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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의 계절,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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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서승욱 기자 중앙일보 정치국제외교안보디렉터
서승욱정치부 부데스크

서승욱정치부 부데스크

얼마 전 만난 지인이 자신의 친구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인의 친구는 박근혜 청와대에 파견된 뒤 아직 부처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는 소위 ‘끼공(끼인 공무원)’이다.

문재인 청와대에 출근하는 하루하루가 가시방석이다. 전 정권에서 잘나간 걸 빼곤 별로 잘못한 일도 없는데 본능적으로 눈칫밥을 먹어야 한다. 한때는 부러움 속에 청와대에 입성한 엘리트였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최근 이 친구의 스마트폰에 작은 스티커가 붙었다고 한다. 청와대 측이 스마트폰 렌즈에 작은 스티커를 붙여 사진 촬영을 못하도록, 만약 촬영을 하려면 그 스티커를 뜯도록 ‘조치’했다는 것이다. 기밀사항을 다루는 몇몇 요주의 인물들에게만 내려진 조치인지, ‘끼공’들만 겨냥한 것인지, 청와대 직원 모두에게 내려진 조치인지는 불확실하지만 관가에선 “보안도 좋지만 너무한 것 아니냐”는 불만도 터져나온다고 지인은 전했다. “서슬 퍼런 정권 초기라 대놓고 욕을 할 수는 없고, 화장실 구석에서나 서로 수군수군대겠지만…”이라면서다. 만약 ‘이명박근혜 청와대’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야당들은 뭐라고 했을까. “보안의식이 투철하다”고 두둔했을까, 아니면 그들이 해왔던 관성대로 깨물고 헐뜯었을까.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줄임말이다. 정권 초기, 바야흐로 본격적인 내로남불의 계절이 도래했다. 남의 잘못은 크게, 자신의 허물은 작게 느껴지는 건 인간 본성에 속하는 문제다. 하지만 정치권의 내로남불은 더 지독하다. 강도가 세고 부끄러움을 모른다. 민심과 국론을 갈갈이 찢는다는 점에서 부작용도 심각하다.

얼마전 라디오에 출연한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도 내로남불을 거론했다. 집권 초 인사 난맥에 대한 청와대의 대응방식을 그는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사실 이명박근혜 정부 9년간 얼마나 혹독한 인사검증의 잣대를 들이댔던 민주당이었나. 하지만 제 식구들의 연이은 의혹에 대통령 비서실장은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 얽힌 사연이 다 다르다” “사실의 심각성·의도성·반복성·시점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지난 2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병역면탈·부동산투기·세금탈루·위장전입·논문표절 중) 적어도 두 개 정도 비리를 갖고 있어야 장관이 됐다”고 비꼬았던 문 대통령은 3개월여 만에 “(공직배제 5대 원칙의) 실제 적용엔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고 다른 말을 했다.

안 그래도 그동안 진보진영을 향해선 “자신들이 추구하는 바가 ‘절대 선(善)’이기에 과정상의 일부 하자는 괜찮다는 선민의식이 문제”란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80%를 넘는 지지율에 의지해 뭐든 내로남불로 떼우려 한다면 결국 부메랑으로, 정권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과할 것은 깨끗하게 사과하고, 잘라낼 건 잘라내는 진짜 정공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승욱 정치부 부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