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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트럼프의 '사드 청구서' 소동 일단 봉합 수순으로

중앙일보

입력

한국에 충격을 던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사드 청구서’ 발언이 일단 봉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미국의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30일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 국민의 여망을 염두에 두고 일반적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라 설명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맥매스터 NSC보좌관이 김관진 실장에 전화걸어 기존 원칙 재확인 #트럼프는 인터뷰에서 다시 같은 주장 반복, 한미동맹 균열 우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전개 및 운영 유지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고 우리 정부는 부지ㆍ기반시설을 제공한다는 기존의 양국 합의 내용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날 35분 간의 통화에서 맥매스터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ㆍ미 동맹은 가장 강력한 혈맹이고, 아태지역에서 미국의 최우선 순위이며, 미국은 한국과 100% 함께 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달해왔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한국이 사드 비용을 내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국에 통보했다. 그것은 10억 달러(약 1조1400억원) 시스템”(로이터 인터뷰)이라는 폭탄 발언한 지 이틀 만이다.

백악관의 국가안보 책임자인 맥매스터가 직접 해명에 나선 건 한국 내 사드 반발 여론이 거세지고 있고, 자칫 한ㆍ미 동맹의 근간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한 한국 대선이 임박한 가운데 사드 이슈가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가 29일(현지시간) 밤 펜셀베이니아주에서의 ‘취임 100일 기념’ 연설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방위비 분담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한국의 방위비 분담 문제와 사드 관련 발언을 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사드 청구서’ 문제는 일단 진정 국면에 들어갔다는 것이 양국 외교 당국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발언에서 드러났듯 양국 간 기존 합의와 절차를 무시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추구가 앞으로도 한국민의 정서를 자극하고 한ㆍ미 동맹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 강하게 대두하고 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선동적이고 무지하다. 동맹국을 대할 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며 “이는 미끼 상술을 통한 배신이자 계약 후 조건을 뒤집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 소장은 “충분한 내부 정책조율 없는 즉흥적 발언은 한ㆍ미 동맹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이번처럼 경제와 안보 분야를 연동시켜 압박해올 가능성이 큰데 한ㆍ미 동맹의 가치가 과거보다 저하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선 아무리 외교, 국방 담당 부처 간 조율이 잘 이뤄져도 트럼프의 잦은 돌출발언이 이어진다면 향후 4년 동안 한ㆍ미 동맹의 균열은 불가피하다는 비관론까지 나온다.
실제 트럼프는 지난 28일 로이터 인터뷰 발언이 문제가 된 사실을 알면서도 다음날인 29일 워싱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거듭 “왜 우리가 사드 배치 비용을 내야 하느냐. (사드는) 전 세계에서 역대 최고이자 경이로운 방어시스템으로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말 실수’ 차원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정교한 외교 수사를 하지 않는 트럼프로선 일단 “왜 한반도용 사드에 우리가 10억 달러를 내야 하느냐”는 알기 쉬운 단순 화법으로 국내 지지자들의 호응을 끌어내고, 이르면 올해 말부터 시작될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도 기선을 잡으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분석이다.

맥매스터가 김관진 실장에게 이번 발언의 배경을 설명하며 사용한 ‘미국 국민의 여망’ ‘일반적 맥락’ ‘가장 강력한 혈맹’이란 ‘병주고 약주기’식 표현도 뒤집어 보면 트럼프 발언의 정당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28일 오후 미 국무부의 수전 손턴 동아태 차관보 대행의 외신기자 대상 브리핑도 ‘트럼프 살리기’와 ‘한국 반발 무마’ 사이를 교묘히 오갔다.
그는 먼저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에도 GDP(국내총생산)의 적정 비율(2%)을 방위비로 분담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이번 건(사드 청구서)도 같은 케이스(this is another case)라고 생각한다” 며 트럼프 발언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다른 국가에 비해 꽤 많이 (분담금을) 쓰고 있다는 걸 안다. 트럼프 대통령도 사드 배치 비용 분담 논의는 이미 다 끝났고, 한국이 그 배치에 기여를 했고, 한국이 굳건한 동맹이란 점을 인식하고(recognize) 있다”며 한국을 배려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트럼프가 사고를 치고, 이를 미 행정부가 적당히 중간 선에서 무마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게 한ㆍ미 양국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차세현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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