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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 3색의 볼레로 향연

중앙일보

입력

'쓰리 볼레로' 중 김용걸 안무의 '볼레로'의 장면. 무용수 38명이 무대를 꽉 채운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볼레로' 중 김용걸 안무의 '볼레로'의 장면. 무용수 38명이 무대를 꽉 채운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파리오페라발레단 솔리스트 출신의 발레리노 김용걸(44ㆍ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 겸 김용걸 댄스씨어터 대표), TV 프로그램 ‘댄싱 9’으로 얼굴을 알린 인기 무용수 김설진(36ㆍ현대무용단 ‘무버’ 대표 겸 벨기에 피핑톰 무용단 단원), 엄정화 백댄서 출신으로 실험적인 현대무용가로 거듭난 현대무용수 김보람(34ㆍ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대표).
 오늘의 무용계를 대표하는 안무가 세 명이 한 무대에 선다. 국립현대무용단(예술감독 안성수)의 올해 첫 신규 창작공연  ‘쓰리 볼레로’에서다. 2~4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되는 ‘쓰리 볼레로’는 이미 전 회 전 객석 매진이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연말 취임한 안성수(55)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의 바람에서 비롯됐다. 볼레로만 11번 안무했다는 안 감독은 세 안무가에게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며 공연을 의뢰했다. 주제 볼레로, 공연시간 20분. 20분 동안 볼레로를 주제로 마음껏 무대를 꾸며보라는 제안이었다. 안 감독의 바람대로 세 안무가는 각자 개성을 살린 볼레로를 선보였다.

국립현대무용단의 '쓰리 볼레로' 공연 포스터.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의 '쓰리 볼레로' 공연 포스터.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프랑스의 근대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의 관현악곡인 ‘볼레로’는 두 개의 주제가 18번 반복된다. 단순한 리듬과 쉬운 멜로디 덕분에 가장 대중적인 클래식 작품 중 하나로 통한다. 20세기 발레의 혁명가로 불리는 모리스 베자르(1927∼2007)의 1961년 공연 이후 볼레로는 세계적인 안무가들이 즐겨 무대에 올리는 레퍼토리가 됐다.
1일 진행된 프레스 콜 행사에서 세 안무가는 각자 해석한 자신만의 볼레로를 펼쳐보였다. 세 안무가 모두 여러 차례 볼레로를 연기하거나 안무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이날 공연에서 세 안무가는 자기 색깔을 분명히 드러났다. 세 안무가 모두 무대에 올라 연기했다. 공연 순서를 따라 세 작품을 소개한다.

오늘 무용계를 대표하는 안무가 3명의 '쓰리 볼레로' #김용걸, 김설진, 김보람의 개성 드러난 3편의 볼레로 #국립현대무용단 올해 첫 창작작품, 예술의전당서 개막

'쓰리 볼레로' 중 김보람 안무의 '철저하게 처절하게' 공연 장면. 무용수들의 연기가 가장 돋보인 작품이었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볼레로' 중 김보람 안무의 '철저하게 처절하게' 공연 장면. 무용수들의 연기가 가장 돋보인 작품이었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철저하게 처절하게 - 김보람 안무
 흰색 정장 차림의 무용수 8명이 무대 양쪽에 4명씩 나뉘어 섰다. 무대 뒤편에는 연주자 10명이 앉았다. 무대 중앙 뒤편에는 역시 흰색 정장 차림의 김보람 안무가 서 있었다.
 처음에는 음악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무용수 각자 독창적인 동작을 하는가 싶더니, 음악이 서서히 커지고 볼레로 본연의 선율이 완성되면서 무용수 9명의 동작도 유기적으로 엮였다. 안무가 치밀했고 연기는 정확했다. 현대무용이 해석하고 표현한 또 하나의 볼레로라고 평가할 수 있었다. 이날 공연한 세 편의 볼레로 중에서 가장 대중적인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무용수들의 연기가 뛰어났다. 연습을 많이 한 티가 역력했다. 김보람 안무가 이끄는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소속 무용수 9명은 모두 자신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연기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주로 무대 오른편에서 연기한 이은경 무용수가 돋보였다. 알고 보니 김보람 안무의 아내였다. 공연이 끝난 뒤 김보람 안무는 “음악이기 전에 소리를, 무용이기 전에 몸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쓰리 볼레로' 중 김설진 안무의 '볼레로 만들기' 공연 장면. 세 볼레로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볼레로' 중 김설진 안무의 '볼레로 만들기' 공연 장면. 세 볼레로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볼레로 만들기 - 김설진 안무
 세 작품 중에서 가장 실험적인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낳은 음악을 버린 발상 자체가 놀라웠다. 이 작품에는 연주자가 없었다. 김설진 안무는 일상의 소리, 정확히 말해 일상에서 발생하는 소음에서 볼레로의 선율을 찾아 재생했다. 걸음 소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 따위를 엮고 편집해 볼레로로 표현했다. 음악 편집을 맡은 ‘리브투더’ 팀의 노력이 도드라졌다. 무용수 김설진은 대중적일지 몰라도 안무가 김설진은 매우 실험적이었다.
 회색 정장을 입은 남자 무용수 6명이 연기를 했다. 무용수들의 연기는 아름답지 않았다. 춤이라기보다는 몸짓이었다. 무용수들은 각자 독립된 연기를 하면서도 다른 무용수들의 연기와 교묘하게 얽히고 엮였다. 무용수들의 몸짓은 무미건조한 일상이었고, 파편화한 그러나 절대로 개별적이지 못한 우리의 삶이었다.
 김설진 안무는 “오늘 일과를 내일 또 되풀이해야 하는 것처럼 음악을 하나하나 쌓다가 마지막에 무너뜨리는 볼레로가 우리 사회를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쓰리 볼레로' 중 김용걸 안무의 '볼레로' 공연 장면. 김용걸 안무는 세계적인 발레리노다운 연기를 펼쳐보였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볼레로' 중 김용걸 안무의 '볼레로' 공연 장면. 김용걸 안무는 세계적인 발레리노다운 연기를 펼쳐보였다. [사진 국립현대무용단]

 볼레로 - 김용걸 안무
 작품 제목처럼 가장 익숙한 볼레로였다. 작품 구조와 연출 의도 모두 발레 춤곡 볼레로를 가장 모범적으로 해석했다고 할 수 있었다. 점점 커지고 완성되는 볼레로의 선율처럼 무용수들의 연기도 점차 집중되고 통일됐다. 중간 중간 파격적인 동작을 보이기도 했지만 발레 동작의 기본을 충실히 따랐다.
 발레리노 김용걸과 발레를 전공하는 그의 무용원 제자 37명이 무대를 꽉 채웠다. 검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 차림이었다. 무대 뒤편에는 수원시립교향악단 85명의 오케스트라가 자리를 잡았다. 공연 규모가 다른 작품을 압도했다.
 공연 도입부가 인상적이었다. 막을 50㎝ 정도만 올려 발과 다리의 연기만 보여주더니,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에 숨은 무용수들은 손과 팔로만 연기했다. 이후 손과 발, 팔과 다리는 무대에서 거대한 군무로 합체했다. 기발하고 신선한 시도였다.
 무대 중앙에서 연기한 김용걸은 세계적인 발레리노다웠다. 한 명의 무용수가 나머지 무용수 37명을 제압하는 듯했다. 김용걸 안무는 “지난해 무용원 제자들과 공연했던 작품을 다시 다듬었다”고 소개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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