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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꼭 숨겨뒀다 이제야 뽑은 시진핑 ‘보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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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켓 승진’
중국 언론의 첫 반응은 이랬습니다. 얼마나 승진을 빨리했길래 보수적인 중국 언론조차 이런 반응을 냈을까요. 말 그대로 ‘쇼킹’ 인사였습니다. 평 당원에서 정치국원이 맡는 베이징 시 서기에 올랐으니 말입니다. 중국에 관심 있는 분들은 대강 짐작하셨겠네요. 5월 27일 베이징 당서기 인사에 오른 차이치(蔡奇·61) 얘기입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광둥성 등 주요 지역의 당서기는 25명으로 구성되는 당 중앙 정치국원 급 보직입니다.

차이치처럼 공산당 중앙위원(205명)은 물론 그 아래 후보위원(161명)에도 포함되지 않는, 권력서열 367위 이하의 평당원이 수도 베이징 서기로 발탁된 건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중국 공산당은 평당원(약 8800만 명)→중앙 후보위원→중앙위원→정치국원→상무위원(7명)의 순으로 서열이 올라가는 게 거의 굳어진 관례거든요.

차이치 베이징 서기 [사진 이매진 차이나]

차이치 베이징 서기 [사진 이매진 차이나]

차이치는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렇게 시진핑 주석의 총애를 받는 걸까요. 혜성처럼 나타나 벼락출세를 하다 보니 그에 대한 정보는 중국 언론에서조차 잘 소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그의 벼슬길을 추적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대표적인 ‘시자쥔(習家軍·시진핑의 옛 부하 출신 인맥)’입니다. 시 주석이 최고 권력에 오른 후 쓰기 위해 꼭꼭 숨겨둔 그만의 측근이라고나 할까요. 현재 중국 권력 핵심 요직 대부분이 이렇게 시 주석이 지방 근무 시절 눈여겨 봐뒀던 인재들이 독차지하고 있지요. 차이치 역시 그중 한 명이라는 거지요.

그는 푸젠성 요우시(尤溪) 태생입니다. 1973년 푸젠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학구파지요. 그리고 1978년 푸젠 사범대 당 위원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합니다. 그가 푸젠성 당 위원회에 들어가 본격적인 공직 생활을 시작한 건 1983년 일입니다. 당시 푸젠성 정부에서 경제학 박사는 열 손가락 안에 꼽혔다고 합니다.

당연히 성 정부 관계자들이 그를 주목했지요. 그리고 2년 후 그는 성 당 위원회 부처장에 오릅니다. 이때 시진핑 주석은 샤먼시 부시장으로 푸젠 성과 인연을 쌓기 시작합니다. 시 주석은 이후 푸젠성 푸저우 시 서기(1993~95년), 푸젠성 부서기(1995~99년), 푸젠성 대리성장(1999~2000년), 푸젠성 성장(2000~2002년)를 거칩니다. 무려 17년간 푸젠 성에 근무한 시 주석은 푸젠 성을 자신의 ‘제2의 고향’이라고 불렀습니다.

민원 현장을 방문한 차이치 [사진 바이두]

민원 현장을 방문한 차이치 [사진 바이두]

시 주석이 이렇게 푸젠 성과 인연을 만들어가는 동안 차이치는 푸젠성 정치개혁위 부주임과 주임(1991~1993년), 성 당 위원회 부주임(1993~1996년), 산밍시 부서기와 시장(1996~1999년)을 거치며 시진핑의 경제 교사 역할을 합니다. 둘은 푸젠 성에서 약 14년 동안 경제 등 문제로 동지애를 다져갔다는 게 중국 언론의 분석입니다. 물론 경제학 박사인 차이치의 경제 강의에 시 주석이 매료됐다고 합니다.

둘의 관계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1999년 차이치는 저장성 취저우(衢州) 시장으로 옮겨가는데 3년 후인 2002년 시 주석이 저장성 대리 성장에 오르면서 둘의 관계가 4년간 더 지속됩니다. 일부에서는 시 주석이 차이치를 미리 저장성으로 보내 성내 사정을 미리 파악하도록 배려했다는 말도 나옵니다.

권진룽 전 베이징 서기(우)와 대화하는 차이치 [사진 이매진 차이나]

권진룽 전 베이징 서기(우)와 대화하는 차이치 [사진 이매진 차이나]

차이치는 두 살 차이의 시 주석과는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진핑은 집권 초 차이치를 저장성 부성장으로 승진시킨 뒤 2014년 신설된 국가안전위원회 판공청 부주임으로 발탁해 베이징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중국판 국가 안보회의(NSC) 격인 국가안전위의 요직을 관련 경험도 없는 차이치에게 맡긴 걸보면 시 주석이 그를 얼마나 신임하는지 알 수 있겠습니다.

중구 정가에서 차이치 하면 ‘Mr. 투명’으로 불립니다. SNS를 활용해 시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주민들과 소통을 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그는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습니다. 미국 정치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를 즐겨본다고 하지요. 저장성 조직부장(2010년) 때는 "술을 못하는 공무원 아들이 회식과 접대로 매일 만취해 돌아온다"는 한 여성의 하소연을 접하고는 그 아들의 보직을 바꿔줬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차이치 서기의 SNS 계정 [사진 텅쉰]

차이치 서기의 SNS 계정 [사진 텅쉰]

차이치 앞길이 탄탄대로인 것만은 아닙니다. 수도 베이징이 안고 있는 문제가 너무 산적해 이를 해결하지 못할 경우 이번 벼락출세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고질적인 환경 문제입니다. 베이징은 중국의 고도이자 수도로서의 명성보다 최악의 스모그 도시로 악명을 떨치고 있어서입니다. 시 주석은 환경부장이었던 천지닝(陳吉寧)을 베이징 대리 시장으로 보내 차이 서기를 돕도록 배려했습니다. 베이징 스모그 문제가 지도자가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은 중국인들도 다 알고 있지요.

다만 어느 정도 성과를 내느냐에 그의 벼슬길 운명이 달려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지부진한 징진지 계획(京津冀·베이징과 톈진, 허베이성을 하나의 경제 벨트로 묶는 프로젝트)도 성과를 내야 합니다. 특히 허베이(河北) 성 슝안(雄安) 지역에 새로 지정된 국가 급 경제특구, 슝안 신구(雄安新区)에 대한 개발은 가장 시급한 그의 과제입니다.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은 난제들입니다.

그럼에도 중국 정가에선 그가 올가을 평당원에서 정치국원으로 초고속 승진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베이징·상하이·충칭·톈진 등 4대 직할시의 당 서기는 대부분 정치국원이 맡아왔기 때문이지요. 시 주석의 신임이 두터운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합니다. 시진핑 이후 중국을 이끌 새로운 정치 스타 한 명이 탄생한 겁니다.

차이나랩 최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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