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의약품만 쓰던 ‘아토피·탈모 완화’ 표현 화장품에 쓰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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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달 말부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화장품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기능성 화장품의 범위를 대폭 넓히면서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다. 기능성 화장품이란 일반 화장품에 비해 특정 기능이 강조된 화장품을 말한다. 지금까진 피부 미백·주름 개선·자외선 차단 등 3종만 가능했으나 앞으로 염모·탈색과 탈염·제모·탈모 완화·여드름성 피부 완화·아토피성 피부 보습·튼살 붉은 선 완화 등 7종이 추가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식약처의 인증을 받은 기능성 화장품에 한해 포장이나 광고에 ‘아토피성 피부를 위한’ ‘탈모 증상을 완화하는’ 같은 표현을 넣을 수 있다. 그동안은 의약품이 아니면 쓸 수 없었던 표현이다.

이달 말부터 인증 제품에 표기 허용 #정부 “기능성 제품 믿고 고를 수 있어” #의료계 “소비자 현혹, 치료시기 늦춰”

대한피부과학회·대한피부과의사회 등 6개 단체는 시행규칙 개정안의 부당성을 밝히기 위해 4일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신청했다. 그동안 개정 과정에서 피부과 전문의 등이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식약처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한피부과학회 최지호 회장은 “소비자들이 질병 이름을 표시한 화장품을 의약품으로 오인하면 치료 시기를 놓쳐 질병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고 더 많은 치료비를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아토피·여드름·탈모는 외모에 영향을 주는 만성적 질환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광고에 쉽게 현혹되고 화장품의 기능을 과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최 회장은 “의약품으로 잘못 인식할 우려가 있는 표시와 질병에 관한 표현을 화장품법에서 금지하고 있는데, 식약처가 모법을 어긴 시행규칙을 강행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의 권오상 화장품정책과장은 “다양한 기능성 제품을 원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는데 그간 기능을 증명할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면서 “화장품과 의약품을 혼동하는 부작용보다는 본인에게 적합한 화장품을 믿고 고를 수 있는 순기능이 더 클 것”이라고 반박했다.

보완책을 두고도 입장이 서로 엇갈린다. 식약처 권 과장은 “의약품으로 오인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질병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의약품이 아님’이라는 주의 문구를 추가로 기재하도록 하는 내용도 입법예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방순 피부과의사회장은 “이미 광고에 현혹된 소비자들이 조그맣게 기재된 주의 문구를 다 읽어보겠느냐”며 “원칙에 벗어난 시행규칙을 마련해 놓고 보완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사들이 질병 이름은 넣지 말고 ‘피부 보습에 도움이 되는’ 등의 표현으로 풀어 쓰자고 대안까지 제시했는데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식약처는 질병 이름을 명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제한할수록 ‘아기들이 잠을 푹 잘 수 있게 하는’ ‘피부 장벽 개선을 위한’ 등의 우회적인 표현이 등장해 오히려 혼란을 준다”며 “효과가 인정되는 제품에 한해서만 허용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화장품 업계는 일단 시행규칙 개정안을 반기는 분위기다. 화장품전문점협회 오홍근 부회장은 “식약처 인증을 받은 다양한 기능성 화장품이 나오면 보다 정확한 상담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매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소비자 단체들은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소비자문제연구소 백병성 소장은 “예방·치료의 기능은 없다는 안내를 받더라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매일 쓰는 화장품을 통해 증상을 고칠 수 있다는 기대를 할 수밖에 없다”며 “의사의 처방 없이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오·남용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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