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의 달인들이 보여주는 공간의 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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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고수들이 테크 고수를 만나면?=컨벤션의 달인”

창의적인 휴식 공간 쾌적한 환경 #아낌없이 재원 조달, 부럽구나 #하지만 고령화되는 청중에 고민 #TED도 변신하기 위해 고민 중

첫 TED 취재이다 보니 예상과 완전 다른 것도 있고 기대 이상인 것도 많다. 이 중 역시 가장 놀란 것은 역시 행사장 활용, 공간의 활용이다. 디자인과 테크놀러지 고수들이 만나 좋은 결과를 낸 이상적인 답안 같다.

정글짐 모양의 휴식 공간. 올라가면 쇼파와 콘센트 쿠션이 배치 돼 있고 메모를 할 수 있는 노트와 연필이 수북히 쌓여 있다. 

정글짐 모양의 휴식 공간. 올라가면 쇼파와 콘센트 쿠션이 배치 돼 있고 메모를 할 수 있는 노트와 연필이 수북히 쌓여 있다.

TED의 주요 행사 이뤄지는 대극장이 유명한 건 알았다. 현장에 가보니 동관 서관으로 나뉜 4만3340㎡ 규모의 밴쿠버 컨벤션 센터를 기가막히게 쓰고 있었다. 곳곳에 설치한 휴식 공간이나, 부대 행사로 진행되는 워크숍 공간 안내하는 방법, 커피 스테이션, 간식 코너의 동선 구성은 참석자의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많은 고민 끝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커피 마시고 싶을 때쯤 바로 거기 바리스타가 있고, 목이 마르다 싶으면 근처에 음료수 냉장고가 보인다.

기업들이 후원하는 커피 바. [사진 TED]

기업들이 후원하는 커피 바. [사진 TED]

강연을 보면서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휴식 공간. 곳곳에 스크린을 설치해 강연 현장과 연결한다.  

강연을 보면서 다른 일도 할 수 있는 휴식 공간. 곳곳에 스크린을 설치해 강연 현장과 연결한다.

매년 가장 힘을 주는 곳은 휴식 공간이다. 올해 화제의 공간은 3층짜리 대형 그물침대를 나무로 짜 들여놓은 그물의 방이었다. 지난해 이 방은 공으로 가득 채워 신발을 벗고 들어가 공놀이를 하며 스크린을 볼 수 있었다. 단단한 종이로 정글짐을 세우고 쿠션을 배치한 정글짐 소파(원래 이름은 모르겠다)도 어른 안에 동심을 자극한다. 올라가 앉아 있다 보면 종이 봉 사이로  전기를 연결해 콘센트를 꽂아 작업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행사 참석자의 대부분이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제 몸처럼 끼고 다니는 걸 보면 이런 세심함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TED에 오래 참여한 이들은 “매년 컨셉은 같지만 식상하지 않도록 새로운 것을 설치한다”고 말했다.

20분간 숙면을 약속하는 숙면 기계. 이 역시 제조사가 설치한 공간이다. 

20분간 숙면을 약속하는 숙면 기계. 이 역시 제조사가 설치한 공간이다.

숨쉬기 공간 [사진 TED]

숨쉬기 공간 [사진 TED]

친절한 바리스타가 있는 커피 바, 내성적인 인간을 위한 자율 커피 스테이션, 유기농만 갖다 놓은 스낵 코너도 사람이 몰리지 않도록 나눠 배치돼 있다. (TED 행사 기간 중 제공되는 아침·점심·저녁·간식은 무료다). 마사지 공간, 20분간 깊은 잠을 잘 수 있도록 해준다는 최신 기기 체험 코너 등이 구비돼 있다. 휴식 공간엔 꼭 강연장과 연결된 TV가 있어 쉬면서 행사를 놓치지 않도록 했다.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쉴 공간도 마련돼 있다.

바다를 보면서 누워서 쉴 수 있는 침대 쇼파. 침대 위엔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바다를 보면서 누워서 쉴 수 있는 침대 쇼파. 침대 위엔 스크린이 설치돼 있다.

휴식 공간에 설치된 공간 중 하나. 이 안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내는 소음으로 음악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휴식 공간에 설치된 공간 중 하나. 이 안에서 여러 사람이 동시에 내는 소음으로 음악을 만드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게 다 어떻게 가능할까. 누군가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초간단 답이 돌아왔다. “돈”.

물론 그렇다. 역시 한 두 푼으로 감당되지 않을 씀씀이다. 고용된 청소 인력, 캐터링 서비스 인력, 경호 인력을 눈대중으로만 봐도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오랜 기간 TED와 함께 해 온 화려한 인사(올해도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가 참석했다)들이 많고 후원하겠다는 기업이 줄을 섰다고 하니, 예산은 걱정거리가 아닐까.

TED의 청중은 온라인 이미지만큼 젊지 않다. 50대 영미권 청중이 가장 많다. 사진은 부대 행사로 진행된 워크숍 중 하나. 뒷줄 오른쪽 두번째 남성은 유명 기업인리처드 브랜슨. [사진 TED] 

TED의 청중은 온라인 이미지만큼 젊지 않다. 50대 영미권 청중이 가장 많다. 사진은 부대 행사로 진행된 워크숍 중 하나. 뒷줄 오른쪽 두번째 남성은 유명 기업인리처드 브랜슨. [사진 TED]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 TED도 ‘드디어' 돈 걱정을 시작했다고 한다. TED의 올해 일반 입장권(붉은색으로 표시된다)은 800만원이 넘는다. 아직은 매년 거의 오픈과 동시에 매진된다. 내년엔 일반 입장권은 1000만원으로 오를 예정이다. 이 돈을 내고 참석할 수 있는 계층은 미국과 유럽의 상류층, 베조스와 같은 후원자들(보라색으로 구분된다)이다. 사실 강연과 별도로 진행되는 부대 행사(토론이나 워크숍)에 들어가 보면 약간 당황스럽다. 30대 정도의 젊고 다양한 인종일 것 같은 온라인상의 TED 이미지와는 달리 10명 중 9명은 영미권 출신의 40~50대 백인들이다. TED도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TED측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젊은 손님을 모시기 위해 여러 자매 행사를 만들고 영미권 중심에서 벗어나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유다. 이 때문에 올해는 처음으로 스페인어권 청중을 겨냥한 ‘TED 엔 에스파뇰’을 대극장에서 진행했다. 인도 시장을 잡기 위해 ‘TED 힌디’도 곧 열린다. 수입 다변화, 젊은이들을 모으기 위해선 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으면 소멸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TED가 쌓아온 노하우는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 강연과 강연 사이 적절한 순간, 그리 민망하지 않게 후원기업 리스트를 띄우고 세련되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을 보면 역시 한 두번으로는 얻을 수 없는 스킬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TED 등장을 농담 소재로 삼은 ‘더 레이트 나이트 쇼’ 영상을 틀어주며 킬킬 댈 수 있고, “우리 후원자는 아니지만 이 영상은 함께 보고 싶다”며 타조가 주인공인 삼성 전자의 기어 VR 광고를 보여줄 여유도 있다 (이 광고를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웃을 줄이야!) TED가 어떻게 명성을 이어갈지도 주목해야 할 포인트인 것 같다.

<삼성전자 기어VR 광고>

다시 공간 얘기로 돌아와, ‘곰손’으로 마구 찍은 스마트폰 사진이지만(일부는 TED 제공. 크레딧 표시해 두었다),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느껴보시길.  밴쿠버=전영선 기자 azul@joongang.co.kr

간식 코너. 케일 칩, 과일 말림, 견과류 미역 말림과 같은 건강 식품이 많다. 하지만 올해 지나치게 건강을 생각한 스낵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다. 코미디언이자 올해 TED 연사였던 줄리아 스위니는 "지난해 구글에서 나눠 준 기념품을 부셔 간식을 만들어 주신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해 청중을 웃겼다. (난 괜찮았다) 

간식 코너. 케일 칩, 과일 말림, 견과류 미역 말림과 같은 건강 식품이 많다. 하지만 올해 지나치게 건강을 생각한 스낵에 대한 불만을 표하는 사람이 많았다. 코미디언이자 올해 TED 연사였던 줄리아 스위니는 "지난해 구글에서 나눠 준 기념품을 부셔 간식을 만들어 주신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해 청중을 웃겼다. (난 괜찮았다)

이건 웃겨서. 여자 화장실에 실핀과 머리 고무줄까지 비치할 줄이야. 

이건 웃겨서. 여자 화장실에 실핀과 머리 고무줄까지 비치할 줄이야.

 ◇TED=1984년 미국 캘리포니아 몬테레이에서 기술(Technology) ·엔터테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을 주제로 공유할만한 정보를 나누는 작은 모임으로 시작돼다. 2006년부터 강연을 인터넷에 올려 공유하는 실험으로 21세기의 ‘연설 르네상스’를 열었다. 현재 온라인으로 2400여 개의 TED 강연을 볼 수 있으며 연간 10억 뷰(View)를 기록하고 있다. 자매행사로 TED여성, TED글로벌 등이 있고, 세계 곳곳에서 매년 TED를 활용한 교육 프로그램 등 수만건의 행사가 열린다. 3년 전부터 미국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개최지를 옮겨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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