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코스피 잔치’에 개인도 춤추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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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숙경제부 기자

조현숙경제부 기자

증권사 최고경영자인 A사장은 최근 전 영업점 직원을 대상으로 기업 분석 보고서를 쓰라는 주문을 했다. 본점 리서치센터 소속 전문 애널리스트가 쓰는 것과 똑같은 양식의 종목 분석 보고서 말이다. 공개 목적은 아니다. 스스로 만들고 영업점 내에서 돌려보라는 취지다. 투자자를 만나 영업하기 바쁜 직원에게 버거운 가욋일을 지시한 이유가 있었다. A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영업점 투자 종목을 일괄적으로 제출하라고 지시했다가 목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기업 이름이 수두룩하게 나오는 게 아닌가. 물론 고객이 사라고 요구한 주식도 있겠지만 직원이 그 기업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추천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해당 기업의 과거와 현재 실적은 어떻고 장래성이 어떨지 제대로 분석하고 추천하란 뜻에서 그렇게 주문했다.”

코스피가 지난 26일 2355.30로 올라섰다. 지금의 코스피 출발점인 1980년 1월은 물론 종합주가지수(현 코스피)가 탄생한 72년 1월로 거슬러가도 찾아볼 수 없는 대기록이다. 그러나 주식시장 주변을 둘러싼 분위기는 그리 뜨겁지 않다. ‘외국인 잔치’라서다.

한국 증시고 한국 기업 주식인데도 국내 개인 투자자는 철저히 소외돼 있다. A사장이 놀란 이유와 같다. 개인 투자자는 중·소형주 위주로 주식을 쓸어담았다. 반면 코스피를 끌어올린 종목은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초대형주다. 외국인 투자자의 자금이 집중된 종목이다. 코스피 최고 기록 행진을 두고 일부에서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한국 증시엔 오랜 별명이 있다. ‘ATM 코리아’다. 국내 금융사와 언론이 자조적으로 붙인 별명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 위기가 터졌을 때마다 외국인 투자자는 다른 선진국이나 신흥국보다 한국 증시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가장 빨리 빼냈다. 쉽게 돈을 넣고 빼는 현금자동인출기(ATM)처럼 국내 증시를 활용했다는 의미다. 그때마다 개인 투자자가 물량을 받아내는 버팀목 역할을 해주며 주식시장 붕괴를 막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가 대표적이었다.

이제 개인도 지쳐가고 있다. 한국은행이 개인을 상대로 “금융자산 투자시 선호하는 운용 방법”을 물었더니 지난해 4.0%만 주식을 꼽았다. 2015년 4.7%에서 0.7%포인트 줄었다. 무엇보다 가계소득이 예전만큼 여유가 없다. 고령화도 문제다. A사장이 영업점 직원에게 쓰라고 한 기업 분석 보고서는 ‘반성문’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반성문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개인의 실패는 결국 시장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조현숙 경제부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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