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을 춤추게 하라, 그러면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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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호 30면

미국 기업 그래비티페이먼츠는 CEO가 직원의 행복을 챙겨주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2013년 CEO 댄 프라이스가 전 직원의 최저 연봉을 7만불 이상으로 올리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고 실제로 실천했다. 사진은 연봉 상승 이후 직원들이 감사의 뜻에서 선물한 테슬라 자동차를 받은 뒤 감격하는 프라이스. [사진 그래비티페이먼츠 공식 유튜브 캡처]

미국 기업 그래비티페이먼츠는 CEO가 직원의 행복을 챙겨주는 기업으로 유명하다. 2013년 CEO 댄 프라이스가 전 직원의 최저 연봉을 7만불 이상으로 올리는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고 실제로 실천했다. 사진은 연봉 상승 이후 직원들이 감사의 뜻에서 선물한 테슬라 자동차를 받은 뒤 감격하는 프라이스. [사진 그래비티페이먼츠 공식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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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호세이대학 사카모토 코우지 교수가 회장으로 있는 ‘사람을 소중히하는 경영학회’에서는 지난 40년간 7000여 개 중소기업을 연구한 결과를 담은 책을 내고 있다. 2008년 이후 70만 권이 팔린 이 시리즈를 통해 사카모토 교수 연구팀은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흑자를 내고, 매출액 대비 이익률이 5% 이상을 유지하는 기업을 분석했다. 그 결과 불황에 관계없이 꾸준한 이익과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중소기업은 직원을 끝까지 소중히 여기고, 행복하다고 느끼도록 해 준다는 특징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사람중심 경영’을 하는 기업들이다.

일본서 7000개 중소기업 분석 결과 #종업원의 행복 중시한 곳이 성공 #주주·고객 중심의 기존 경영 한계 #사업 중심서 사람 중심 기업으로

일본 국세청의 2012년 보고서에 따르면, 386만 개의 일본 기업 가운데 70%이상이 이익을 내는 데 실패했다. 적자를 내는 기업들은 거의 대부분이 기업 내부 문제가 아니라 외부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불경기, 정부 정책, 업종 자체의 불황을 이유로 들거나 교외에 큰 쇼핑센터가 생긴 탓이라는 식으로 변명하고 있다.

과연 외부상황만이 문제일까? 업무 성과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하거나, 거래처·협력업체 직원의 봉급을 낮추는 기업들은 예외없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내고 있었다. 사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 성과를 중시하는 ‘사업중심 경영’의 한계인 것이다.

이제까지 경영학의 정설은 주주가 가장 중요하거나 고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사원과 협력업체 직원은 이들을 위한 도구,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또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용과 책임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회사가 사회적 책임의 차원에서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연구 결과는 ‘주주·고객’이 아니라 ‘직원과 협력업체’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업의 리더가 가장 중시해야 하는 사람은 사원과 그 사원을 열심히 지지하고 있는 가족들이다. 직원은 도구나 수단이 아니라 가장 소중한 동반자라는 철학을 가져야 한다.

이런 사람중심 기업들은 품질과 납품기한에는 엄격하지만, 거래처와는 따듯한 정이 있는 관계를 유지한다. 반면 사업중심 기업들은 고객에게 가치있는 제품의 개발과 공급만을 강조한다. 이들은 사업 성과를 높이기 위해 경쟁회사와의 경쟁에 이기는 데 모든 힘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고려없이는 일시적으로 사업 성과가 개선될 수 있지만 지속가능하지는 않다.

오히려 사람중심 기업들은 종업원들의 몰입과 헌신을 통해 사업중심 기업들이 추구하는 혁신과 성과를 일궈낸다.

이런 사례는 국내에서도 드물지 않다. 산업용 컴퓨터 전문업체로 1991년 설립된 여의시스템은 2001년 격심한 노사갈등을 겪었다. 노동조합의 파업으로 매출은 50% 이상 감소했고, 임원들은 30%의 정리해고를 검토했다. 하지만 성명기 회장은 고심 끝에 미래성과공유를 제안했다. 지금은 어렵지만 앞으로 성과가 나면 25%는 종업원에게, 25%는 주주에게, 50%는 기업의 미래를 위해 투자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여의시스템에는 변화가 일어났다.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가 높아지고 회사 일이 아닌 내 일이라는 공감대가 마련되면서 고객들에게 개별적으로 대응하는 소량다품종·고객맞춤형 비즈니스 모델이 정착됐다. 기업문화의 변화는 경영 성과로 이어져 2004년 이후 매출은 연 평균 20%, 이익은 60%씩 늘어났다. 성과공유제를 매개로 직원과 기업은 헌신과 혁신의 선순환 모델을 만든 것이다.

‘종업원을 춤추게 하라. 그러면 회사가 춤출수 있다’는 말이 있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말도 있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전통적인 경영 전략보다 경영의 목적과 사명을 중시한다. 피터 드러커가 경영의 핵심으로 ‘기업 존재의 이유’, 즉 미션을 꼽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좋은 회사는 하려는 사업보다 그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을 먼저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지속적으로 업무 성과가 낮고, 만년적자에 빠진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은 너무 사업중심 사고에 빠져 있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고객이나 주주 중시 경영보다 직원과 거래처 직원 중시 경영이 필요하다. 한국에는 345만여  개의 중소기업이 있다. 이들은 지난 10년간 새로운 고용의 95%를 담당했다. 이 기업들의 직원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한국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공 일자리 창출, 최저임금 인상, 재정지출 증가 등을 통해 성장을 이루겠다는 ‘제이(J)노믹스’를 내세웠다. 과거 정부와는 달리 작은 정부가 아니라 큰 정부, 낙수 효과 대신 소득 주도 성장을 추구한다. J노믹스는 곧 사람중심 경제다.

이참에 기업 부문에서도 사람중심 경영이 확대됐으면 좋겠다. 사람중심 기업이 많아지면 중소기업 종업원들은 더 행복해질 것이고, 이들은 기업을 위해 더 헌실할 것이다. 그러면 종업원의 헌신과 기업의 성과가 선순환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약속했던 성과공유제를 핵심정책으로 실현하기를 기대해 본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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