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나온 경제학도가 식용 곤충 쿠키에 꽂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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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가 제일 고소해요. 누에는 풀향이 나 녹차와 잘 어울리죠. 곤충 중에서 식감이 제일 부드럽기도 하고요."

귀뚜라미·고소애·메뚜라기, 누에 등 식용 곤충으로 만든 다양한 스낵들. 가격은 2000~4000원.[사진 이더블버그]

귀뚜라미·고소애·메뚜라기, 누에 등 식용 곤충으로 만든 다양한 스낵들. 가격은 2000~4000원.[사진 이더블버그]

식용 곤충 식품 회사 이더블버그(Ediblebug) 류시두(33) 대표는 진지하게 식용 곤충의 맛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그걸 어떻게 먹냐'는 기자의 생각을 읽은 듯 "나도 처음엔 그랬다"며 웃었다. 2012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KAIST) 경영대학원에서 정보경영학을 공부하며 IT업계에서 일하던 류 대표는 우연히 식용 곤충에 관심을 갖게 됐다. 2013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단백질 대체 식품에 관심을 갖고 있는데 이중 하나가 식용곤충이라는 내용이었다. 류 대표도 처음엔 '학자들이 먹어보지도 않고 책상에서 만들어낸 얘기'로만 생각했다. 호기심에 미국의 한 회사에서 만든 식용곤충 에너지바를 주문해 먹어봤다. 그는 "'정말 맛있다'는 아니지만 나쁘지 않았다"며 "미식의 관점이 아니라 식량 자원으로서 접근하면 가능성이 충분해 보였다"고 했다.

이더블버그 류시두 대표. 류 대표는 2014년 식용 곤충 식품을 파는 이더블버그를 만들었다. [사진 이더블버그]

이더블버그 류시두 대표.류 대표는 2014년 식용 곤충 식품을 파는 이더블버그를 만들었다.[사진 이더블버그]

게다가 식용곤충이 환경·영양학적으로 훌륭하다는 과학적 근거를 뒷받침할 만한 연구 결과는 충분히 있었다. 식용 곤충은 고단백 저지방 자원으로 아미노산이나 무기염류, 비타민 함량이 높다. 100g당 단백질로만 따지더라도 메뚜기가 70g으로 소고기(21g)보다 3배 이상 높다. 또한 냉온 동물이라 체온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 적은 양의 사료와 물로도 충분히 자랄 수 있다. 류 대표는 "1㎏의 소고기를 얻기 위해 10kg의 사료가 필요하다면 곤충은 1㎏를 얻으려면 1.7㎏이 사료만으로 충분하니 식량의 관점으로 봤을 때 효율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고소애 분말 반죽에 고소애를 통째로 올려서 구운 쿠키 [사진 이더블버그]

고소애분말 반죽에 고소애를 통째로 올려서 구운 쿠키 [사진 이더블버그]

문제는 '곤충을 어떻게 먹나'는 심리적 장벽이었다. 2014년 봄부터 매주 주말 직접 만든 식용 곤충 쿠키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원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보내줬다. 신기하게도 특별하게 돈 들여 홍보를 하지 않아도 매주 주문하는 사람이 늘었다. 한 명당 1개씩이라는 조건을 붙이자 같은 주소에 이름만 바꿔 주문하기도 했다. 그렇게 2000개쯤 나눠주고 난 후 자신감이 생겼고 그해 9월 회사를 차렸다.
본격적으로 식용 곤충 쿠키를 만들기 위해 흑석동에 66㎡(20평) 규모의 공장을 연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를 원하는 사람을 위한 공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덕 위에 있어 접근이 어려워 아는 사람만 오는 게 늘 마음에 걸렸다. 결국 2016년 5월 양재천로에 '이더블커피'라는 카페를 열었다. 주문대 앞엔 식용곤충과 식용곤충으로 만든 쿠키가 진열돼 있다. 평범한 카페인 줄 알고 왔다 진열돼 있는 식용 곤충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단다.

귀뚜라미로 만든 쿠키 인기 #식용 곤충, '미식' 보다 미래 식량 자원으로 접근

귀뚜라미를 갈아 넣은 스프레드(빵에 바르는 잼류의 일종)를 듬뿍 바른 베이글. [사진 이더블버그]

귀뚜라미를 갈아 넣은 스프레드(빵에 바르는 잼류의 일종)를 듬뿍 바른 베이글. [사진 이더블버그]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고소애 셰이크다. 우유에 고소애를 넣고 함께 갈아 내는데 우유와 고소애의 고소한 맛이 만나 고소함을 배가시킨다. 주로 30~50대 여성들이 식사 대용으로 찾는다. 류 대표는 "여러 번 온 단골 고객에게 고소애 셰이크를 권하는데 반응이 좋다"며 "아무래도 우유라는 익숙한 맛에 고소애가 더해져 거부감이 덜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귀뚜라미·고소애와 각종 한약재를 넣은 한방차나 귀뚜라미를 갈아 만든 스프레드를 바른 베이글도 판다.

서울 양재동에 있는 이더블커피.카페 같지만 식용 곤충과 이를 이용해 만든 스낵, 음료를 판다. [사진 이더블버그]

서울 양재동에 있는 이더블커피.카페 같지만 식용 곤충과 이를 이용해 만든 스낵, 음료를 판다. [사진 이더블버그]

정부가 나서 식용곤충 재배를 권장하고 CJ·대상 같은 식품회사가 신사업으로 키운다. 마치 곧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지만 류 대표는 "갈 길이 멀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정부가 식용 곤충 농가 육성에 지원하면서 식용 곤충 농가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지만 당장 이를 이용한 요리를 파는 식당이나 찾는 고객이 없다"고 현실을 꼬집었다.
업계를 개척한 그가 운영하는 카페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하는 달이 많다. 류 대표는 대신 온라인 판매와 식용 곤충으로 만든 쿠키 등을 학교와 생태원, 나비박물관, 다른 카페에 납품하며 시장을 개척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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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식용 곤충을 경험할 수 있으면 만족해요. 식용 곤충을 처음 접하면 다들 징그러워하는데 여러번 노출될수록 심리적 장벽이 낮아지는 게 보여요. 요즘은 소화가 안되는 어르신이나 임산부가 단백질 대용 식품으로 종종 사가기도 하고요. 앞으로 시장은 점점 커질 거라고 믿어요."

송정 기자 song.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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