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재협상 맡을 USTR 대표에 강경파 확정…한국측 대표는 오리무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재협상 의지를 밝히고있는 가운데 ‘강경파’ 보호무역주의자인 로버트 라이시저(69)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로서 본격 업무를 개시했다. 반면에 한국 측은 담당부처가 정해지지 않아 전열을 정비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나쁜 협상이지만, 힐러리 클린턴에 의해 만들어진 한ㆍ미 FTA는 ‘끔찍한’(horrible) 협상”이라며 “한국정부에 재협상(Renegotiation)방침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에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끔찍한’이란 표현을 쓰며 “한ㆍ미 FTA를 재협상하거나 종료하길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펜스 부통령이 지난달 방한해 주한미국상공회의소 연설에서 “한ㆍ미 FTA 개선이라는 목표를 향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이런 가운데 한ㆍ미FTA 재협상을 주도할 USTR 대표에 라이시저가 임명됨에 따라 한국입장에서는 험난한 협상이 예고되고 있다. 라이시저 대표는 미국이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를 발동했던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USTR 부대표를 지냈고 20여 개의 양자 무역협정 체결에 참여한 통상 전문가이다. 이후에도 미국 철강 기업 등을 위한 통상전문 변호사로 활동해와 통상 현안을 꿰뚫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초 USTR 대표에 지명되자 “미국인 노동자를 위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라는 트럼프 당선인의 임무에 헌신해 모든 미국인에게 혜택을 주는 더 좋은 무역협정을 만들 것”이라고 공언한 바 있다.

 로버트 라이시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뉴시스]

로버트 라이시저미국 무역대표부 대표[뉴시스]

라이시저는 이날 실시된 상원의 인준 투표에서 찬성 82표, 반대 14표를 얻는 등 초당적인 지지를 받으며 최종관문을 통과했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 전력을 다해달라는 지지를 받은 셈이어서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선도할 전망이다.

우선 라이시저 대표는 한ㆍ미FTA에 앞서 NAFTA의 전면 개정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한ㆍ미FTA와 동시에 재협상을 진행하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트럼프 정부는 NAFTA의 재협상을 선언한 뒤 90일간의 의회 회람기간을 거치면, 정식으로 재협상 절차를 시작할 수 있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NAFTA가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개정되지 않으면 폐기할 수도 있다면서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NAFTA 재협상에서 몸을 푼 뒤 여세를 몰아 한ㆍ미FTA 재협상을 강하게 밀어붙일 전망이다. 라이시저에게 본 경기는 가장 큰 무역적자를 안기고 있는 중국이기 때문에 한·미FTA 재협상에서 강경한 이미지를 구축하려 들 것으로 예상된다. 블름버그 통신은 라이시저 대표가 상원 인준 과정에서 “중국이 미국 무역 분야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중국과 본격적인 무역분쟁 가능성을 예고했다.

한편 한ㆍ미FTA 재협상 테이블에서 라이시저 대표의 맞은 편에 안게될 한국 측 대표는 안개속에 가려져 있다. 새정부 출범 이후 통상업무를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외교부로 이관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등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통상 책임자도 떠오르지 않고 있다. 한시 빨리 조직 정비를 마치고 김현종·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 같은 치밀한 협상가를 내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