정당이지만 대부분 중진 의원이다 보니 누가 출마하는지부터 살피는 ‘눈치게임’ 기류도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누가 출마하든 당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메시지를 확실히 각인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출마 득실을 따질 게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개혁 보수의 비전이 무엇인지 국민에게 알리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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