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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반도체 전 세계 1위, 한국 “장비도 1등일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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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 잠정 영업이익이 9조9000억원, 전년 동기 대비 48.2%나 증가했다. 1등 공신은 역시 ‘반도체’다. 반도체 부문에서만 영업이익을 6조원이나 거뒀다.

10년 만에 도래한 글로벌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분일까.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 했다. 올해 한국의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가 146억 달러(16조4000억원)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전년보다 75%나 뛴 수치다. 내년에도 151억 달러(16조9000억원)를 넘어 세계 1위 자리를 굳힐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한국 뒤를 바짝 쫓고 있다. 올해 설비투자액은 68억 달러(7조7000억원)지만, 내년부터는 두 배 가까이 늘어난 115억 달러(13조원)를 투자할 예정이다. 대만을 제치고 2위로 등극하는 셈이다. 미국과 일본도 올해 설비투자에 각각 52억 달러(5조8000억원)와 51억 달러(5조7000억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자료 중앙포토]

[자료 중앙포토]

전방업체가 대규모 설비투자에 나서자 장비업계도 덩달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 7일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반도체 제조장비 출하액은 130억9000만 달러(14조7000억원)로 지난해 동기 대비 58%나 증가했다. 역대 최대 규모인 2000년 이후 17년 만에 기록을 경신했다.

한국 반도체 장비산업도 급성장했다. 세메스·원익IPS·주성엔지니어링·한미반도체·케이씨텍 등 반도체 장비 관련 중견 기업도 여럿 나왔다. 중국 최대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그룹도 중국 현지 반도체 공장 신설에 700억 달러(78조6000억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히자 한국 장비업계는 더 고무됐다. 앞으로 10년간은 중국을 앞선다는 자신감도 충만하다. 과연 그럴까. 산업 전문 매체인 키포스트(www.kipost.net)와 함께 장비업계를 팩트체크해봤다.

FACT 1.
한국 반도체 장비가 세계 최고다? △ 

반도체 핵심 공정에는 한국산 장비가 적은 편이다.
공정을 살펴보자. 가장 중요한 과정이 ‘포토 공정’이다.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를 만들기 위해 기본 패턴을 사진 찍듯 인화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한국 업체 중 회로 패턴을 인화하는 ‘스캐너’ 장비 개발사는 없다. ASML(네덜란드)이 미세공정용 포토 스캐너 장비는 거의 독점하고 있고, 나머지도 일본 업체가 차지다.

다음 과정은 패턴에 따라 화학물질을 바르는 증착, 다시 깎는 식각(Etching·에칭) 공정이다. *3D낸드플래시를 생산하면서 화학 물질을 여러 겹으로 쌓아야 하고, 패턴은 훨씬 복잡해졌다. 그만큼 안정성·정확성이 더 중요해졌다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한국 내 3D낸드플래시 생산라인에 필요한 증착 장비는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미국)·도쿄일렉트론(일본)에서, 식각 장비는 램리서치(미국)·ASML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 업체도 뛰어들었지만, 시장점유율 30%를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자료 중앙포토]

[자료 중앙포토]

* 3D낸드플래시? 3D는 회로를 빌딩처럼 수직으로 쌓아 올려 메모리 집적도를 획기적으로 늘린 기술이다. 삼성전자는 3년 사이에 24단에 이어 48단, 64단까지 쌓아 올린 낸드 플래시 양산에 연달아 성공했다.

계측·검사 장비 또한 히타치(일본), KLA텐코(미국)가 거의 독점하고 있다. 한국 업체 대부분은 기술 장벽이 비교적 낮은 증착·세정 장비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후공정 분야에서는 한미반도체(절단 장비), 이오테크닉스(레이저 마킹 장비) 등이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 후공정? 완성된 웨이퍼를 자르고 보호막을 씌워 최종 제품으로 완성하는 공정

FACT 2.
중국 반도체 장비업체는 독자 개발 능력이 없다? △ 

중국은 올해, 최초로 반도체 장비 양산에 돌입했다.
지난 4월 중국 업체인 파이오테크(Piotech·沈阳拓荆科技有限公司)가 선양시 훈난(浑南)구에 1억5000만 위안(250억원)을 투자해 중국 최초 반도체 박막필름 장비 양산을 시작했다. 5만2000㎡에 달하는 면적에 최신 장비와 클린 룸을 갖춘 중국 최초의 반도체 박막필름 생산 기지다. 현재 한 개 라인만 가동해 100대 생산이 가능하지만, 올해 말까지 생산라인 2곳이 완공되면 최대 350대를 생산할 수 있다.

파이오테크의 플라즈마화학기상증착(PECVD) 장비 [사진 키포스트]

파이오테크의 플라즈마화학기상증착(PECVD) 장비 [사진 키포스트]

파이오테크는 어떤 회사일까. 플라즈마화학증착기(PECVD)와 반도체 공정용 원자층증착(ALD) 장비를 생산한다. 앞서 본 ‘포토 공정’에 필수 장비다. 삼성전자가 1개 라인에서 3D 낸드플래시 메모리 생산을 위해 연 10만 장의 *웨이퍼를 만든다면 많게는 박막필름 장비 수백 대가 필요하다.

* 웨이퍼? 반도체의 기본 소재로 박막 원형 디스크 모양으로 지름 1~12인치로 다양하게 제작된다. 대부분 반도체 기기나 칩 제작의 기판 재료로 사용된다.  

중국 반도체 업계는 이 장비를 줄곧 수입에 의존해왔다. 한국·대만·일본·미국 반도체 업체도 반드시 필요한 장비이기에 중국 내 공급이 충분하지 않을 정도다. 하지만 파이오테크의 양산 성공 소식이 알려지자 중국 언론도 흥분했다.

랴오닝일보는 “중국의 ‘장비 공백’을 보완하고, 중국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한층 더 높여줄 것”이라며 “파이오테크 장비 성능도 세계적인 수준인데다 수입 장비보다 30%나 저렴하다”고 보도했다. 키포스트도 “최근까지 파이오테크가 신청한 특허 수는 316개에 달한다”며 “생산량만 보면 매년 두 배씩 성장하고 있다”고 했다.

넥스칩 본사 전경 [사진 키포스트]

넥스칩 본사 전경 [사진 키포스트]

중국 반도체 생산공정에 장비를 납품한 중국 업체도 이미 여럿이다. 올해 10월부터 중국 반도체 기업 넥스칩이 허페이 신잔종합보세구역에 세운 공장에서 디스플레이구동칩(DDI) *파운드리 양산에 돌입한다. 이곳에 중국 업체 장비가 들어갔다. 지난 4월 베이징 징이자동화장비유한공사가 세정(클리닝) 장비를 납품했고, C선테크는 열처리 장비 10여 대를 공급했다. 얼마 전까지 한국 업체가 중국에서 독점 납품하던 장비였다.

* 파운드리? 팹리스로 불리는 설계 전문 업체가 상품을 주문하면서 넘겨준 설계 도면대로 웨이퍼를 가공해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사업. 설계 기술 없이 가공기술만 확보하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 노라는 14~28나노 장비 개발을 완료하고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진 노라]

중국 반도체 장비 업체 노라는 14~28나노 장비 개발을 완료하고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진 노라]

FACT 3.
한국 업체보다 기술이 뛰어난 중국 업체도 있다? △  

한국 업체가 개발하지 못한 장비가 중국에서 나왔다.
바로 식각 장비다. 식각 장비란 웨이퍼 위에 도포된 화학물질 중 특정 부분을 제거하는 장비다. 증착·식각을 수차례 반복하면서 반도체 회로를 그려진다고 보면 된다.

지난 5월 중국 업체 노라(NAURA·北方华创)는 9년간의 연구 끝에 식각 장비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전 세계 반도체 업계가 주로 쓰는 28나노 공정용 장비는 양산이 코앞이다. 삼성전자가 주로 적용하는 미세공정용 14나노 장비는 최종 시험 테스트 중이다. 특히 14나노 장비의 경우 한국 업체도 개발이 쉽지 않은 장비다.

노라의 14나노 공정 장비 [사진 노라]

노라의 14나노 공정 장비 [사진 노라]

중국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SMIC는 이미 노라의 장비를 애용하고 있다. SMIC가 28나노 공정을 갖추면서 맞춤형 장비를 찾다가 노라와 인연을 맺었다. 덕분에 노라는 장비 운용 노하우를 익혔고, 14나노 장비를 개발하는데  탄력을 받았다. 중국 정부도 노라의 14나노 장비 개발에 총 2억 위안(325억원)을 투자하는 등 적극 지원에 나섰다. 매출액도 매년 40%씩 성장하고 있다.

FACT 4.
중국산 장비를 쓰는 한국 업체가 있다? O 

지난해 7월 중국 장비 업체 AMEC는 SK하이닉스 3D 낸드플래시 양산 라인에 식각 장비를 공급했다.
SK하이닉스 평면형 낸드플래시 라인에 주로 투입됐다. AMEC는 어플라이드에서 경험을 쌓은 엔지니어가 차린 회사로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식각 장비업체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SK하이닉스는 AMEC로부터 장비를 더는 구매하지 않기로 했다. SK하이닉스 측은 “고난도 공정에서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선 기술 유출 우려가 더 크다고 봤다. 장비를 납품받아 중국 엔지니어들과 접촉하다 보면 공정상 기밀 정보 유출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모바일·서버용 D램, 고성능 낸드플래시 솔루션 등 메모리 반도체 제품 경쟁력을 높여 신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 직원이 반도체 생산 장비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SK하이닉스는 모바일·서버용 D램, 고성능 낸드플래시 솔루션 등 메모리 반도체 제품 경쟁력을 높여 신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 직원이 반도체 생산 장비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FACT 5.
반도체 산업 밀어주기 펀드, 중국 중앙정부만 주도한다? X 

지방 정부도 적극적이다.
물론 반도체 산업 밀어주기의 첫 발은 중앙 정부가 내디뎠다. 지난 2014년 6월 중국 국무원은 ‘국가집적회로(반도체) 발전 추진 요강’을 발표하면서 총 1200억 위안(21조4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올해까지 투자하겠다고 했다. 최근에는 베이징·상하이 등 지방자치단체도 수조원 규모의 펀드 마련에 뛰어들었다. 특히 상하이시는 반도체 업계 해외 인수합병(M&A)와 장비·재료 개발에 투자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안도 공개했다.

상하이시는 린강(臨港) 지역개발 건설관리위원회부터 구성했다.  ‘상하이 반도체 장비·재료 펀드’라는 이름으로 100억 위안(1조6000억원)을 모았다. 올해 말까지 반도체 산업 투자용으로 총 400억 위안(6조6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추가로 조성할 계획이다.

[사진 중앙포토]

[사진 중앙포토]

지난 1분기 한국은 대만을 제치고 전 세계 반도체 장비 출하액 1위에 올랐다. 한국은 36억 달러(4조원) 규모의 장비를 쏟아냈고, 장비산업까지 1위 자리를 지켜냈다. 물론 대만(35억 달러)·중국(19억 달러)에서도 총 44억 달러(4조9000억원) 어치의 장비가 쏟아졌다. 팩트체크 결과 한국 반도체 장비업계 실상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았다.

중국 업체는 정부의 막대한 자금 지원으로 한국 업체를 턱밑까지 쫓거나 앞서기도 했다. 한국 반도체 장비 분야에까지 ‘중국 굴기’의 그늘이 드리워진 셈이다. 한국 업계가 빠른 시일 내에 선두 자리를 꿰차지 못하면 지금의 호황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글=차이나랩 김영문
자료=키포스트 유효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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