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약품 미공개 정보, 2차 수령자도 과징금 폭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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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한미약품 계약 해지가 곧 뜬다. 내부에서 나온 확실한 정보다.”

“계약 해지” 전달받은 14명에 24억 #공시 후 주가 폭락 손실 빠져나가 #SNS 정보 이용 투자자는 처벌 빠져 #사상 최대 공매도 물량 의혹 못 밝혀

지난해 9월 이런 내용을 전화·메신저·구두로 전달 받고 한미약품 주식을 팔아치워 손실을 회피한 투자자 14명에 총 24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2015년 7월 ‘시장질서 교란행위 금지’가 명문화된 이후 대규모 과징금이 부과된 첫 사례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24일 이러한 내용의 과징금 부과조치를 의결했다. 단, 손실 회피 금액이 몇백만원 수준인 11명에 대해선 과징금 부과 없이 경고조치만 했다. 유재훈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장은 “간접적으로 전달 받은 2차 이상 정보수령자라 하더라도 그것이 미공개 내부 정보임을 확실히 알면서 주식매매를 했다면 처벌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한미약품에 안 좋은 게 있다더라’는 식의 막연한 풍문만 가지고 주식을 사거나 판 게 아니라 내부 정보라는 확신을 가진 경우만 처벌했다는 뜻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정보 유출의 시작은 한미약품 법무팀에서 계약업무를 하던 직원 A씨(구속 기소)였다. 그는 지난해 9월 28일 사내 메신저를 통해 한미사이언스 인사팀 직원 B씨(구속 기소)에게 “BI(베링거인겔하임) 계약 해지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B씨는 지인에게는 전화로, 같은 회사 동료와 자신의 부인, 친동생에게 구두로 이 내용을 흘려줬다. 정보를 들은 지인은 고교 동창에게, 동창은 전업투자자인 고교 후배에게, 후배는 같은 사무실을 쓰는 또다른 전업투자자에게 이를 차례로 전달했다.

한미약품이 베링거인겔하임과의 계약해지 사실을 공시한 건 9월 30일 오전 9시 29분. 공시 직후부터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그날 하루에만 18.06% 하락했다. 하지만 미리 정보를 알고 있던 이들은 30일 장 시작 전 동시호가로 보유한 주식을 모두 팔아치운 뒤였다. 이후 한미약품 주가는 5거래일 연속 하락해 62만원(9월 29일 종가)에서 42만3000원(10월 7일)으로 주저 앉았다.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팔아치운 이들은 30% 넘는 손실을 피하게 된 셈이다. 금융위는 2차 이상 정보 수령자 14명이 이렇게 회피한 손실금액이 20억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자본시장법 상 시장질서 교란행위는 부당이득 금액의 1.5배까지 과징금을 부과한다.

이번에 처벌 받은 14명은 대부분이 미공개 내부 정보임을 알고 주식 거래를 한 건 맞다고 시인했다. 다만 대부분이 그게 위법한 행위인지 모르고 했다고 해명했다.

대신 카카오톡 단체카톡방이나 네이버 밴드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광범위하게 퍼진 정보를 이용한 투자자는 이번 처벌대상에서 빠졌다. 유재훈 단장은 “시장질서 교란행위 처벌에 대해 일부의 불안감이 있는데, 정확한 내부 정보라는 확증 없이 누군가의 막연한 이야기를 듣고 주식매매를 했다고 해서 모두 처벌 대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검찰과 금융위 자본시장조사단 모두 한미약품의 미공개 정보가 기관투자자에 흘러가 공매도로 이어졌을 거라는 의혹은 밝혀내지 못했다. 악재성 공시가 나온 지난해 9월 30일 한미약품 공매도 물량은 10만4327주로 2010년 7월 상장 이래 최대치였다. 이중 절반 가량이 계약 해지 공시가 나오기 전에 이뤄졌다. 한미약품의 늑장 공시가 공매도 세력과 연관됐을 거란 의혹이 이어졌다. 실제 검찰과 금융위도 일부 증권사 직원에 대해서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공매도를 했을 거란 심증을 가지고 조사를 했다. 하지만 결국 물증을 잡아내지 못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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