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 0.1㎜ 선에 혼을 담는 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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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호를 ‘외길’이라 쓴다고 했다.

하물며 스스로 고등학교 때 지었다고 했다.

그때부터 한 길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품었다는 의미였다.

한 길에 일생을 매진한 사람들과 숱하게 인터뷰를 했었다.

하나 이렇게 지독한 ‘한 길 인생’은 드물었다.

전통 사경 기능전승자인 외길 김경호 선생이 그러했다.

그를 만난 건 2015년 5월이었다.

고백하자면 그를 만나기 전에 사경이 뭔지 제대로 몰랐다.

불경을 옮겨 적는 것으로만 알 따름이었다.

잘 모르는 분야이기에 귀를 곧추세우고 인터뷰를 들어야 할 형편이었다.

그가 작품을 하나 완성하는데 보통 5~6개월, 길게는 9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책상 유리 밑에 깔린 작품을 다시 봤다.

처음 자리에 앉을 때 언뜻 보고 지나쳤던 것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그리기에 최소 5~6개월이 걸릴까 싶었다.

“1㎜ 안에 5~10개의 미세한 선을 긋기도 합니다. 어떨 땐 1㎜ 크기의 부처 얼굴에

눈·코·입을 그릴 때도 있습니다. 붓끝 한두 개의 털로 그려야 0.1㎜의 선이 나오죠.”

그의 말에 놀라 또다시 책상 유리 밑의 작품을 봤다.

언뜻 볼 땐 몰랐던 것들이 그때야 보이기 시작했다.

열을 지어선 7층의 탑들, 섬세한 상륜부, 탑신마다 들어선 글씨,

그 미세한 선들이 눈에 보였다.

경외심이 절로 드는 선이었다.

적어도 한 작품에 5~6개월이 걸리는 이유가 보였다.

“아교가 굳지 않으려면 실내 온도가 35도를 넘어야 합니다.

습도도 90%는 되어야 합니다. 조금만 붓을 잡고 있어도 땀이 흐릅니다.

눈만 한 번 깜빡여도 선이 삐뚤어지고 숨만 한 번 크게 쉬어도 선이 흔들립니다.”

혼신을 다해 이를 악물고 작업하다 보니 어금니가 빠지기도 했다고 했다.

숨 한번 제대로 못 쉬며 이 악물고 집중해야 하는 일, 사람이 할 일인가 싶었다.

“이렇게 하루에 8시간 정도 작업합니다. 작업할 때는 외출도 삼가고

밥도 집 밖에서 먹지 않습니다. 배가 부르면 청정심을 잃게 됩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의 얼굴과 책상 유리 밑의 작품을 번갈아 보게 되었다.

마치 수도승 같은 얼굴이 비쳤다.

그 얼굴과 작품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으리라 작정했다.

유리 밑의 작품을 꺼내 그의 오른 편에 세웠다.

가운데에 유리를 놓아 작품이 그의 얼굴에 비치게 했다.

그때 그가 말했다.

“원본을 꺼내 드릴까요?”

“인쇄본이라도 충분합니다.”

놀라서 얼른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게 어떤 작품인가.

숨 한 번 쉬는 것, 눈 한 번 깜박이는 것조차 조심하며 수개월 밤새워 만든 작품이 아닌가.

만에 하나 흠집이라도 나면 그 엄청난 수고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

그런데 그는 부처 같은 미소로 원본을 꺼내주려고 한 게다.

사실 부귀영화도 없을뿐더러 제대로 알아주기만 해도 다행인 게 사경이었다.

국보·보물만 200여 점에 이르는 사경이지만 전통이 끊겨

무형문화재 종목에도 들지 못하는 현실이다.

그런데도 그가 말했다.

“제 팔자요, 업(業)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우수한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을 뿐입니다.”

그의 호가 ‘외길’인 이유였다.

인터뷰 후 그가 원본 작품을 꺼내왔다.

‘감지금니 7층 보탑-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이라 했다.

흰 장갑을 낀 그가 가로 6m 63㎝, 세로 7.5㎝의 두루마리를 풀었다.

두루마리가 펼쳐진 순간 숨이 멎었다.

0.1mm의 선에 담긴 혼, 숫제 ‘외길 삶’의 수행이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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