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탈락 뒤 쓰러진 수사관…법원, "공무상 질병 아냐"

중앙일보

입력

승진 탈락 소식을 들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뇌출혈로 쓰러진 검찰 수사관에 대해 법원이 공무상 재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업무가 과중했다고 볼 수 없고 평소 고혈압 등 지병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가족, "승진·업무 스트레스가 원인" #연금공단, "병력·체질·흡연 원인" #재판부, "업무 과중했다 보기 어려워"

한 지방검찰청에서 집행과장으로 근무하던 A 씨는 지난해 7월 21일 승진 인사에서 탈락했다. 벌금이나 추징금을 납부하는 업무를 맡았던 A 씨는 평소 자신이 맡은 지역에 고액 미납자가 많아 인사 평가에 대한 부담이 컸던 상황이었다.

이튿날 A 씨는 기관장 오찬에 참석하기 위해 청사 현관으로 가다가 몸에 불편함이 느껴져 사무실로 돌아왔다. 이후 정오가 지나고 A 씨는 사무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고, 병원에서 뇌출혈을 진단받았다.

A 씨의 가족은 “지난해 6월 이후 업무를 담당할 인원은 부족한 상황에서 실적을 늘려야 하는 등 업무 강도가 크게 늘었다”며 “쓰러지기 1주일 전엔 대검 사무감사를 받아야 하는 등 스트레스가 누적된 상황에서 승진 탈락 소식을 듣고 뇌출혈이 발생한 것”이라며 공무상 요양승인을 신청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과거 고혈압과 체질적인 이유, 흡연 전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뇌출혈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거절했다. 가족들은 결국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공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0단독 임수연 판사는 “A 씨는 직접 시간과 노력을 들여 업무를 수행하는 실무자가 아닌 업무를 보고받고 지시하는 관리자”라며 “부임한 지 2년이 돼가는 시점이었기 때문에 관련 업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중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A 씨의 컴퓨터 로그(접속) 기록 상 규칙적으로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해왔던 점도 고려됐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승진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던 것은 이해지만 어느 조직이든 일부 구성원만 승진이 되는 구조에서 승진탈락으로 인한 충격은 개인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뇌출혈은 기존 질환인 고혈압 등 사적인 영역이 주요 원인이 됐다고 봐야한다. 이런 것까지 업무가 원인이 된 것으로 인정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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