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국산 짝퉁 막는 비밀 병기… '정관장' 포장지를 조폐공사가 만드는 까닭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3면

조폐공사가 만든 정관장 정품 인증 포장지. 화폐를 만들 때 쓰는 위ㆍ변조 방지 기술이 적용됐다. 포장지에 숨겨진 ‘KOREAN RED GINSENG’, ‘정관장(正官庄)’, ‘고려삼(高麗蔘)’ 등의 은화를 확인해 진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복사를 할 경우 ‘COPY’라는 문자가 인쇄된다. [사진 한국조폐공사]

조폐공사가 만든 정관장 정품 인증 포장지. 화폐를 만들 때 쓰는 위ㆍ변조 방지 기술이 적용됐다. 포장지에 숨겨진 ‘KOREAN RED GINSENG’, ‘정관장(正官庄)’, ‘고려삼(高麗蔘)’ 등의 은화를 확인해 진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복사를 할 경우 ‘COPY’라는 문자가 인쇄된다. [사진 한국조폐공사]

# 손톱깎이로 유명한 기업 쓰리세븐. 현재 90여 개국에 제품을 수출하고 있지만 2003년 중국 진출을 위해 현지에 공장을 세웠을 때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진출 2년 만에 매출이 급감했다. 중국에서 만든 ‘짝퉁’ 제품 때문이다. 몇 년간 단속에 나서는 등 갖은 노력을 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20년 넘게 쌓은 브랜드 가치마저 위협받았다.

지폐, 동전 제조 첨단 기술 산업화해 #복제품 공격 받는 수출기업 골칫거리 덜어줘 #브랜드 가치 지키기 위해 위ㆍ변조방지 기술 활용 #인삼공사, 조폐공사와 ‘정관장’ 포장지 공급 계약 #복사방해패턴과 숨겨진 문양 넣어 정품 인증 #지폐와 동전 감소 따라 조폐공사도 사업영역 확장 #화장품, 손톱깎이, 필름업체 등 다양 #스마트폰으로 인증하는 벤처 기업도 등장

그런 와중에 2010년 6월 동전 제조에 쓰이는 위·변조 방지 기술을 사용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충청남도와 산업통상자원부의 공동출연기관인 충남테크노파크의 소개였다. 제품에 문양을 새겨 보는 각도에 따라 ‘777’이나 ‘태극 문양’이 보이는 이른바 ‘잠상 기술’을 도입했다. 2010년 12월 한국조폐공사와 계약을 맺고 생산에 나서자 매출은 곧 예년 수준으로 회복됐다. 이규형 쓰리세븐 IP(지적재산권) 본부장은 “구리(동전)에 쓴 기술을 강화 철판이 재료인 손톱깎이에 적용하는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며 “많은 업체가 문양을 베끼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똑같이 복제하는 곳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조폐공사가 만든 정관장 정품 인증 포장지. 화폐를 만들 때 쓰는 위ㆍ변조 방지 기술이 적용됐다. 포장지에 숨겨진 ‘KOREAN RED GINSENG’, ‘정관장(正官庄)’, ‘고려삼(高麗蔘)’ 등의 은화를 확인해 진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복사를 할 경우 ‘COPY’라는 문자가 인쇄된다. [사진 한국조폐공사]

조폐공사가 만든 정관장 정품 인증 포장지. 화폐를 만들 때 쓰는 위ㆍ변조 방지 기술이 적용됐다. 포장지에 숨겨진 ‘KOREAN RED GINSENG’, ‘정관장(正官庄)’, ‘고려삼(高麗蔘)’ 등의 은화를 확인해 진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복사를 할 경우 ‘COPY’라는 문자가 인쇄된다. [사진 한국조폐공사]

# 한국인삼공사의 ‘정관장(正官庄)’은 40여 개국에서 팔릴 정도로 유명한 만큼 유사품도 적지 않다. 특히 알루미늄 용기에 홍삼을 뿌리째 넣는 고가의 ‘뿌리삼’ 제품의 경우 비슷한 모양의 상품이 등장해 큰 피해를 봤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인삼공사는 매년 포장 용기와 포장지를 바꿨다. 제품 인증서에 들어가는 도장 문양도 매년 변경했다.

일반 소비자들은 비슷한 모양의 ‘짝퉁’ 제품과 구분하지 못했다. 인삼공사는 지난해 6월 조폐공사에 정품 인증용 특수 포장용지 생산을 의뢰해 최근 생산계약을 맺었다. 향후 정관장 제품에 들어가는 포장지는 지폐에 쓰이는 보안용지를 사용한다. 일반 지폐처럼 숨겨진 문양(은화)이 새겨진다.
김상헌 조폐공사 보안제품사업단 차장은 “소비자들은 포장지에 숨겨진 ‘KOREAN RED GINSENG’, ‘정관장(正官庄)’, ‘고려삼(高麗蔘)’ 등의 은화를 확인해 간편하게 정관장 진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짝퉁업체들이 이 포장지를 복사해 활용하려 할 경우 복사본에 ‘COPY’라는 문자가 인쇄된다”고 설명했다.
이택근 인삼공사 과장은 “기존에 자체적으로 벌인 정품 인증 방법은 회사 관계자만 알 수 있었다”며 “특수 포장지는 일반 소비자도 판독이 가능할 뿐 아니라 복제도 어려워 차단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상품을 만드는 유명 수출기업들에 큰 ‘골칫거리’가 있다. 바로 ‘짝퉁’ 제품이다.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 한국 제품인것처럼 판매하는 해외 기업이 적지 않다. 이런 경향은 특히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에서 많이 나타난다. 짝퉁 제품은 매출 하락 뿐 아니라 기존 제품의 신뢰도마저 하락시키는 악영향을 끼친다. 이를 방지하고자 기업들은 모조품이 흉내내지 못하도록 용기를 수시로 교체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발빠른 복제기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다.

고민 끝에 나온 해법이 지폐나 동전 제조에 쓰이는 위ㆍ변조 방지 기술을 제품 또는 포장지에 적용하자는 아이디어다.  위·변조 방지 기술은 한국이 세계적으로 앞선다. 중국의 짝퉁업자들이 따라올 수 없다.

세계 90여 개국에 수출하는 손톱깎이 제품 쓰리세븐에는 조폐공사가 개발한 잠상 이미지 기술이 적용됐다. [사진 한국 조폐공사]

세계 90여 개국에 수출하는 손톱깎이 제품 쓰리세븐에는 조폐공사가 개발한 잠상 이미지 기술이 적용됐다. [사진 한국 조폐공사]

조폐공사와 기업 간 협업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최근 지폐와 동전의 사용량은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이로 인해 돈을 생산하는 조폐공사의 전통적인 역할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조폐공사는 자신들이 가진 전통의 화폐 위·변조기술을 응용해 제품 정품인증 기술에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했다. 2014년 4276억원이던 연매출은 2015년 4595억원, 2016년 4643억원으로 3년 연속 최대 매출액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도 2014년 42억원, 2015년 47억원에 이어 2016년에는 59억원을 기록했다. 이건철 조폐공사 보안제품사업단장은 “화폐 제조 시장 규모가 줄어들어도 매출이 늘어난 건 보안기술 사업화로 신규 시장을 개척한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화장품 브랜드 ‘A.H.C’ 로 유명한 카버코리아도 올해부터 마스크팩, 아이크림, 토너 등에 조폐공사의 지폐 위ㆍ변조방지 기술인 ‘엠보싱 잠상’을 적용한 화장품 포장지를 쓰고 있다(큰 사진). 소비자가 포장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 촉감을 통해 정품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작은사진). [사진 카버코리아]

화장품 브랜드 ‘A.H.C’ 로 유명한 카버코리아도 올해부터 마스크팩, 아이크림, 토너 등에 조폐공사의 지폐 위ㆍ변조방지 기술인 ‘엠보싱 잠상’을 적용한 화장품 포장지를 쓰고 있다(큰 사진). 소비자가 포장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 촉감을 통해 정품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작은사진). [사진 카버코리아]

기업도 취약했던 자체 인증보안 기술보다 외부의 검증된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브랜드 가치를 손쉽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포장지를 통해 일반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분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화장품 브랜드 ‘A.H.C’ 로 유명한 카버코리아도 올해부터 마스크팩, 아이크림, 토너 등에 조폐공사의 지폐 위·변조방지 기술인 ‘엠보싱 잠상’을 적용한 화장품 포장지를 쓰고 있다. 소비자가 포장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 촉감을 통해 정품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손일화 카버코리아 커뮤니케이션팀 차장은 “2013년 중국 진출을 시도하기 전부터 모조품에 대한 우려가 커 다양한 정품인증 방식을 검토해 왔다”며 “지폐 제작으로 기술력이 검증된 조폐공사의 기술을 포장지에 적용하는 게 효과적일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카버코리아는 조폐공사의 보안 기술을 ‘A.H.C’ 브랜드 제품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화학업체인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KEP), 마이크로 금형 및 홀로그램 보안필름업체인 3SMK 등도 조폐공사의 위변조 방지기술을 도입해 정품인증에 나서고 있다.

화장품 브랜드 ‘A.H.C’ 로 유명한 카버코리아도 올해부터 마스크팩, 아이크림, 토너 등에 조폐공사의 지폐 위ㆍ변조방지 기술인 ‘엠보싱 잠상’을 적용한 화장품 포장지를 쓰고 있다(큰 사진). 소비자가 포장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 촉감을 통해 정품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작은사진). [사진 카버코리아]

화장품 브랜드 ‘A.H.C’ 로 유명한 카버코리아도 올해부터 마스크팩, 아이크림, 토너 등에 조폐공사의 지폐 위ㆍ변조방지 기술인 ‘엠보싱 잠상’을 적용한 화장품 포장지를 쓰고 있다(큰 사진). 소비자가 포장지를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 촉감을 통해 정품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작은사진). [사진 카버코리아]

정품 인증 시장엔 조폐공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벤처기업이나 중소·중견 기업도 자체 기술력을 바탕으로 독자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2014년 ‘히든태그’ 서비스를 시작한 인증업체 씨케이앤비는 스마트폰으로 정품 인증을 곧바로 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작권 보호기술 중 하나인 ‘핑거프린트’를 기반으로 했다.

핑거프린트란 동일한 이미지에도 전혀 다른 정보를 넣을 수 있는 기술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동일한 모양이라도 이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다른 정보가 나와 정품과 가짜를 소비자가 손쉽게 구분할 수 있다. 히든태그 서비스는 중국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의 4대 앱 마켓 중의 하나인 ‘360’에서 기본 위조방지 서비스로 등록돼 별도로 앱을 다운받지 않고도 히든태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360은 약 8억명의 인구가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커 제조업체 무궁화LNB는 정품 인증을 위한 스티커 라벨 기술을 적용해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보안 홀로그램 제작업체 선경홀로그램 역시 신분증 등에 들어가는 위조방지용 홀로그램 기술을 기업 정품인증 기술에 적용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김화동 조폐공사 사장은 “정품인증 보안기술은 화장품뿐만 아니라 의류, 약품, 식품, 자동차부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며 “민간 기업과의 동반성장 차원에서 위·변조방지 기술을 공유해 향후 시장을 지속적으로 키울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